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라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과학 기자와 함께 전 세계 도시 속에 숨겨진 과학 문화유산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과학도시, 최소라 기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떠나볼 도시는 어딘가요?
[기자]
오늘의 과학도시는 최근 영화에 등장해서 꽤 많은 분에게 낯이 익을 수도 있는 곳입니다. 1940년대 과학도시로 탈바꿈해 지금까지 첨단 과학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곳, 어디인지 말씀드리기 전에 준비된 영상으로 만나보시겠습니다.
[기자]
오늘의 과학도시는 로스앨러모스입니다. 미국 서부 뉴멕시코 주에 있는, 인구 1만2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데, 앞선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심지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기도 했고, 여전히 물리학은 물론이고, 에너지, 바이오, IT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앵커]
맨해튼 프로젝트 하니까 지난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의 배경이 되는 도시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 배경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의 로스앨러모스입니다.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하자면, 독일에서 핵분열 현상이 처음으로 관측됐고, 이에 1942년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하기 전에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비밀리에 과학자들을 모은 겁니다.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됐고요,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30여 곳의 시설에서 연구가 진행됐는데, 핵심 연구시설이 들어설 곳으로 로스앨러모스가 선정됐습니다. 로스앨러모스는 원래는 인디언들이 모여 살던 외진 마을이었는데, 당시 이 지역이 외부에서 고립되어 있고 자연조건이 연구에 적합하다고 판단돼 연구 시설 부지로 선정됐고요, 또 뉴멕시코 지역이 오펜하이머가 평소 굉장히 좋아했던 지역이라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시설로 선정됐다고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앵커]
당시에는 상당히 외진 도시였는데,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모두 이 지역으로 비밀리에 모여들었다고 하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로스앨러모스 지역에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등 당대 물리학계 거장들을 영입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가족들까지 불러오게 해서 다 함께 살도록 아예 과학자 마을을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 독일보다 먼저 핵분열을 이용한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 실험적 연구가 진행됐고요, 원자폭탄이 완성되기도 전에 독일이 항복했는데, 일본의 계속 저항을 하면서 연구개발이 계속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로스알라모스에서 200여㎞ 떨어진 알라모고르도 근처에서 실시 됐습니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습니다.
[앵커]
영화 오펜하이머 속에서도 트리니티 실험을 하는 장면이 가장 절정 부분이었죠. 그런데 이 실험이 성공하다 보니까 실험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원자폭탄의 개발로 전쟁이 빨리 종결됐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군사적 필요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의 사용이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극도의 파괴력은 물론이고, 방사능에 의한 장기적인 환경 영향과 인체 영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인데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면서 윤리적 문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감독이 이런 윤리적 문제와 당대 필요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그려냈죠. 또 원자폭탄 개발로, 이후 각국의 핵무기 경쟁을 촉진하는 등의 장기적인 국제적 영향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맨해튼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당시 지역 사회의 민간인들은 로스앨러모스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몰랐는데요, 때문에 트리니티 실험이 진행된 알라모고르도와 반경 300∼400㎞의 민간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피폭되기도 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방사선에 노출됐고, 실제로 암과 조산, 그리고 선천적 기형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미국 상원은 최근에 방사선 노출 보상 프로그램의 확대를 승인했고, 이 같은 원자폭탄 실험 등으로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건강 보험 혜택과 보상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제 수십 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과학적인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나요?
[기자]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는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로,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속해 있는데요, 2조 6천억 원의 예산에 1만 명 이상의 직원이 재직하고 있는, 여전히 건재한 연구소입니다. 연구 분야는 여전히 원자력과 핵무기 관련 연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요, 이외에도 AI, 신재생 에너지, 우주 탐사, 나노기술, 바이오, 슈퍼컴퓨팅, 로보틱스 등 다양한 첨단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 1천 5백여 건 이상의 ISI 논문 발행 실적으로 미국 국가연구소 중에서도 최고의 연구 수준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입니다. 이 연구소가 로스앨러모스뿐 아니라 뉴멕시코 주에서도 최대 일자리인 만큼, 로스앨러모스는 고학력자 비중이 굉장히 높고, 빈곤율도 미국에서 가장 낮은 편인 도시입니다.
[앵커]
인재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최근에는 인재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2018년경부터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으로 중국의 미국 인재 쟁탈이 활발한데요, 미국의 전략정보 컨설팅업체인 '스트라이더 테크놀로지'의 중국공산당이 지난 35년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출신 과학자 160여 명을 스카우트해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2022년에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지난 35년간 최소 162명의 로스앨러모스 출신 연구원들을 채용했고, 상당수는 중국으로 넘어가 미사일 개발 등 군사 기술 관련 연구를 지속했다고 하고요, 이 가운데 최소 1명이 미 에너지부에서 최고 수준 기밀정보 접근 허가를 받았던 인물로 전해졌습니다.
또 앞서 2017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군사기술 연구 분야에는 미국 로스앨러모스연구소 출신이 많아서 이들은 스스로를 '로스앨러모스클럽'으로 부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인재 유출 문제는 미국이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미국은 최근 과학자 양성에 심사를 신중하게 하거나, 중국인 참여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앵커]
미 원주민이 모여 살던 외딴 마을에서 핵실험에 작전 기지가 되고 연구소가 들어선 현대까지, 로스앨러모스 이야기 오늘 잘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최소라 (csr7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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