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동물의 다양한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오늘도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이번 시간에는 어떤 동물을 만나볼까요?
[기자]
오늘은 이맘때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마 최근 들어 철새 도래지로 새들이 돌아온다는 소식 들어본 적 있으실 텐데요, 철새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0월 정도에 우리나라에 와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3월쯤 돌아가는 겨울 철새, 반대로 한반도에서 여름을 보내는 여름 철새가 있고요. 봄·가을에 우리나라를 잠시 들렀다 가는 철새도 있는데 이런 새들을 나그네새 또는 통과철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창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들은 겨울 철새인 거죠.
[앵커]
봄·여름·가을·겨울 다 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았다가 다른 나라로 가는 건데, 한해에 얼마나 많은 철새가 우리나라로 오는 건가요?
[기자]
우리나라에 기록된 새가 약 520종 정도 되는데요, 이 가운데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텃새는 40여 종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인데, 그중에서도 겨울 철새는 150여 종에 달합니다. 올해도 벌써 많은 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온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국립생물자원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13~15일, 전국 주요 철새 도래지 11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겨울 철새 105종 60만 5천여 마리가 관찰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만천여 마리가 줄어든 수치인데요, 이 가운데 77% 이상이 큰기러기와 흰뺨검둥오리 같은 오릿과 조류였고요, 지역별로는 충남 서산시 간월호에서 발견된 철새가 가장 많았습니다.
[앵커]
이미 우리나라로 온 철새의 수가 굉장히 많은데, 이런 겨울 철새들이 대부분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기자]
겨울 철새들은 보통 러시아 북부 지역이나 중국 북쪽의 내몽골 지방에서부터 날아오는데, 이동 거리가 수천 km에 달합니다. 이런 겨울 철새들은 북쪽 지역이 따뜻한 계절일 때는 넓은 초지나 습지에서 새끼를 낳아도 먹이 경쟁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는데요, 새끼가 자라고 혹한기가 올 때쯤이면 좀 더 따뜻한 우리나라로 와서 3월부터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거죠.
[앵커]
그렇다면 철새의 이동 거리가 보통 수천 km 되는 거잖아요? 어떻게 매년 길을 잃지 않고 우리나라로 잘 찾아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지 궁금한데, 어떤 원리인가요?
[기자]
철새는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서 방향을 찾는데요, 몸속에 유전적으로 생체 나침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철새의 이런 능력에 대한 추측은 있었지만, 과학적 원리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유럽 과학자들이 철새 중 하나인 유럽울새를 대상으로 연구해 봤는데요, 이 새의 망막 속에 있는 단백질 중 하나가 생체 나침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크립토크롬'이라는 이 단백질은 동식물에서 청색광을 감지해 24시간의 일주기를 인식하게 하는데요, 유럽울새의 망막에 있는 이 크립토크롬이 자기 신호에 특히 민감한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단백질이 일종의 센서 역할을 해서 철새가 지구 자기장을 잘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특히 철새인 유럽울새의 크립토크롬 단백질은 가금류인 닭이나 텃새인 비둘기에 비해서 자기장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한 마디로 철새의 몸속 단백질이 유난히 자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지구 자기장을 잘 이용할 수 있다는 거네요.
[기자]
네, 맞습니다. 철새의 생체 나침반에 대해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는데요, 캐나다 연구팀이 미국 남부와 캐나다 지역에 사는 흰목참새를 관찰해본 결과, 자기장을 느끼는 특정 뇌 영역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클러스터 N'이라고 불리는 이 영역은 특히 새들이 야간에 자기장 나침반을 활성화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흰목참새는 천적들을 피하고 시원한 시간에 비행하기 위해서 밤에는 클러스터 N을 활성화 한 채로 이동하고, 휴식할 때는 다시 휴면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뇌가 받아들이는 자기장 정보를 자유자재로 처리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죠.
[앵커]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까 초능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에 대단한 능력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철새가 무리 지어서 이동할 때 보면, 대형을 이뤄서 날아다니잖아요? 보통 V자 모양이던데,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
네,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종의 철새들이 V자 편대 비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철새가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V자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V자를 거꾸로 한 형태, 그러니까 제일 선두가 꼭짓점에서 맨 앞에 서고 양쪽 뒤로 비스듬히 늘어서는 형태를 말하는 거죠. 보통 선두에 있는 새는 가장 힘이 세고 체력이 좋은 개체인데요, 리더가 체력이 바닥나면 다음 순서에 있는 새와 자리를 바꿔가면서 이동합니다.
또 V자 편대 비행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이런 형태에서 앞쪽에 있는 새들이 날갯짓을 하면 공기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승기류 양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뒤따르는 새들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상대적으로 날갯짓을 덜 해도 편하게 비행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실제로 V자 대형에서 뒤에 있는 새일수록 날갯짓 횟수와 심장 박동수가 적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런 형태로 무리 지어 이동하면 혼자서 비행하는 것보다 70% 이상 더 많은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앵커]
이제 무리 지어 이동하는 철새들을 보면 가장 선두에 있는 새가 힘들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되겠습니다. 앞서 우리나라에도 이미 60만 마리가 넘는 철새들이 찾아왔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어떤 철새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기자]
우리나라에도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가 몇 군데 있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철새들이 찾는 곳이 낙동강 하구인데요,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라 물이 얼지 않고 사계절 먹이가 풍부한 편입니다. 우리가 흔히 '백조'로 알고 있는 고니나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등이 이곳에 머무는데요, 특히 일반 고니보다 조금 더 몸집이 큰 '큰고니'가 주로 낙동강 하구를 찾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오는 큰고니의 80%는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고 하는데요, 눈으로 봤을 때 그냥 고니와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둘 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새입니다.
[앵커]
그리고 또 철새 떼가 날아올 때면 아주 화려하게 하늘에서 군무를 볼 수 있잖아요? 어떤 새가 있을까요?
[기자]
군무로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 가창오리 떼의 군무일 텐데요, 해마다 수십만 마리의 오리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하늘 위를 수놓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창오리는 전 세계 개체군의 99%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주로 금강 하구 지역이나 해남 등에서 서식하고요, 보통 낮에는 물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해 질 무렵에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노을을 배경으로 마치 그림과 같은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 중의 하나로 흑두루미를 꼽을 수 있는데요, 세계 5대 연안 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이 흑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입니다. 두루미는 현재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인데요, 이 가운데 1천 마리 이상이 해마다 순천만 지역에서 먹이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흑두루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 두루미와 달리 머리는 흰색이고 몸통은 검은색인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올해는 순천만 지역에 갑자기 개체 수가 늘면서 모두 2천2백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관찰됐다고 하니까요, 찾아가시면 쉽게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네, 최근엔 기후 변화로 철새들이 오는 시기, 그리고 철새들의 이동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해마다 돌아오는 반가운 손님, 겨울 철새들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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