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은 / 상담심리학자
[앵커]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중독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보다 관계 자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느끼며 집착하는 경우, '관계중독'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 스스로 온전한 존재가 되기 어려워 삶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고 하는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관계중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유독 연애를 쉼 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항상 연애를 해야 하고 심하면 환승 연애를 하기도 하고 이런 분들이 있는데, 혹시 이런 사례를 '관계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죠, 정말 너무 흔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심리학에서 우리가 중독에 대해서 논할 때, 술이나 특정 음식, 또는 카페인이나 설탕처럼 특정한 물질에 중독되는 것을 물질중독이라고 부릅니다.
물질중독에는 먹는 음식이나 성분뿐만 아니라 담배, 약물 등도 해당이 되죠. 그런데 특정한 물질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현재는 도박중독만 정식으로 진단되고 있지만, 사실 과도한 인터넷 사용이나 게임, 쇼핑, 성 역시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쉽게 납득하실 만한 친숙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익숙하고 흔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문제로 인지하기 어려운 중독이 있는데요, 바로 말씀하신 것처럼 관계중독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모든 사람은 대인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관계를 맺는 그 사람 자체보다 관계 자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여기며 관계에 집착하는 경우, 특히 관계가 없으면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앵커]
그런데 연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애가 끝나면 힘들어서 다시 다른 사람을 찾거나 슬퍼하는 일은 굉장히 흔한 일이라서 이런 관계중독이 뭔지 굉장히 궁금한데요, 어느 정도가 되어야 주의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친밀한 관계가 끝날 때, 관계의 상실에 따른 애도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별 후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고, 헤어진 연인을 원망했다가, 그리워했다가, 추억의 물건과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울기도 하고, 갑자기 관련된 물건을 전부 버렸다가 도로 주워 오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행동들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주파수"이런 것들을 찾아서 들으시며 떠난 연인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요.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실에 대한 애도 반응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유독 강렬한 애도 반응이 끝나지 않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애도 반응을 회피하기 위해서 쉼 없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이별 후 심리적 어려움을 견딜 수 없을까 봐 소위 말하는 '환승'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환승은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질 것을 대비하여 미리 다음에 만날 사람을 '준비'해두는 걸 말하는데요. 이러한 모습들은 사실 연애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아님에도,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이러한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깐 관계중독이 어떤 건지 느낌은 좀 오는데 그래도 정의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관계중독의 정의는 사실 아직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관계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 들마다 관계중독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람 중독, 연애 관계라는 관계 자체에 대한 중독, 성 중독 등을 모두 관계중독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관계 안에서의 경험에 중독되는 것이 관계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관계가 중독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중독의 세 가지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인데요.
그 세 가지 특징 중 첫 번째는 정서적 친밀함에 강한 갈망, 두 번째는 갈망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 세 번째는 갈망을 통제하지 못함으로 인해 삶에 부정적인 결과들이 초래된다는 것입니다.
연애 관계 그 자체든, 특정한 연인이든, 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보다도 관계 안에서 느끼는 친밀감이나 특정 상황 또는 행동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있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느껴진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연애하지 않는 자신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중요한 위험 신호 중 하나입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관계중독의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터뷰]
앞서 관계중독이 왜 중독에 해당하는지 말씀드렸는데요. 이인재, 양난미 연구자는 관계중독의 특성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첫 번째 특성인 갈망은, 관계 경험 자체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갈구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좌절되었던 사랑, 애정, 보살핌에 대한 상처와 욕구를 연애 관계를 통해 채우고자 하며 이를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는 시도가 과도할 때 주의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특성인 금단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거나 상대와 함께 있지 못할 때 좌절스럽고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게 되며, 과민해지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혼자라는 외로움, 허전함, 정서적 허기, 우울감을 나타내는데요.
자신이 혼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 버려지게 될 것 같은 불안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통제 결여인데요, 관계 경험을 조절하거나 축소하거나 중지시키려는 노력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계에 대한 갈망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고, 반복적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특성은 손상입니다. 이는 관계 경험에 대한 몰입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관계, 일자리, 교육적·직업적 기회를 상실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앵커]
이런 관계중독을 겪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나 어느 정도 이해를 할 것 같아요, 공감 되는 면이 있잖아요, 그러나 관계중독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뭘까요?
[인터뷰]
관계중독이 나타나는 데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나 아동기 경험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이나 보살핌을 성인기 연애 관계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실제로 학대 적인 가정에서 성장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동기에 외상 경험이 있었을 경우에도 대인관계에서 더욱 불안을 느끼고 과도하게 관계에 의존하게 되거나 거절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유기 불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거죠. 한편으로 보호자가 지나치게 아이를 과보호하는 경우에도 관계중독이 나타나게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통제적이고 간섭적인 과보호로 인해 관계 내에서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로 중독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독립적인 자기 자신으로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혼자 있는 나로서는 충분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관계중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앵커]
지금 이 방송 보시면서 '내가 관계중독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 같은데요, 이걸 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우선 내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전 방송들에서 보셨다시피, 모든 감정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감정 자체가 잘못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감정이나 고통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물론 회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만,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회피만 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피하는 것들이 더더욱 두렵고 공포스럽게 느껴지게 됩니다. 관계중독인 분들은 특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스스로의 감정을 부인하고 즉각적으로 억압하며 자신을 다그치기 보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 대하듯이 자신을 대한다면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들을 혼자 겪어나가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면, 심리상담을 통해서 좀 더 안전하게 함께 이야기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감정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우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자신과 있는 것을 보다,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면, 연애도 더욱 건강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앵커]
나라는 존재 자체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이러한 관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김지은 상담심리학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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