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동물의 다양한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어떤 동물을 만나 볼까요?
[기자]
얼마 전 쌍둥이 판다가 태어나면서 많은 분들에게 기쁨을 안겨줬는데요, 불과 두 달 전에 또 다른 아기 동물 한 마리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5월 29일에 태어난 아기 기린 마루입니다. 마루는 태어난 지 한 달쯤 된 지난달 21일, 세계 기린의 날을 맞아서 온라인으로 공개됐는데요, 아빠 세븐과 엄마 한울 사이에서 태어난 수컷 기린입니다.
지금 보시는 영상은 마루가 일주일쯤 됐을 때 모습인데, 이미 190cm 정도로 태어났기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2m 가까이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루를 담당한 사육사는 "지금까지 봐 왔던 아기 기린 중에 가장 키가 크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마루는 지금도 엄마와 함께 잘 자라고 있고요, 오는 8월쯤이면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을 예정입니다.
[앵커]
뭔가 저 순한 눈망울이 귀엽습니다. 역시 기린은 기린이여서 태어나자마자 키가 2m에 가깝다니깐 정말 놀라운데 목이 보통 얼마까지 자라는 건가요?
[기자]
기린은 보통 발끝에서 뿔 끝까지 길이가 6m 정도 되는데요, 목 길이만 2m에서 2.5m에 달합니다. 무게만도 보통 250kg까지 나간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목이 엄청나게 길지만 목뼈의 개수는 사람과 똑같은 7개입니다. 목이 짧은 동물인 돼지나 사자 등도 모두 7개의 목뼈를 가지고 있는데요, 다른 포유동물들과 뼈 구조는 같지만 뼈 하나하나의 길이가 아주 길기 때문에 이렇게 긴 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앵커]
목이 정말 기네요, 2m면 지금 제 키보다 긴건데 정말 너무 긴거 같습니다. 이렇게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이 보통 진화의 결과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기자]
네, 기린의 목이 진화의 결과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먼저 먹이 경쟁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요, 경쟁자를 피해서 더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늘리다 보니 세대가 지나면서 목이 조금씩 길어졌다는 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찰스 다윈의 주장인데요, 과거에 이미 목 길이가 조금씩 다른 기린 개체들이 있었고,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서로 경쟁하면서 목이 더 긴 기린이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인데요, 무작위로 일어난 변이 가운데 환경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다수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처럼 목이 긴 기린으로 진화하게 됐다는 거죠.
또 다른 주장도 있는데요, 먹이 경쟁보다 기후변화가 기린의 진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날이 점점 덥고 건조해지면서 숲이 조금씩 사막화되었고, 기린이 강한 햇빛을 피해 체온조절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목과 다리를 길게 진화시켰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표면적이 넓어지면서 열을 더 효율적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기린의 목에 관련해서 뜨거운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도 아니고 기린만 목이 이렇게 길어지게 된 과학적인 증거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자]
네, 지난 2016년에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요, 과학자들이 기린의 유전체를 분석해서 목이 길어지는 데 영향을 준 유전적 변이를 찾아낸 것입니다. 연구팀은 기린과 중에서도 목이 짧은 동물인 '오카피'와 기린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해봤습니다. 그 결과 유독 기린에서만 특정 유전자의 변이가 나타났는데요, 현재 남아있는 기린과 동물이 기린과 오카피 딱 둘 뿐이기 때문에 이 유전자가 기린의 목을 길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도 밝혀졌을까요?
[기자]
이 유전자는 사람과 쥐에게도 있는데요, 몸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기린의 목을 길게 만드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 유전자는 심혈관계 기능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린의 목이 2m가 넘잖아요? 한마디로 머리가 심장보다 2m 이상 높은 데 있다는 건데 그만큼 뇌까지 혈액을 보내려면 아주 큰 힘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기린은 다른 포유류보다 심장이 유난히 크고 혈압도 2배 정도 높은데요, 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서 심혈관계도 몸집에 필요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입니다.
[앵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아직은 논쟁이 있지만 어쨌든 목이 길어졌고 거기에 맞춰서 유전자 변이까지 일어났다고 보면 되는 거네요.
[기자]
맞습니다. 또 최근에는 기린의 진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다른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먹이 경쟁 때문이 아니라 기린이 박치기 싸움을 잘하기 위해 목이 길게 진화해왔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중국 과학자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인데요, 이들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1,690만 년 된 암석을 추적했고 그곳에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원시 기린 종의 두개골과 4개의 목뼈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린 종의 머리에는 한가운데에 접시 모양의 평평한 뿔이 있었는데요, 마치 윗부분을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처럼 납작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납작한 뼈 위에 케라틴이 덮여 있었는데 케라틴층이 자라면서 낡은 부분이 벗겨져 나가고 돔 모양의 뿔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이런 헬멧 형태의 뿔은 바로 목뼈와 연결돼 있었는데요, 연결된 목뼈는 아주 두껍고 정교하게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기린이 과거에는 머리를 이용해 박치기 형태의 싸움을 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실제로 기린은 짝짓기 싸움을 할 때 목을 휘둘러서 상대를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이런 경우 머리를 이용해 수컷끼리 싸움을 했고 결국은 이렇게 짝짓기 경쟁을 위해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런 연구결과가 나온 겁니다.
[앵커]
기린이 싸우는 영상을 한 번 본적이 있는데요, 굉장히 치열하게 싸우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기린이 머리가 몸에 비해 굉장히 작잖아요, 과연 지능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한데요.
[기자]
네, 기린은 머리가 작은 만큼 몸 크기에 비해 뇌가 작은 동물에 속하는데요, 몸무게가 700kg에서 많게는 2,000kg까지도 나가지만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0.1%가 채 안 됩니다. 저희가 코끼리에 대해 다룰 때 뇌의 크기와 지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아마 기린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 독일 연구팀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동물원의 기린 4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기린이 기본적인 통계 계산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먹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수컷 기린 2마리와 암컷 기린 2마리에게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2개를 보여줬습니다. 한쪽에는 기린이 좋아하는 당근을 더 많이 넣고 다른 쪽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호박을 더 많이 넣었는데요, 이렇게 두 용기를 5초 동안 보여준 뒤에 무작위로 아무 채소나 하나를 꺼내서 기린에게 내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무 번 정도 기린에게 선택할 기회를 줬는데요, 기린은 적게는 65% 많게는 90% 확률로 당근이 더 많은 용기에서 꺼낸 채소 쪽 손을 골랐습니다. 그러니까 기린이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당근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본 뒤에 이를 바탕으로 확률적 사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앵커]
복잡한 계산은 아니지만, 기린이 통계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거네요. 조금 전에 세계 기린의 날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이게 어떤 날인지 설명해주시죠.
[기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앞서 아기 기린 마루가 '세계 기린의 날'에 공개됐다고 말씀드렸죠. 세계 기린의 날은 2014년, 국제 기린보호재단이 야생 기린의 멸종을 막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로 제정한 날입니다. 매년 6월 21일인데요, 목이 긴 기린의 특징을 반영해서 일 년 중에 낮 길이가 가장 긴 날인 '하지'를 기린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기린도 멸종 위기에 가까이 있다는 뜻인데요,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35년 동안 야생 기린 수가 40% 가까이 줄어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쉽기 만나기 때문에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사라져 가는 동물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깐요,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아니라 목이 길어 재미있고 신기한 기린이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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