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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레드카펫] 대재난 후 드러나는 악의 평범성,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철근 없는 슈퍼콘크리트

2023년 08월 11일 오전 09:00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입니다. 재난영화라는 틀 속에서 독특한 길을 걷는 이 영화, 시사회 이후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요, 또 관객의 기대 또한 크게 받고 있는데요. 키워드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첫 번째 키워드는 '재난 후 우리는?'입니다. 흔히 재난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해운대'를 떠올릴 수 있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오히려 영화 '기생충'과 닮아있습니다. 대재난 이후 우리는, 그리고 나는 영화 속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대지진 이후 폐허가 된 서울 오직 한 건물, 황궁 아파트 103동 만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저는 이 아파트가]
[선택받았다 뭐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자]
전기와 물이 떨어지는 건 물론 먹을 것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아파트에 불이 나자 직접 뛰어들어 불을 끈 남자, 영탁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셨어요?]
[아파트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이거 하나 남았는데]

[기자]
외부인들로 갈등이 커져만 가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영탁을 입주민 대표로 세우고 아파트 지키기에 나섭니다.

[지금부터 주민이 아닌 분들은]
[단지 밖으로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
공동체가 된 황궁 주민들은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결국 또 다른 지옥이 만들어지는데요.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을 내쫓을 것인지,

[우리 지금 다 얼어 죽으라는 거예요?]
[다 나가]

[기자]
아니면 가능한 한 모두가 함께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다 같이 살 방법을 먼저 찾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기자]
영화는 보는 내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아파트는]
[주민의 것 ]

[기자]
이 영화의 중심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정확히 전달하는 게 바로 입주민 대표, 영탁입니다. 영탁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켜켜이 쌓아올리며 표현해내는 이병헌의 연기, 동료 배우가 '안구를 갈아 끼웠다'고 말할 정도로 가히 압도적인데요. 그래서일까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첫날 관객 23만 명을 동원하면서 류승완 감독의 '밀수'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현재 예매율도 높고, 실 관람객의 평 또한 많아서 당분간 흥행 독주가 예상됩니다.

[기자]
다음 키워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아파트 공화국'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핵심 키워드인데요. 영화는 한국에 아파트가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순간부터 브랜드 아파트가 생긴 지금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시작합니다.

[기자]
영화 속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인 황궁 아파트

[이병헌 / 배우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트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해요]

[기자]
제작진은 실제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정밀함으로 3층 높이의 아파트를 직접 만들었는데요. 70~80년대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 매매가 7억 원 정도의 24평 아파트라는 감독의 설정은 황궁 아파트를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은재현 / CG 슈퍼바이저 : 3층에 실제 아파트 1:1로 해서 굉장히 큰 규모로 세트를 지었는데]

[조화성 / 미술감독 :제작하는 데 3개월에서 5개월 가까이 걸렸던 것 같아요. 실제 건물 짓는 형식에 준할 정도로 만들어야 되는 지점이거든요]

[기자]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빌라에서 아파트로 넘어오는 데 20년이 걸렸다는 말 때문에 외부인을 내쫓는 명분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대표를 뽑으면서 자가 소유자와 세입자를 가르기도 합니다.

[지금 은행 다 무너졌는데 무슨 대출이 중요하다 그러세요]
[집에 그거 있죠? 집문서]
[그럼요]
[그럼 자기 집이지]

[기자]
영화는 한국인에게 집, 특히 아파트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보여주고요, 아파트를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도 디스토피아로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걸 말합니다.

[엄태화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 :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고 되게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게 어떻게 보면 뗄 수 없는 애증 같은 것인데 그냥 그 재난 상황에서 아파트가 배경이라는 것만으로도 보는 분들이 더 친숙하게 현실적으로 몰입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과연 우리의 끝이 어떻게 될까를 한 번쯤은 다 같이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앵커]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양훼영 기자와 계속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영화 설정이 무척 재밌는 것 같은데, 최근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도 있고 하니까 건물이 다 무너지고 한 채만 남았다는 설정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기자]
네 맞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언론시사회에서도 관련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었는데요. 특히 주연배우인 이병헌 씨가 주변 지인들한테 이번에 개봉할 영화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세상의 모든 아파트가 무너졌는데 딱 하나만 남았고,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찍었다' 이랬더니 지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처음 한 말이 '어느 시공사 아파트냐고'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정도로 이병헌 씨 본인도 많이 웃었고, 이 이야기를 언론 간담회 했을 때도 현장에 있었던 분들도 사실 모두 웃을 정도로 현실과 어떻게 보면 찰떡같이 잘 맞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영화 제목처럼 콘크리트는 아파트 건설에 중요한 자재잖아요. 우선 콘크리트가 뭔지 이야기 나눠볼까요?

