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제민 /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앵커]
자가면역질환은 인체를 지키는 면역계가 되레 우리 몸을 공격해 생기는 질병입니다. 그동안 근본적인 원인이나 치료법을 밝혀내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을 밝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오늘 <과학의 달인>에서는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최제민 교수를 만나보겠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면역 기능의 오작동으로 관절과 피부, 근육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에 손상을 초래하는 무서운 질병인데요. 우선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은 어떤 것이 있고, 또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사실 자가면역질환은 나를 공격하는 면역질환이기 때문에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은 아닙니다. 즉, 희소질환 범주에 속하는 질환이지만, 유럽이나 북미를 포함한 전 세계 인구의 약 4~5% 정도를 차지하며, 주로 20대~50대 사이의 젊은 나이에 발병해서 평생 지속하는 질환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으며, 암이나 심장질환과 더불어 신약개발에 대한 요구가 매우 큰 질병이라고 하겠습니다. 루푸스, 류머티즘 관절염, 1형 당뇨병, 크론병, 다발성경화증, 건선 등 80여 가지 질병이 있을 정도로 다양하며, 주로 T세포, B세포의 기능 이상으로 비롯된다고 여겨집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 그동안 관절염은 나이가 들어서, 건선은 피부가 건조해서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자가면역질환의 일부였군요. 내 면역력이 나를 공격하는 질환인 만큼 원인 규명도 그동안 어려웠는데, 교수님께서 그 원인을 규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제가 모든 원인을 규명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이유 중 한 가지가 될 수 있는 원인에 대해 가설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우리 몸속에는 면역을 담당하는 다양한 세포 중에 'T세포'가 있습니다. 보통 10억 개 정도의 T세포 클론 (세포군)이 존재하는데요. 이론적으로 하나의 항원에 반응하는 T세포는 1개입니다. T세포는 병원균이 침투했을 때 싸우면서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데요. 하지만 병원균이 침투해도 그 균을 인식할 수 없는 T세포는 면역 반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를 '방관자 T세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T세포가 '진짜 방관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고, 연구해보니, 방관자 T세포 역시 자기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면역반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나를 적으로 인식하는 T세포가 있었다는 게 문젠데, 처음 몸 안의 세포에 대응해 공격을 시작한 T세포가 방관자 T세포에 "함께 공격하자"는 신호를 보내면서 자신들의 목표물이 아닌데도 공격해 과도한 염증이 생기고, 이러한 이유로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그동안 항원이 들어와도 방관만 한다고 알려졌던 방관자 T세포 역시 면역 반응에 참여한다는 걸 밝혀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새로운 현상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셨나요?
[인터뷰]
제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던 시절 다른 연구실의 교수님이 쥐를 해부했는데요. 그 쥐가 'IL-18'이라는 사이토킨을 과발현시킨 쥐였습니다. 해부해서 보니까 비장하고 림프절이 정상 쥐보다 커져 있었습니다.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비장이, 외부의 감염에 의한 염증으로 크기가 커진 것이 아니라 굉장히 커졌다는 것이 세포 간에 정보전달에 사용하는 사이토카인, 이런 신호때문에 커졌다고 생각해볼 수 있었고, 비장과 림프절이 커져 있다는 것은 T세포, B세포 같은 림프구 면역세포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이었는데요.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T세포가 병원균을 인식하지 않고 사이토카인에 노출돼도 작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한양대학교에 부임한 이후에 바로 본격적으로 연구를 더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미국 유학 시절에 우연히 한 마리의 쥐를 해부하게 되면서 여기서 연구가 시작됐군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가면역질환을 고치기 어려운 병, 난치병이라고 많이들 부릅니다. 자가면역질환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뭔가요?
[인터뷰]
자가면역질환의 근본 원인은 나를 적으로 인식해서 공격할 수 있는 T세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포를 찾아 제거해 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10억 개 클론 중 하나인 세포를 찾아 없앤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은 없고,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약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면역학자가 조절 T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이 가장 주목받고, 기대되고 있는 치료적 접근인데요.
