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사이언스 in Art] 점과 선으로 빚어내는 예술…이우환 화백

2022년 07월 29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이우환 화백은 일본의 '모노파'를 대표하는 근현대 미술의 거장인데요. 점과 선, 그리고 인간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설치 작품들은 단순함을 넘어 미학적인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미술 경매 시장에서 가장 작품이 많이 거래되는 작가 중에 한 분이죠. 바로 이우환 화백인데 일단 이우환 화백이 어떤 분인지부터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이우환 화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인데요. 특히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가장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단색화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입니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 화백은요.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 철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는 끝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 내에서 어떤 차별은 남아있었고요. 이런 일본의 예술 세계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면서 60년대 말에 '모노하'라고 불리는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됩니다. 이때 '관계항' 시리즈가 작업이 됐고요, 이후에 선이나 점 같은 기초적인 조형 언어에 집중하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앵커]
우리나라 작가가 일본 미술계의 중심에서 그것도 60년대 말에 선구했다는 게 신기한데요. '모노하 운동'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인터뷰]
네, 이 화백이 일본에서 유학하던 당시, 일본의 예술계에서는 '모노하'라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됐는데요. 이 모노하의 '모노'는요, 일본어로는 물건이나 사물을 뜻하는데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체들, 특히 돌이나 나무와 같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물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장소에 옮겨 놓아서 일종의 '제시'를 한다는 개념입니다.

주로 사물과 사물 또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주목하는데요. 이우환 화백은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기도 할 정도로 글에 굉장히 진심인 작가거든요. 이 모노하 운동에 대해서 이우환 화백이 평론을 썼던 게 1969년, 예술 평론상에 입상하면서 당시 일본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게 되는데요. 이후에 모노하 작가들 사이에서 이우환 화백이 모노하 운동의 일종의 대변자와 같은 포지션이 됐다고 합니다.

당연히 일본 미술계에는 큰 영향을 끼쳤고요. 이우환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도 모노하의 정신을 나타냈고, 이론도 함께 발전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노하' 운동의 창시자라는 말과 함께 미술계에서도 굉장히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앵커]
간단하게 말하면 자연 물체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모노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네, 이우완 화백은 '모노하' 운동과 함께 '관계항' 시리즈를 1960년대부터 작업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화백은 모노하 정신을 상세하게 다룬 자신의 저서에서 "만들어진 것만이 세계라면, 만들어져있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언급했거든요. 여기에서 말하는 '만들어져있지 않은 것'은 자연물 즉, ‘모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고요. '만들어진 것'은 인공물을 뜻하겠죠. '관계항' 시리즈에서는 사람이 손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물과 그 반대의 개념인 산업 사회를 상징하는 철판이 재료를 한 공간에 자리하게 하는데요. 작가는 두 사물 사이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작업을 ‘창작’이나 ‘창조’했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제시’한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작가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작품 안에서 사물들의 조화와 관계를 바라본다는 겁니다. 자연물을 이용한 연출 또한 모노하 정신이 내포하는 동양적인 태도에 속하는데요. 바로 서구 사회가 일으킨 산업주의적인 사고나 서구적인 사고에서 기초한 미술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 동양적인 사물에서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건축에서도 그렇지만 동양 미술에서의 아름다움은 서양의 황금 비율과 같은 만들어진 아름다움과는 그 의미가 달리 하기 때문에 나무, 돌과 같은 자연물을 통해서 작품 속에 보여주고자 하는 그런 개념을 제시합니다.

[앵커]
이우환 화백은 '점'과 '선'을 자주 사용하던데요, 그거도 의미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일단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시기별로 살펴보면 좋은데요. 사물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관계항 시리즈 외에도 1970년대부터 작업한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이 있습니다. 이우환 화백은 이 두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요, 산다는 것은 선이다.” 굉장히 시적이죠? 점을 먼저 찍어야 선이 되고, 그것이 면으로 펼쳐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시리즈는 기존의 모노하 시리즈와는 굉장히 다른 작업인데요. 특히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점 형태가, 한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찍혀 있는 작업인데요. 붓에 묻힌 물감이 연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점을 눌러 찍는 게 특징입니다. 점을 찍기 시작할 때부터, 찍어낼수록 연해지는 형태를 통해 ‘시작과 끝’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나타냅니다. 특히 이우환 화백은 하나의 점을 찍을 때도 캔버스 안의 공간과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무척 신중하게 호흡하면서 작업한다고 하는데요. 이 점의 특성이 마치 좌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 번 찍은 점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선으로부터 시리즈는 이전의 점 시리즈에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캔버스 위에,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길게 그어진 선들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자세히 보면 각기 다른 선들이 자리하고 있고요. 이 선 하나하나를 보기보다는 캔버스 안에 자리한 선들의 전체적인 조화에 의의를 둔 작품입니다. 1980년대에 작업한 바람 시리즈는, 점 그리고 선 시리즈에서 변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점과 선이 캔버스 위에 한층 더 리듬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작품들은 좀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이 바람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율동감이 느껴지는데요.

