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라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를 고쳐서 우수한 특성만 갖게 하는 '맞춤형 아기' 기술은 지금껏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는데요,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 성과가 속속 나오면서 영화 속 설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려도 만만치 않은데, 자세한 내용 최소라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에 또 한 번 진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어떤 건가요?
[기자]
최근 한미 공동 연구진이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정교하게 편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심사하고 있는데, 논문이 미리 공개돼서 화제가 됐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직후의 '배아'에서 심장병과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을 고쳤는데 이후 배아가 정상발달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쓰인 유전자 가위가 '아데닌 염기 교정기', ABE라는 건데요,
4세대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굉장히 정교한 기술입니다.
비교해보자면, 기존에 널리 쓰이던 3세대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카스9'인데요,
DNA 이중 가닥을 싹둑 자른 뒤에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입니다.
DNA가 완전히 잘렸다 붙기 때문에 자칫하면 잘린 게 통째로 날아가서 치명적인 유전자 결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번에 쓰인 4세대 유전자 가위는 DNA를 잘라버리는 게 아니라, 한쪽 가닥에만 흠집을 냅니다.
그리고는 DNA 상에 염기를 한 개만 건드리는데, 이번에 쓰인 ABE는 아데닌을 구아닌으로 바꿔줍니다.
대규모 유전자 결실은 일어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앵커]
원리를 보니까 기존보다 더 정교한 만큼 더 안전할 것 같은데요. 실제 결과는 어땠나요?
[기자]
유전자 편집을 거친 배아는 이후에 세포 분열을 잘 했고요,
엄마 배에 넣어주면 임신될 수 있는 단계인 '포배기'까지 정상발달했습니다.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기존에 가장 큰 문제였던 대규모 유전자 결실도 없었습니다.
다만, 편집이 완벽하게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정확히 질병 유전자만 편집됐는지, 애먼 곳은 건드리지 않았는지 살펴봤더니, 빈혈 유전자를 겨냥한 유전자 가위가 엉뚱한 지점도 함께 편집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 밖에도 포배기 세포 몇 개를 봤더니 일부 세포는 여전히 편집이 안 된 채로 섞여 있었습니다.
일명 '모자이크 현상'입니다.
이 배아가 아기로 태어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겁니다.
연구를 주도한 디터 에글리 교수는 "이 같은 오류와 모자이크 현상 때문에 임상 적용은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연구에 참여한 배상수 교수는 서면 인터뷰에서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 단계가 아니"라고 했는데, 다만 "초기 발생 단계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인류에겐 큰 자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앵커]
이렇게 유전자 가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나는 날도 머지않아 보이는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에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태어나게 했다고 주장했죠.
3세대 유전자 가위, 그러니까 크리스퍼로 배아 유전자를 편집해서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에 걸리지 않게 했다는 겁니다.
아이들의 실존 여부나 건강상태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허젠쿠이 교수는 중국에서 불법 의료행위로 3년을 복역했습니다.
복역을 마친 허젠쿠이는 최근까지도 유전자 편집 아기 세 명이 모두 건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8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지금도 과학계는 허 교수를 강하게 비판하는 분위기입니다.
에이즈에 걸린 부모에게 태어난 아기라도 의학적으로 감염을 예방할 수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아직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전자 편집을 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온 겁니다.
또 유전자 편집도 자기 결정권의 영역이라면서 아기들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윤리적 비판도 제기됩니다.
[앵커]
윤리적 논란이 있는 만큼, 전 세계 학계에서는 엄격히 금하고 있나보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비정기적으로 유전자 편집의 대가들이 한 데 모이는 국제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지난 2015년 회의를 보면, 임신을 목적으로 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후에 다른 가이드라인이 나온 적은 없거든요.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기에게 예상치 못한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거고, 또 편집된 유전자가 아기를 넘어서 후손에게까지 계속 전해질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법적으로도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곳에선 인간 배아로 실험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습니다.
시험관 시술 후 남은 잔여 배아를 제한적으로 쓸 수 있기도 하지만, 유전자 편집 실험에 딱 맞는 배아는 아닙니다.
현재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일부 국가들만 기초 연구를 승인해주는 수준이고, 이걸로 임신까지 허용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이제 대한 전문가의 의견 들어보시겠습니다.
[박은호 / 가톨릭대 생명윤리학 교수 : 현재까지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이나 역할을 저희가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고 때문에 편집을 통해서 유전자에 수정이 가해질 경우 그것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 위험성 측면에서도 저희가 그것을 과연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런데 치료 불가능한 심각한 유전 질환을 가진 부모라면 자녀가 그 병에 걸리지 않게 유전자를 고치고 싶어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인간 배아를 아예 다루지 못하면 기술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4세대 유전자 가위 연구에 참여한 배상수 교수는 "기술 발전에 비해 제도와 정책이 더디게 발전하는 것 같다"면서
"국내에선 연구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허용하고 있어서 앞으로 연구가 확장되는 걸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후대에 대물림되지 않는 유전병부터 치료를 시도해보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배아의 핵 속 DNA를 건드리는 것보다 난자에만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관의 유전자를 고쳐보자는 겁니다.
국내 전문가에게 직접 들어보시죠.
[김진수 / KAIST 공학생물학대학원 교수 : 미토콘드리아는 대대손손 유전이 안 되는 거죠. 모계로만 유전이 되니까 남자아이가 출산되면 남자 아이의 미토콘드리아는 다음 세대로 전달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이런 배아 연구를 하더라도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에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유전자 편집의 의학적, 사회적 위험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여전히 팽팽한데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범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최소라 (csr7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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