저희 연구에서 특정 단백질 (CTLA-4, Foxp3) 전달을 통해 '조절자 T세포'를 유도하여, 과다한 반응을 막고 자가면역 및 만성 염증성 질환에 대한 자연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앵커]
아직 완치는 어렵지만 과다한 면역반응을 막는 조절자 T세포를 만들면 자가면역질환의 증상 완화는 가능하다, 이렇게 볼 수 있겠는데, T세포에 특정 단백질을 넣어서 조절자 T세포를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인터뷰]
단백질과 유전자들을 세포 내로 전달하기 어려운 아주 큰 분자들인데요. 저희는 작은 단백질 조각인 '세포 투과 펩타이드'를 이용했습니다. 특정 단백질 (Foxp3 단백질이나 CTLA-4 단백질)을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쥐의 T세포 안으로 전달했을 때,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T세포가 이를 치료하는 조절자 T세포로 바뀐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특정 단백질을 세포 내로 전달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이용하거나 소수의 조절자 T세포를 분리해 생체 밖에서 증식시키는 방법이 시도됐으나 저희는 이번에 이런 단백질 전달 기술을 통해서 조절 T세포를 생체 내에서 유도하고, 이걸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치료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릴 텐데,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여러 가지 신약 개발 물질도 개발되고 있다고요?
[인터뷰]
네. 저희가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치료 연구를 이런 단백질 전달과 같은 기법으로 수행해왔는데요. 또한, 질문하신 바와 같이 이뿐만 아니라 만성 피부질환인 아토피, 건선 치료 약제로 쓰이는 면역조절 물질도 개발하여 논문과 특허를 통해 신약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곧 류마티스 관절염, 아토피, 그리고 다발성경화증, 여러 가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신약을 만나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드는데, 그렇다면 가장 궁금한 게 바로 상용화잖아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인터뷰]
항상 이러한 질문을 들으면 어려운 답변을 드리게 되는데요. 상용화가 바로 될 거 같은 연구 결과들이 나오더라도 실제로 상용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아쉽게도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신약이 출시되기에는 아직은 기대하고 고대해야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펩타이드 후보 물질의 비임상 연구를 수행하여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는 약물로 개발하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앵커]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치료제라는 게 효과가 물론 가장 중요하겠지만, 안전성이라든지 다른 고려할 문제가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중요할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치료제를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치료 효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실제로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독성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데요. 아무리 효과가 좋은 약도 독성이 심하다면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효과가 조금 약하더라도 독성이 없어서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성이 보장돼야 더욱 많은 환자가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은 대체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여, 생명에 지장을 주기보다는 평생을 면역조절제로 증상을 조절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경제성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앵커]
고려해야 할 문제가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또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앞장서고 계시는데, 학교에서 미래의 과학도를 양성하는 일에도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만의 특별한 수업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건가요?
[인터뷰]
네. 저는 무엇보다 자기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부 교육은 물론 대학원, 연구실에서의 대학원생들의 연구지도 모두 이러한 부분을 가장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저희 한양대학교에서 강조하는 특별한 교수법이 있는데요, PBL 수업, 'Problem-based' 또는 'Project-based learning'으로, 일반적인 정보전달식 강의와는 다르게 학생들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발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하게 하는 수업 방식인데요. 면역학 수업에 도입하여 교육하고 있습니다. 학부 수업에는 실험 수업을 병행하여 현장감 있는 교육을 하도록 하고, 대학원 수업에는 외부 신약개발연구 산업체 전문가를 겸임교수로 초빙해 진행하는데요. 실제 산업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신약개발과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수업으로 특별한 교수법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앵커]
한마디로 능동적인 교육이 이뤄지게끔 노력하고 계시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시는지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하고요. 또 앞으로 교수님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인터뷰]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대해 전 세계 많은 연구자가 묵묵히 연구해오고 있는데요. 점점 그 결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전체 유전자 기반의 연구, 면역세포들의 작용과 질병과의 상관관계 연구, 다양한 방식의 신약개발연구 등 다각도 연구들의 집합으로 혁신적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면역학자가 기대하고 있는 조절 T세포를 활용한 면역조절 치료제가 상용화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실험실 창업을 준비 중에 있는데요. 조절 T세포를 증가시켜 면역조절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신약개발을 글로벌 제약사들과 함께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앵커]
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성과에서도 굉장히 본받을 게 많은 교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자가면역질환은 난치병인 만큼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해서 평생 고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루빨리 교수님의 연구가 결실을 맺어서 치료제가 개발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최제민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순표[spa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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