이우환 화백은 이 바람 시리즈에 대해서 “근대 회화의 어법이 아닌, 나름대로의 것을 찾다 보니 점과 선이 나왔고, 규정지은 구도를 갖지 않으려다 보니 어떤 자동률에 따르게 되었다.” 라고 했는데요. 여기에서 자동률은 바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점을 찍고, 선을 긋고 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붓질 자체를 비스듬하게 꺾어 그리거나 겹쳐 그리기도 하는데요. 이런 부분에서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앵커]
설명을 듣고 보니 작품을 볼 때 시 구절이 떠오를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캔버스에 점 하나를 찍은 작품을 참 인상 깊게 봤는데, 그 작품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조응', 그리고 '대화' 시리즈를 말하시는 것 같은데요.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연작입니다. 기존 이우환 화백이 다루던 ‘점’이 이 조응 시리즈에서는 무게가 더 깊어지고 존재감이 아주 확실해지고요. 캔버스의 여백을 중심으로 찍혀있는 점과 점 사이의 여백을 통해서 역시나 관계성을 상기시킵니다.

특히 이우환 화백은 온 힘을 응축해서 이 점에 담아낸다고 하는데요. 흔히 ‘점 하나 찍혀있는데 수 억 원에 달한다고?’ 이런 반응 자주 접하거든요. 이 점은 순식간에 찍혀진 그런 게 아니라, 이우환 화백이 지나온 작업 세계의 여정과 고뇌, 나아가서 화백의 신체와 작업하는 행위를 통해 짜여진 고행의 흔적과도 같습니다.

특히 작업에 필요한 캔버스와 물감, 붓은 모두 그 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어 지고요. 작업을 구상하면서 캔버스를 두고 수십 수백 번을 고민한 후에 정해진 자리에 숨을 참고 작업한다고 합니다. 또, 조응과 마찬가지로 캔버스 위의 여백과 존재감이 크면서 비교적 최근 작업한 '대화' 시리즈가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쭉 살펴보니까 단순하면서도 참 미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실제로 한번 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나요?

[인터뷰]
네, 이우환 미술관은 2010년에 일본 나오시마에, 그리고 2015년에 부산시립미술관 내부에 이우환 공간이 오픈됐었는데요. 이곳에 가면 제가 오늘 소개해드렸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미술관과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미술 시장의 열풍이 있기도 전인 2019년에, 부산시립미술관에 방문해서 방명록에 이렇게 남겨 화제였죠.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 이후에 미술관 관람객이 4배 이상 늘었다고 전해졌었죠.

그리고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와인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우환 화백은 이우환 재단을 통해 올 4월에 프랑스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는데요. 이 아를이라는 지역은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곳인데요. 많은 예술가가 프랑스를 영혼의 안식처로 삼았지만, 특히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와인의 라벨에 아트 콜라보를 진행하는 샤또 무똥 로칠드가 이우환 화백과 협업을 진행했었는데요. 샤또 무똥 로칠드는 와인 중에서도 희귀하고 또 고가의 와인으로 분류됩니다.

이우환 화백이 한국인 최초로 2013 아트 라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슈가 됐습니다. 이전의 아트 라벨을 함께 했던 아티스트로는 샤갈, 피카소, 달리, 앤디 워홀 등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선정됐었다고 하니 무척 특별한 콜라보였다고 볼 수 있고요. 저도 아직 이 와인을 마셔보진 못했습니다만, 종종 본 적이 있거든요. 라벨에 그려진 작품이 레드 와인과 어울리는 버건디 컬러여서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앵커]
부산시립미술관이라고 하셨죠? 요즘 휴가철인데 부산에 여행 가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보시면 좋겠네요. '사이언스 인 아트'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