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림 / 환경공학 박사
[앵커]
최근 패션 추세를 보면 비싼 옷을 하나 사서 오래 입기보다는 저렴한 옷을 다양하게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빨리 구매하고 빨리 버리는 현상이 유행처럼 퍼져 있는데요
하지만 이런 현상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다고 하는데요.
오늘 에코 매거진에서는 허정림 환경공학 박사와 함께 '패스트 패션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패스트 패션, 패스트 푸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뭔가 옷을 계절마다 입고 버리는 유행을 따라가는 현상인 것 같은데요. 정확히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최근 유행을 즉각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하는 의류를 가리켜 '패스트 패션'이라고 부르죠.
한국패션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패션산업은 국내총생산 GDP의 2.4%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지니는데요. 경제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환경에 미치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앵커]
그러니깐 유행에 따라서 옷을 빨리 사고 빨리 버리는 현상이 환경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의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물의 양도 엄청난데요. 청바지 한 벌 제조 시 7,000ℓ의 물이 소비됩니다. 이는 4인 가족이 5~6일 동안 쓸 수 있는 물의 양인데요.
그뿐만 아니라, 제품가공과정에서 화학제품을 남용하게 되는데요. 이는 생태계의 악영향과 제조과정이나 물류에 따른 대기오염 등 지구환경 전반에 걸친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앵커]
청바지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물을 쓰는지 처음 알았는데 패스트 패션은 만들 때도 문제지만, 버릴 때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물론입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2008년 하루 평균 162t이었던 국내 의류 폐기물은 2016년 기준 하루 평균 259t으로 늘었는데요. 무려 연간 7억 벌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앵커]
수치를 말씀해주시니깐 그 심각성이 확 느껴지는데, 저는 예전에 이런 패스트 패션에 사용되는 섬유가 플라스틱 소재로 되어 있어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어요. 사실인가요?
[인터뷰]
그렇죠.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옷값을 낮추기 위해서 나일론이나 아크릴 등 합성섬유를 이용하는데요. 합성섬유는 마찰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본 속성이 플라스틱과 유사해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치는데요. 섬유가 덩어리로 남아 자연적으로 분해되기까지 수십에서 수백 년이 걸리고요. 빠져나온 화학 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또한, 매립지에 묻힌 옷들은 썩는 과정에서 도로에 730만 대 자동차가 다니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가스를 배출하는데요. 이 가스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포함된 유독물질로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앵커]
패스트 패션이 늘어나면서 소각률도 증가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이유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유명 제조 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재활용보다는 소각을 선택한다고 하는데요. 이 같은 이유로 의류의 소각률이 높아진 게 아닐까 싶어요. 지구환경에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죠.
[앵커]
패스트 패션이 여러모로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네요. 그런데 헌 옷 일부가 빈민 구호 단체에 넘겨지거나, 재활용되지 않나요?
[인터뷰]
맞습니다. 헌 옷을 재활용하면 카펫 안 감에서 산업용 직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재활용률은 5~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물론 헌 옷 일부도 빈민 구호 단체에 넘겨집니다. 빈민국에 전달되는 헌 옷 꾸러미를 '미툼바'라고 하는데요. 미툼바는 옷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전해져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툼바가 전달되는 나라에서는 국산 옷을 구매하는 양이 줄어들어 섬유산업에 손해를 입기도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몇몇 나라들은 선진국의 미툼바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놓고 의견을 다투고 있다고 해요. 환경을 위해서는 재사용과 재활용이란 필요한 것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문제인 것이죠.
[앵커]
경제냐, 환경이냐, 해결 방안이 모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해외에서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어떤 규정이 있나요?
[인터뷰]
홍콩의 경우, 정부가 패션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소비자에게 지속 가능한 패션의 중요성을 알리고, 직물 방적 공장을 신설해 재활용 기술로 의류 폐기물을 되살리는 데 힘쓰고 있고요.
유럽에서는 섬유제품의 화학성분이 갖는 잠재적인 유해성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2007년 6월 1일 REACH라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REACH는 화학물질의 등록, 평가, 허가 제한에 관한 제도를 뜻합니다. 이 규정은 의복 제조업체와 수입업체에 제품에 사용된 화학성분을 수량화하고 엄격한 검사 절차를 진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인데요. 해외에서 섬유에 대해 이 같은 규제를 하는 것도 섬유제품들이 많은 양의 원유가 있어야 하는 폴리에스터로 제조되기 때문입니다.
폴리에스터는 매립 시 최소 500년이 소요되며, 소각 시에는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앵커]
해외의 패스트 패션 규정을 말씀해주셨는데 우리나라는 관련 규정이 없나요?
[인터뷰]
네, 환경과 경제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대안이 필요하겠지만, 생각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녹색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경제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환경에 유익한 대안이 모색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앵커]
현재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거군요. 그러면 기업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인터뷰]
가령,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쫓는 것에 급급하거나 이익 창출을 위한 상품공급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성을 존중하고 즐기는 소비문화를 만들어가야 하고요.
패션업계와 지역사회를 밀접하게 연결해 환경파괴에 최소화된 영향을 끼치는 의류 디자인과 생산혁신을 이뤄야 하죠. 개성을 살리면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새것을 추구하는 현상은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지금까지는 정부, 기업이 어떻게 하면 될까를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패스트 패션을 지양하려면 소비자들의 태도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일반적으로 환경을 위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재사용과 재활용이 있을 것입니다. 재사용은 내겐 필요 없지만 남은 유용하게 다시 사용하는 것이고 재활용은 다른 것으로 유용하게 바꾸어 소비하는 것이죠.
물건을 나누고 서로 바꾸어 쓰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고요, 버리는 옷을 활용해 가방이나 동전 지갑, 액세서리 등 개성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재활용의 측면에서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그만큼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꼭 유념해 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덜 사고, 오래 입고, 다시 쓰는 생활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겠죠? 그래서 여러분이 녹색 소비가가 되어 환경을 지키고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저 같은 경우에도 여름에는 옷이 가벼우니깐 저렴하면 여러 벌 사서 다음 계절에는 입기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말씀 하신 것처럼 저렴한 옷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혼용률 같은 걸 따져보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소재의 옷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허정림 환경공학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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