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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마음의 배터리 방전 땐 내면의 '자율성'을 찾아라

2023년 04월 04일 오전 09:00
■ 이혜진 / 상담심리사

[앵커]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해내야만 하는 강박이 생기면서 지치게 되어버리고, 그러다 내가 마치 배터리처럼 소진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요. 이렇게 지친 마음으로 여유가 없을 때는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자율성'의 힘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혜진 상담심리사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살다 보면 지금 이게 내 의지대로 내 뜻대로 살고 있는 건가? 혹은 잘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저도 가끔 지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지친다” “소진된 거 같다”는 얘기를 참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피로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는 게 분명한 현실입니다. 직장인이라면 퇴사 고민이 끊이지 않는 분도 참 많습니다. 신체적으로도 다 타버린 것 같고, 정신적으로도 고갈된 것 같아. 예전처럼 뭘 하지 못하는 상태로 상담실에 오는 분들에게는 ‘살고 싶지 않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요.

번아웃 증후군일 가능성도 높고요. 너무 쉼이 없었다면 일상에서 휴식을 주는 것도 너무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틈틈이 쉬고는 있는데 계속 소진 상태가 지속될 땐 상담심리사로서 이렇게 말씀을 드려요. 우선 그만큼 열심히 사느라 지치고 힘들다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타이밍이다. 내 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 수 있어요. ‘해야 하는 거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될까?’ ‘해야 하는 것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것 ‘이 뒷전이 된 상태가 아닐까? 지치고 힘들다고 느낀다면 집중적으로 내 마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참 많은 게 인생이지만, 내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도 찾아보면 분명 있거든요. 여기서 심리학에서는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신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주시죠.

[인터뷰]
자율성이란 한마디로 나의 행동의 근원이 되는 욕구로, 주체적으로 나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해, 삶에서 내가 이 행동을 나 스스로 원해서 하는지?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인지? 가 명확하지 않을 때 자율성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인간의 동기 이론 중에 유명한 “자기 결정성 이론”을 제안한 심리학자 라이언과 데시(Ryan & Deci, 2002)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는 3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가 있다고요.

1번. 자율성 (autonomy)의 욕구,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
2번. 유능성 (competence)의 욕구, 도전을 통해 효능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
3번. 관계성(relatedness)의 욕구,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고자 하는 욕구

2번과 3번이 충족됐더라도 오늘의 주제인 1번 자율성의 욕구가 삶에서 채워지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뭔가 잘못됐다, 내 삶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다는 접근이에요. 또 자율성이 충족되지 않을 때 보통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번 체크 해보세요.

-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주류를 따라간다
-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
-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적이나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다
- 막연히 원하는 것은 있으나,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느낀다
- 대체로 우울하고 활력이 없다.

[앵커]
그러니까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일이다가 빠지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라고 이해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율성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낮아지게 되는 걸까요?

[인터뷰]
네, 말씀하신 것처럼 ‘주변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야." 하고 하는 메시지가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나에게 중요한 타인이 하는 말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절대 신념으로 자리 잡아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싫어도 참아야지”

"참을 인이 미덕이다" 라고 배우고, 내재화한 결과, 많은 분들이 이 “싫은 걸 참는 능력”이 과도하게 발달 됩니다. 발달 심리학의 기질 이론에서 나온 개념인 “억제조절 기능”이 건강하지 않게 작동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요. 억제조절 기능이란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는 능력인데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나는 웃지 않아야 할 상황일 때는 웃음을 잘 참는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인식한 충동들을 억제하여 부적절한 생각이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억제조절 기능은 상황에 따라 필요합니다. 자발적으로 상황에 적절하게 나의 충동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도 필요한 기능이죠.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이 기능이 불필요할 때에, 왜곡된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점검해보는 겁니다. 절제가 과도하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억압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거에요. 즉,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행위가 습관, 더 넘어서 나의 성격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자율성이 상실된 상태로 볼 수 있어요.

[앵커]
그렇다면 자율성이 상실된 상태로 계속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인터뷰]
이렇게 나도 모르게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억압하는 삶이 계속되면 사실은 '해야 되는' 게 아닌데도 나 스스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결과, '해야 하는 것'이 삶의 거의 전부가 되어버리죠. 예를 들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해야 하는 것’으로 인한 선택의 결과라면,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버티는 시간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리게 되는 거죠.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죠.

- 내가 하는 일은 쓸모가 없어
-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 그만두고 싶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진 모르겠어.

[앵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데 이거를 해야 하는 것을 수용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참기만 하는 거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듣기만 해도 불행한 삶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자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할 텐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인터뷰]
자율성은 높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성격 중에서도 개발이 가능한 영역이거든요. 자율성은 다르게 정의하면 “자기와 자기의 관계”로도 설명해요. 한 마디로 “내가 나랑 어떻게 지내는가?”인데요.

우린 타인과는 어떻게 지낼지 고민하지만, 나랑의 관계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요. 그래서 내가 나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하셔야 할 점은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과는 다른 선택을 잠시 멈춰서 고민하고 결정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지금까지 너무 참아왔다면, 잠시 멈춰서 이렇게 나에게 자문해봅니다. “이렇게까지 참을 일인가?” 조금 덜 참아보는 연습을 일상에서 하나씩 해보시는 거예요. 두 번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내가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겁니다. 자율성이 낮은 삶을 살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쓸모가 없다, 별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데 또 멈춰서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정말 그런가?” “내가 하는 일에 가치가 정말 없을까?” “혹시 내가 너무 나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던 건 아닐까?” 조금 에너지가 생겼을 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찾아지거든요.

최근에 ‘일 자체’가 잘 되었을 때, 외적인 보상이랑은 상관없이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찾아보세요. 아주 찰나의 순간이더라도 기분이 좋았던 면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알아차려 보는 거예요. ‘아, 나는 이럴 때 기분이 좋구나’ ‘다 싫은데, 이것만은 할만하구나’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이지?’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다 보면, ‘아, 내가 원하는 게 이거구나’ 내가 나의 자율성을 발휘하고 있는 순간을 지나치고 있었던 걸 수 있어요. 실은 내 안에 자율성이 존재하는 데 못 봤던 거죠.

[앵커]
듣고 보니까 많은 분들이 내가 해낸 것, 내가 성취한 것에 대한 부분을 지나치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좀 드는 거 같은데요. 이 방송을 듣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인터뷰]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는 인간을 이렇게 보고 있어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능동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유기체라는 거에요. 즉, 나라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능동적이고, 성장을 지향하는 존재다. 성장을 원하기에 고군분투하는 거다. 비록 지금은 소진되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해도 말이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지닌 힘은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큰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내가 지금 나의 자율성을 조금 더 발휘하고 싶은 순간이 왔구나’ ‘내가 조금 더 에너지가 생긴다면, 무엇을 도전해보고 싶을까?’ 내가 자율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무언가를 구체화해보는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는 시간을 나에게 줘 보는 거 에요. 내가 나에게. 그리고 그 방향으로 한 번에 가는 게 아니라, 작은 단위의 중간 목표를 여러 개 설정해서 실천을 해나가 봅니다. 그것이 곧 자율성을 높이고, 성장할 수 있는 생각의 방향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저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교육 현실이 떠올랐는데요. 학창 시절 내내 '해야 한다', '돼야 한다'는 이런 얘기를 듣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자율성'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길 사람 속은' 이혜진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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