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어떤 동물을 만나 볼까요?
[기자]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요, 이맘때쯤 빠질 수 없는 동물이 있습니다. 산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인데, 오늘은 이 루돌프의 실제 주인공인 순록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그런데 저도 순록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는데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거죠?
[기자]
순록과 사슴은 다른 동물인데요. 루돌프의 경우는 가끔 점박이 무늬를 가진 꽃사슴처럼 표현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눈길에서 썰매를 끄는 루돌프가 있다고 한다면 사슴보다는 순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통 사슴이 몸길이 150cm인데 비해 순록은 몸길이가 220cm 정도 되고 무게도 사슴보다는 많이 나갑니다. 순록은 주로 그린란드나 시베리아와 같이 추운 북극 툰드라 지역이나 산악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데요, 북극 지방 사람들에게는 이동수단이 되기도 하고 가죽이나 고기 등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앵커]
사슴과 순록이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크기나 무게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루돌프 하면 빨간 코가 상징이잖아요, 실제 순록의 코도 빨갛다고요?
[기자]
네, 맞습니다. 순록은 그냥 눈으로 봐도 코가 빨간 편인데요, 과학자들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순록의 대사 시스템을 분석해 봤더니 순록의 코에는 모세혈관이 집중돼 있고 적혈구가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순록의 코에 있는 모세혈관은 1㎟에 20개 정도로, 사람보다 25%나 더 많았는데요, 사람도 추우면 코가 빨개지잖아요, 그러니까 모세혈관이 더 많은 순록은 코 주위에 혈액이 모여 원래 빨갛던 코가 더 빨개질 가능성이 더 큰 것입니다.
또 순록은 사람처럼 땀을 흘려 열을 식히지 못하기 때문에 코로 혈액을 집중해 열을 식히는 역할도 하는데, 실제로 연구팀이 순록을 러닝머신에서 달리게 한 뒤에 열 화상 카메라로 촬영해 봤더니, 코의 온도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 확인됐습니다. 온도를 보면 25~30℃까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렇게 코가 열을 모으기도 하고 식히기도 하면서 순록이 극한의 추위에서 잘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요, 모세혈관이 많으면 전달되는 산소량도 늘어나면서 온도 조절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는 순록에게는 몸 전체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 코가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앵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순록의 코가 밤길을 밝히는 역할은 아니지만, 실제로 순록의 몸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였네요?
[기자]
네, 사실 순록이 겨울철 밤길에도 길을 잃지 않고 썰매를 끈다거나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코보다는 눈의 역할이 큰데요, 순록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망막에 일종의 반사판이 있는데, 순록은 이 반사판의 색깔을 계절에 따라 바꿀 수 있어서 여름에는 눈이 황금색을 띠다가 겨울에는 파란색으로 변합니다. 순록이 사는 북극 지역은 겨울에 해가 지평선 아래에 있어서 햇빛이 대부분 청색광인데, 반사판 색이 바뀌면 청색광을 잘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외선도 잘 흡수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순록의 눈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반사판의 미세 구조 때문인데, 순록 눈에 있는 반사판은 콜라겐 섬유 다발로 되어있는데요, 이 미세 구조물이 겨울에는 이런 구조물을 더 촘촘하게 발달시키는 방법으로 빛을 잘 흡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정말 루돌프처럼 코가 빨간 것도, 또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서 시각이 더 좋아지는 것도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니까 굉장히 신기한 거 같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또 순록은 반추동물인데요, 소와 같이 위 속에 넣어둔 먹이를 입으로 다시 올려서 씹어 삼키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순록은 북극과 같은 극지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한 유일한 반추동물이라고 하는데요. 극지방은 춥고 식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하루 내내 낮이 계속되는 백야현상이나 밤이 계속되는 극야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순록의 게놈을 분석해 봤더니 비타민D 대사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다시 말해 긴 낮과 긴 밤이 이어지는 불규칙한 환경이나 일사량이 적은 곳에서도 신체 리듬이 적응할 수 있도록 발달한 것입니다.
[앵커]
아주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먹이를 구할 뿐 아니라 천적을 피하는 방법도 나왔어야 할 거 같아요.
