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분야의 과학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집중, 분석하는 '사이언스 취재 파일' 시간입니다. 오늘은 양훼영 기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지난 5일, YTN 사이언스가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 교수의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 소식을 최초로 전해드렸는데요. 양훼영 기자가 허준이 교수를 화상으로 인터뷰하는 등 계속 취재를 해왔잖아요. 우선 허준이 교수는 어떤 수학자인지 다시 한 번 소개해주시죠.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네. 허준이 교수는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1983년생으로 올해 만 39세입니다. 필즈상은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주는 상인만큼 올해가 필즈상 수상의 마지막 기회였는데, 예상대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허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졌지만,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한국에서 다니며, 한국 교육만 받았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고요. 대학 공부도 쉽게 적응하지 못해 대학만 6년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마지막 해 수리과학부 초청 강연에서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만나 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요. 이후 석사 과정부터 대수기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난 2012년 수학계 난제인 '리드 추측'을 해결하면서 수학계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18년 로타 추측을 해결하는 등 10여 개의 수학 난제를 해결하면서 이번에 필즈상을 받게 됐습니다.
[앵커]
그런데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연구가 바로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이라고 하던데요. 사실 이해하기 쉽진 않겠지만 어떤 추측인지 궁금합니다.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필즈상 선정위원회는 대수기하학의 도구를 사용해 여러 조합론 문제를 풀어 기하학적 조합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허준이 교수에게 필즈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는데요. 조합론은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경우의 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대수기하학은 원과 같은 기하학적 대상을 수식으로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문제이고, 로타 추측은 1971년 미국 수학자 잔 카를로 로타가 제시한 문제입니다. 허 교수가 푼 리드 추측은 채색다항식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채색다항식은 어떤 그래프에서 이웃한 꼭짓점은 서로 다른 색이 되도록 꼭짓점을 q개 이하의 색으로 칠하는 방법의 수를 나타낸 식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보시는 사각형 꼭짓점을 세 가지 색으로 칠한다면 두 꼭짓점의 색이 같은 경우는 총 18가지가 나옵니다.
이를 수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이게 채색 다항식입니다. 이런 채색 다항식을 여러 개 계산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이는데, 바로 계수들이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는 겁니다. 앞서 사각형의 채색다항식을 보면 계수가 1, 4, 6, 3인데, 1과 4, 6까지는 증가하다가 6에서 3으로 줄어들잖아요. 이런 패턴, 즉 채색 다항식의 계수를 앞에서부터 차례로 따져봤을 때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패턴이 모든 그래프에서 참이라는 것이 바로 리드 추측이고요. 벡터 공간까지 범위를 넓힌 게 바로 로타 추측입니다. 그런데 이 조합론의 문제에 허준이 교수가 직선, 타원, 쌍곡선 등을 분석하는 대수기하학을 접목해 증명해낸 겁니다.
[앵커]
허준이 교수가 학창시절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남들보다 뒤늦게 수학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는데요. 일부 언론에서 수포자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해명을 했다고요?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네, 그렇습니다. 허 교수는 작년과 올 초, 두 곳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린 시절 구구단 떼는 것도 어려워했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는데요. 또, 어릴 땐 수학에 별 재능도 없었다고도 말했는데,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기사에 '수포자'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겁니다. 물론 허 교수가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수학 연구를 뒤늦게 시작한 건 맞지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입학할 정도로 수학을 아주 못했던 것도 아니거든요. 결국, 허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 자신을 과거 수포자로 부른 상황을 바로 잡았는데요. 허 교수의 설명 직접 들어보시죠.
[허준이 / 2022 필즈상 수상자]
수학 성적이 좋았을 때도 있고 좋지 않았을 때도 있지만, 항상 중간 이상은 했기 때문에 수포자라고 말하기엔 좀 힘든 것 같고요.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는 수학에 큰 흥미가 없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부터는 수학을 굉장히 재밌어하기도 했고 열심히 해서 충분히 잘했기 때문에 수포자라 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앵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가능성은 수학계에서 일찍부터 점쳐져 왔긴 했지만, 실제로도 필즈상 수상 소식은 올 초에 알게 됐다고요?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네, 그렇습니다. 올해 초 국제수학연맹 회장으로부터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아 수상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수상 직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밝히면 안 되지만, 가족에게는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상 사실을 말했는데 가족의 반응은 차분했다고 하는데요. 허 교수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허준이 / 2022 필즈상 수상자]
필즈상 수상 소식은 올해 초 처음 들었는데요. (전화를 받은 게) 밤 시간대이기도 하고 아내가 자고 있어서 한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깨워서 얘기했는데, 아내는 '응,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바로 다시 자더라고요.
[앵커]
허준이 교수의 이번 수상이 한국 수학계의 중요한 역사가 된 것처럼 올해 필즈상 수상을 남다르게 받아들일 나라도 또 있죠. 바로 우크라이나인데요. 우크라이나 출신 수학자도 이번에 필즈상을 받았죠?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네,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인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교수도 필즈상을 받았는데요.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고차원에서의 케플러 추측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케플러 추측이란 정해진 공간 안에 구를 최대한 많이 쌓는 방법과 관련된 수학 문제인데,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이 문제를 파고든 지 13년 만에 8차원과 24차원에서의 케플러 추측을 대학원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한 건데요. 이를 '마법의 공식'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2014년에 여성 수학자로는 필즈상을 처음 받은 고 마리암 미르자하니 교수에 이은 필즈상 86년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수상자입니다. 지난 2월 수상 사실을 알고 매우 행복했지만, 불과 몇 주 뒤 러시아가 고향 키이우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비아조우스카 교수의 자매와 조카 등은 키이우에서 빠져나왔지만, 할머니와 부모님은 아직 키이우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요. 전쟁 이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몇 달 동안 연구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아조우스카 교수의 인터뷰 직접 들어보시죠.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 2022 필즈상 수상자]
처음 몇 달은 악몽과도 같았고, 그 악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제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이 아마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오랫동안 이 전쟁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참고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앵커]
올해 총 4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나머지 두 명의 수학자도 어떤 분들이 소개해주시죠.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네. 다른 두 명의 수상자는 위고 뒤미닐 코팽 프랑스 고등과학원 교수와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데요. 뒤미닐 코팽 교수는 사각이나 육각 등의 격자 위에 수많은 입자가 있다고 보고 그 입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률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하는 격자모형 관련 문제를 해결한 업적을 인정받았는데요. 특히, 3, 4차원에서의 격자모형에 관한 난제를 해결했습니다. 메이나드 교수는 수의 본질을 탐구하는 정수론을 연구하는데, 특히 소수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메이나드 교수가 해결한 쌍둥이 소수 추측은 173년 만에, 더핀-셰퍼 추측은 81년 만에, 에르되시의 추측은 25년 만에 풀렸는데요. 필즈상 선정위원회는 정수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공헌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허준이 교수가 인터뷰에서 '수학은 굉장히 중독성이 있는 학문이다'라고 했죠. 그 재미를 알리기 위해 곧 국내에서 강연회를 열 계획이라고 하는데 수학이 멀게만 느껴졌던 분들은 꼭 보시면 좋겠네요. <사이언스 취재파일> 양훼영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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