[기자]
네. 이 콘크리트는 자갈, 모래, 시멘트, 물을 섞어서 만든 건축 자재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를 만드는 재료의 양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게 되는데요, 시멘트 함량을 높이게 되면 강도와 내구성이 높아지고요, 반대로 물을 너무 많이 섞게 되면 연해지면서 강도가 낮아지고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콘크리트는 재료 자체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잘 활용되고 있고, 높은 강도와 내구성도 있어서 현재 쓰이는 건축 자재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건축 자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현재 콘크리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매년 300억~400억 톤 정도의 콘크리트가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거는 인간이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런데 콘크리트 시공 하는 걸 보면 철골을 먼저 세워놓고 거기에 반죽을 붓잖아요. 철골은 왜 필요한 건가요?

[기자]
높은 건물을 만약에 세우게 됐을 때는 단순히 중력 이상의 다양한 힘들이 건물에 많이 작용이 됩니다. 특히 줄어드는 압축력, 늘어나는 인장력, 면을 가위처럼 끊어 내려고 하는 전단력이 있는데요. 콘크리트 같은 경우에는 인장력과 전단력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취약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철근입니다. 그래서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하면 압축력과 인장력, 거기에 전단력까지 매우 강한 특성을 지닌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죠.

여기에 또 다른 장점은 원래 철근 같은 경우는 철이기 때문에 부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데, 콘크리트가 강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들어온 아주 미세한 수분들도 한동안 굉장히 막아줘서 철근의 부식을 막아주고요. 건물이 붕괴할 때도 철근 콘크리트가 장점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자체는 강한 외부 충격을 딱 받으면 한 번에 부서지고 쪼개지게 되는데, 철근 콘크리트의 경우에는 철근이 먼저 변형을 안쪽에서 일어나게 되고요. 이런 안쪽 변형으로 인해서 콘크리트의 처짐, 균열 다른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외부에서 붕괴 위험을 사전에 알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앵커]
철근이 콘크리트의 단점을 보완하고 건물의 강도와 내구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데, 최근 부실 시공에서 철근을 적게 사용한 게 얼마나 위험했는지 다시 한 번 느껴집니다. 그럼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요?

[기자]
다행히 있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슈퍼콘크리트인데요. 시멘트와 모래, 물이 들어가는 건 똑같고, 자갈 대신 나노물질을 넣고, 추가로 강섬유와 화학혼화제 등을 첨가해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슈퍼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압축강도가 4~5배 강한데요. 일반 콘크리트는 미세하게 쳐다 보면 안이 마치 건빵처럼 내부에 작은 빈 공간이 많지만, 슈퍼콘크리트는 나노물질과 반응성 물질이 이 부분을 채워 밀도가 높아지고, 추가로 넣은 강섬유가 철근의 역할처럼 인장력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철근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일반 콘크리트보다 철근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 철근과 콘크리트 사용량 자체가 줄어들어 탄소배출량 역시 30%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에 조개껍데기 구조의 울릉도 리조트와 레고랜드에 진입하는 춘천대교를 철근 없이 슈퍼콘크리트로 건설했고요. 최근에 지은 거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콘크리트 사장교인 고덕대교도 슈퍼 콘크리트가 사용됐습니다.

[앵커]
말 그대로 슈퍼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콘크리트인데 장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현재 많이 쓰이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기자]
아무래도 가격이 문제입니다. 슈퍼콘크리트의 제조비용이 일반 콘크리트의 30배까지 비쌌던 게 첫 번째 문제였고요. 건설 특성상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재료는 쉽게 콘크리트로 사용되기 어렵거든요, 슈퍼콘크리트가 다양한 구조물에 적용이 되는 사례가 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최근 건설기술연구원은 슈퍼콘크리트의 재료를 국산화하고,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저가 재료로 대체, 배합 비율 최적화 등을 통해 제조 가격을 50%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슈퍼콘크리트를 다양한 구조물에 적용하고 있고, 탄소 저감은 물론 공사 기간 단축이라는 장점도 있는 만큼 앞으로 활용될 일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앵커]
네, 성능이 좋은 재료를 써서 영화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건물은 없어야 할 텐데요. 재난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에서만 만나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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