[기자]
네, 그래서 순록에게는 자신의 무리를 지키는 아주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순록의 태풍'이라고 불리는 집단행동인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2년 전, 한 사진작가가 러시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입니다. 수많은 순록 떼가 모여서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순록은 위험을 감지하면 이렇게 아주 어린 새끼들이나 암컷을 가운데에 두고 수컷들이 둘러싸듯이 회전하면서 빠르게 달립니다.
순록은 보통 몇백 마리 정도라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이동하다가 봄철이 되면 최소 5만 마리에서 최대 50만 마리까지 거대한 무리를 이루게 되는데, 이렇게 함께 원을 이루어 움직일 때는 최고 속도가 시속 8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순록이 빠르게 달리면서 새끼들을 보호하니까 아무리 강한 포식자라도 뛰어들 수 없는 거죠.
[앵커]
그렇다면 순록이 이런 극한 지역에서 먹이는 어떻게 구하는 걸까요?
[기자]
순록은 주로 이끼나 조류와 같은 지의류를 먹고 삽니다. 북극과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는 지의류가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이런 순록의 습성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르웨이 연구팀이 북극 스발바르 제도에 사는 순록 2천2백 마리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한 뒤 관찰해봤는데요, 순록들은 눈 대신 비가 내려 땅 위에 얼음층이 생기면서 땅속 식물과 이끼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요, 그 대신에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얼음층이 두꺼운 곳일수록 해안으로 이동하는 순록이 많았고요, 이 지역 순록 개체 수의 3분의 1가량이 해조류를 먹는 것으로 관찰되기도 했는데요, 연구팀은 해조류의 영양가는 육상식물과 비슷하지만, 이것만 먹고 살 수는 없어 보인다면서, 주 식량이라기보다는 보조적인 에너지 섭취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지구온난화로 이상 기후현상이 발생하면서 땅속 식물은 줄어들고 해조류는 늘어나자 순록이 나름의 적응 방법을 찾았다고 볼 수 있겠죠.
[앵커]
사실 그동안 소개했던 동물들은 다 기후변화 때문에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암울한 소식만 들었었는데 지금 적응을 잘하는 걸 보니까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도 있겠죠?
[기자]
네, 맞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에는 북극해의 기후변화로 스발바르 제도에서 200마리가 넘는 순록이 한꺼번에 굶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순록을 관찰한 지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요, 전년도인 2018년 말쯤, 스발바르 제도에는 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많은 비가 내렸고 빗물이 얼어붙어서 이전보다 두꺼운 얼음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순록이 얼음에 덮인 풀을 뜯어 먹지 못하고 해초 등으로만 버티다가 결국은 굶어 죽게 된 것이죠.
기후 변화의 영향은 순록의 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산타 마을'로 알려진 핀란드 라플란드에서는 순록들이 점점 작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영국 연구팀이 1994년에 태어난 순록의 평균 무게를 재 봤더니 55kg 정도였는데, 2012년에 태어난 순록은 48kg으로 18년 사이 13%나 몸무게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당시 라플란드의 기온은 150년 사이 1.5℃ 정도 올라갔는데, 마찬가지로 순록이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하면서 몸집을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변해간 것입니다.
[앵커]
역시 순록이 사는 지역이 북극 지역인 만큼 기후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순록은 자연에 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기도 하잖아요? 최근에는 긍정적인 관찰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북극 지역 순록이 위기에 처했지만, 스발바르 순록의 경우 오히려 개체 수가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는데, 핀란드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스발바르 순록은 땅 위에 있는 풀이나 이끼류를 먹기 힘들어지자 식단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새로운 먹이는 '그라미노이드'라는 식물인데요, 이 식물은 줄기가 위로 뻗기 때문에 얼음이 1cm 정도 쌓여 있어도 뚫고 나와 동물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또 영양분도 순록이 겨울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고 하는데, 많은 곳에서 온난화로 인해 순록이 고통받고 있지만, 이렇게 변화에 적응해가는 모습도 관찰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앵커]
자,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루돌프, 순록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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