천 오백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온천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온천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며, 왕족 뿐 아니라 왕이 직접 온천을 찾았다는 문헌도 존재한다.
과도한 격무로 눈병을 앓던 세종에게 재상 맹사성이 온양 온천을 권하면서 온천 역사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온궁이 건립되었을 뿐 아니라, 세종 후대의 왕들도 온양 온천을 찾게 되었다. 온천과 함께 온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세종이 온궁을 설립할 정도로 사랑받았던 온천은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며 그 역사를 달리했다. 그러나 이후 현종에 의해 복구된다.
장헌세자(사도세자)는 치료 목적으로 온행을 했던 유일한 왕세자이기도 했다. 장헌세자의 죽음 이후, 정조는 왕위를 계승한 뒤 이곳 온양에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영괴대비를 세웠다.
온천은 어떤 효험을 가지고 있기에 왕과 왕족들이 찾았을까.
조선시대 의서, 동의보감에도 온천에 대한 효능이 적혀 있다.
또, 온천수는 온천마다 지질학적 특성과 성분이 달라, 각 온천마다 특징이 판이하다.
온양, 수안보, 동래, 해운대 온천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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