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미 / NDFC 법 과학분석과 문서감정관
[앵커]
범죄사건이 발생하거나, 사건 당사자들의 말이 다를 때 가장 확실한 건 증거죠.
문서도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문서를 위조하거나 의도적으로 훼손시켜 죄를 은폐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사이언스 CSI에서는 '문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문서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법 과학분석과 윤영미 문서감정관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문서 감정이라고 하면 막연히 조작된 문서나 도장을 감정하는 곳 같은데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인터뷰]
문서감정은 문서의 위, 변조 여부, 작성 시기 등을 식별하거나 문서 내용 중 일부 또는 전부가 훼손되어 눈으로 판독할 수 없을 때 그 문서의 내용을 검출, 해독하는 것인데, 결국 문서의 진정성 여부를 감정하는 것입니다.
계약서 내용 등에 대해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릴 때 문서 감정 결과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검찰청 문서 감정실은 1986년 4월 필적, 인영, 지문 감정을 시작한 이래 2017년에는 3,440건에 1만 925점을 감정했습니다.
[앵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사건을 감정하셨는데요. 우선 문서 감정을 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인터뷰]
대검찰청 문서 감정실의 경우 전국 검찰청, 경찰, 법원이나 그 외 기관에서 감정 의뢰가 되고 있는데, 의뢰된 감정물은 대검 과학수사부 중앙감정물 접수센터를 통해 문서 감정실에 접수됩니다. 일단 접수된 감정물은 각 감정관에게 배당되어 감정이 시행되는데, 담당 감정관은 예비검사를 통해 감정 자료가 각각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감정자료가 질적 또는 양적으로 본 감정을 수행하기에 충분한지를 파악합니다.
본 감정을 시행한 후에는 감정관 회의를 통해 감정 의견을 도출하여 감정서를 작성하는데 이렇게 작성된 감정서를 법 과학분석 과장에게 보고한 후 의뢰기관에 통보합니다.
[앵커]
복잡하고 철저한 감정 과정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대검찰청 문서 감정실이 국내 최초로 KOLAS로부터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다고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감정기법의 표준화에 의한 감정 결과의 객관성이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국제표준에 따른 시스템을 확립했는데요. 그래서 2009년 2월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 필적, 인영, 지문 감정 방법에 대하여 문서 감정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기존에는 감정관이나 감정 결과에 대한 객관성 평가방법이 없어 감정기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방법이 없었는데요.
하지만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을 통해 감정 업무가 국제기준에 적합한 시스템이나 감정기법의 표준화를 위한 제반 기준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재판과정에서 제기될 우려가 있는 감정 결과에 대한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키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감정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게 된 것입니다.
[앵커]
한국의 과학수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잖아요. 거기에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장비도 한 몫하고 있을 텐데 문서 감정을 하는 장비에 관해서도 설명 좀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현재 대검찰청 문서 감정실은 50여 개의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감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최대 10만 배까지 확대하여 종이의 재질을 파악할 수 있는 주사전자현미경 그리고 다양한 파장의 빛을 이용해 잉크 성분 분석, 위조지폐 감별 등이 가능한 분광비교측정기, 펜에 눌린 자국이나 썼다가 지운 흔적 등을 복원해내는 필흔 재생기 등이 대표적인 장비들입니다.
[앵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건데 신기하네요. 그러면 문서 감정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하셨는지 몇 가지 사례를 말씀해주세요.
[인터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5년 故 성완종 정치권 금품 로비 메모지 관련 필적감정이 있습니다. 피의자 故 성완종이 사망하기 직전 작성해 소지하고 있던 정치권 인사 금품 로비 명세 메모지 필적과 故 성완종의 평소 메모지 필적, 피의자신문조서 필적 간의 동일인 작성 여부 감정을 했습니다.
