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성 /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앵커]
지난 6월부터 이달 초까지만 해도 파키스탄에 폭우로 인해 재앙에 가까운 큰 피해가 발생했죠. 그런데 이번 파키스탄의 홍수가 주목되는 것은 단지 파키스탄에 큰 피해가 났다는 사실을 넘어 기후변화의 큰 흐름 속에서 나왔다는 점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날씨학개론>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케이웨더 반기성 센터장과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지난 여름에 파키스탄에 대홍수가 발생했는데요. 도대체 비가 얼마나 많이 왔길래 큰 피해가 난 건가요?
[인터뷰]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6월 이후 9월 10일까지 1천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국토의 3분의 1 이상이 잠기는 심각한 대홍수가 발생했는데요. 파키스탄은 6월 중순부터 계절성 몬순 우기가 시작되었는데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린 데다가 올해 봄철의 폭염으로 북부 산악의 빙하가 녹은 물이 합세하면서 발생한 홍수로 국가적 재앙이 발생한 겁니다.
6월 하순부터 8월까지만 파키스탄에서는 예년 평균보다 190% 많은 391㎜의 비가 쏟아졌으며, 특히 피해가 큰 신드 주의 경우 8월에만 평년 대비 약 8배에 달하는 ‘물 폭탄’이 쏟아졌으며, 발루치스탄주 남부는 통상 우기 강우량의 5배 넘는 폭우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림에서 붉은색일수록 비가 더 많이 내린 지역인데요. 신드 주의 한 지역에서 월평균 강우량 46mm이었는데, 1,228mm를 내리면서 신기록을 세운 곳도 있다고 해요.
이처럼 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내리자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국토가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변했다. 물을 퍼낼 수 있는 마른 땅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몬순이 9월까지 이어지기에 또 다른 물 폭탄이 쏟아질까 걱정이라고 합니다.
[앵커]
파키스탄에 예년 평균보다 많은 비가 내려졌고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길 정도면 피해가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인명피해는 어느 정도 였나요?
[인터뷰]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국이 9월 17일까지 집계한 피해를 보면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가 1천545명, 부상자가 1만2천850명입니다. 특히 어린이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압둘라 파딜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파키스탄 대표는 “홍수로 1천6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피해를 보았으며 이 중 최소 340만 명은 긴급한 구조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지요. 시설피해로는 170만 채 이상의 주택이 파괴되고 3천3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요. 파키스탄 가정의 중요한 생계 자원인 719,000마리 이상의 가축이 죽었으며 약 200만 에이커의 농작물과 과수원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앵커]
그야말로 재앙이네요. 경제적인 피해도 심각하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현장을 둘러 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세계에서 수많은 재난을 봤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기후 참사는 본 적이 없다”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BBC방송이 9월 19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대홍수로 인한 피해액은 최대 약 55조7,6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는데요. 이 액수는 2021년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11% 규모로 정말 엄청납니다.
홍수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재건비용도 엄청난데요. 손상된 도로 1만2,875㎞와 교각 390개를 복구하는 데 약 12조5,460억 원), 주택 170만 채를 수리·신축하는 데 약 5조5,760억 원이 들 것으로 전망되었고요. 또 철도, 학교, 병원 등 필수 시설 복구라든가 유실된 제방·수로 건설에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파키스탄 경제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농업 부문이 홍수로 완전히 붕괴된 것도 충격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파키스탄 전체 면화 생산량 30%를 차지하는 남부 신드주에서 작물 80%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기후 참사라 할 정도로 기후피해나 인명 피해가 좀 많이 일어났는데 최악의 대홍수가 발생한 원인은 뭔가요?
[인터뷰]
과학전문지인 네이처에서는 9월 2일에 “올해 파키스탄의 홍수가 왜 이렇게 극심한가?”라는 논문을 게재했는데요. 연구팀들은 첫 번째 원인으로 폭염을 꼽았습니다. 올 봄에 파키스탄 지역에서 온도가 40°C 이상으로 장기간 이어졌고 자코바다드 지역은 51°C를 넘어섰는데요. 이렇게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포함할 수 있고요. 폭염을 가져온 열돔 현상은 서쪽인 아라비아 해에서 다가오는 강한 기압골과 연관된 강력한 몬순을 불렀다고 연구팀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파키스탄의 서쪽인 유럽의 폭염과 동쪽인 중국의 폭염이 파키스탄의 대홍수를 부른 기압계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둘째 원인으로는 빙하의 융해인데요. COMSATS 대학의 기후 과학자 아타르 후세인은 봄철의 극심한 폭염으로 인해 북부 산악 지역의 빙하가 녹으면서 인더스 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증가했다고 말합니다. 사진은 유럽우주기구(ESA)에 의해 처리된 올해 8월 30일의 코페르니쿠스 센티넬 위성영상으로 푸른색 부분이 빙하가 녹아 홍수가 발생한 지역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른쪽 사진이 확대된 모습입니다.
[앵커]
폭염으로 인해서 몬순이 훨씬 더 심각해졌고 빙하가 녹은 물이 인더스 강에 유입되면서 홍수피해가 커졌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또 다른 원인이 있나요?
[인터뷰]
셋째 원인으로는 파키스탄의 더 강한 몬순 조건과 관련된 현상으로 라니냐 현상을 꼽기도 했는데요. 라니냐가 강력한 연결고리는 아니라고 해도 강우량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9월 15일에 세계기상귀인(WWA)에 속한 9개국 26명의 과학자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이 파키스탄 홍수 피해 규모를 키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들은 현재처럼 지구 평균기온이 1.1℃ 정도 상승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파키스탄의 평균 강수량이 큰 폭으로 낮아지더라고 주장했습니다.
영국 런던 그랜섬 연구소의 프리데리케 오토는 "파키스탄에 발생한 홍수는 우리가 수년 동안 전망해온 기후 예측과 정확히 일치한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강우량은 더욱 늘어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몬순을 연구하는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데워진 바다가 수증기를 계속 내뿜는 데다가 공기도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할 수 있고 육지로 계절풍을 타고 수증기가 수송되면서 파키스탄 등의 극한홍수가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앵커]
결국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상승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파키스탄 같은 저개발국가들은 지구온난화를 가져오는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겪게 되는 불공정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하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지구온난화에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은 가난한 나라들이 피해가 커진다는 불공정의 문제가 있는데요. 1959년 이후 파키스탄은 지구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0.4%를 배출했는데, 중국의 16.4%이나 미국의 21.5%에 비해 매우 적은 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개발국가들은 기후재난을 복구할 재원이 없는 반면에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던 나라들은 재난을 복구할 재원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파키스탄의 레흐만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구 온난화는 세계에 닥친 존재적 위기이고 파키스탄은 대재앙의 현장이 되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의 탄소 발자국에 거의 기여 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다.”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또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크다고 하면서 파키스탄에 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는데요. 파키스탄은 우선 대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하기도 했는데요. 파키스탄의 참혹한 대홍수 현장을 둘러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오늘은 파키스탄이지만, 내일은 당신의 나라일 수 있다"며 세계 각국에 강력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앵커]
정작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 않은 저개발국가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더 크게 입는 역설적인 상황인데요. 전 지구적인 협력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군요. 날씨학개론, 케이웨더 반기성 센터장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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