또, 2016년 발생한 어음 사기 사건이 있습니다. 문제가 된 6억 원짜리 어음의 발행 일자가 2003년 11월 29일로 적혀있었는데, 분광비교측정기로 확인을 해보니 '11'의 '1'자 한 개가 다른 잉크 성분의 필기구로 가필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소송을 당하자 피해자에 대한 채권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1월 29일'이었던 것을 '11월 29일'로 위조해 무효인 어음을 또 다른 어음인 것처럼 위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의자는 유가증권위조, 소송 사기미수 등 혐의로 기소돼 처벌을 받았습니다.
[앵커]
이렇게 사례를 들으니 흥미진진한데요. 혹시 또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더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또 작년 2017년 경찰서장 뇌물수수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피의자는 지역 경찰청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수사과에서 내사 중이던 사건 무마 및 편의 제공 명목으로 의약품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수수를 받았습니다. 감정물은 뇌물을 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의약품 납품업체 대표의 수첩이었습니다. 수첩 내용을 며칠간 분석한 결과 날짜별로 기록된 수첩에는 '2016년 10월 14일 점심'이라는 메모가 기재되어 있었는데 '점심' 의 'ㅈ'이 수첩의 다른 곳에 기재된 평소 필적과 모양이 달라 광학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숫자 '7'을 적었다가 획을 하나 더해 'ㅈ'으로 고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앵커]
그러면 '7'이 무슨 의미죠?
[인터뷰]
'7'은 뒤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700만 원을 뜻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수사 정보를 듣는 대가로 뇌물 700만 원을 줬고 이를 감추기 위해 수첩의 메모를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피의자는 뇌물수수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앵커]
그런데 필적감정은 비교하면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컴퓨터로 인쇄한 것들은 어떻게 감정할 수 있나요?
[인터뷰]
필적감정이 동일인 작성 여부 감정이라면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의 경우는 같은 출력기기 즉, 같은 프린터로 출력된 것 인지고요. 그리고 같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것인지에 대해 감정을 하게 됩니다. 같은 출력기기로 출력된 것인지에 대한 감정은 광학현미경 등 광학 장비를 통해 토너 또는 잉크의 분사 상태를 비교 관찰하는 방법으로 감정이 가능하며, 같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것인지는 워드 폰트의 동일 여부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감정이 가능합니다.
[앵커]
컴퓨터도 동일 기기로 작성된 건지 파악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이외에도 위조지폐가 여전히 흥행한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에도 전북 정읍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가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위조지폐들은 어떻게 감정하나요?
[인터뷰]
위조지폐 감정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분광비교측정기라는 광학 장비를 주로 이용하여 감정하게 되는데, 각 지폐의 홀로그램, 은선, 색 변환 잉크, 미세문자, 숨은 그림 등 위조방지장치 요소들을 모두 정밀하게 검사하는 방법으로 감정합니다. 하지만 눈으로 판단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조폐공사에서 제공하는 지폐별 위조방지 장치를 검색해보고 잘 숙지한다면, 일반인들도 위조화폐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앵커]
고도의 집중력과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일이네요. 그러면 일을 하고 나서 보람을 느꼈을 때도 있을 것 같고 앞으로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가장 보람 있을 때는 노력 끝에 감정 결과가 명쾌하게 나올 때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감정을 해왔지만 매 감정 건이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많은 시간을 들여 감정해도 감정 결과가 판단 불명이 될 때 가장 아쉬움이 큽니다.
각종 사기 및 위조 사범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위조기법 또한 다양화, 첨단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관 구성도 어학 전공자에서 컴퓨터공학, 화학 전공자 등으로 확대되고 있기는 하나, 문서 감정의 특성상 감정 분야가 다양하여 제한된 감정 인력으로는 감정기법 개발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더 많은 인력이 구성되어 문서 감정 분야가 더욱더 전문화가 되고 발전되었으면 합니다.
[앵커]
최첨단 과학기술 앞에서는 그 어떤 위조범죄도 속수무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술의 활용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법 과학분석과 윤영미 문서감정관과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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