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한 길 사람 속은] 일부러 실패하는 전략 '자기구실화' 원인과 심리

2022년 08월 02일 오후 4:59
■ 김지은 / 상담심리사

[앵커]
인생을 살다 보면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요. 실패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일부러 성공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심리에서 실패를 자초하는 건지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누군가에게 지거나 어떤 일에서 실패했을 때,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 어떤 갖가지 변명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오늘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해주신다고요?

[인터뷰]
네, 우리가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면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실은 시험 준비 하나도 안 했어.", "어차피 합격했어도 안 갔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준비를 안 해서 결과가 안 좋았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실패할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 전날에 갑자기 술을 많이 마신다든지,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것과 같은 행동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셨을 때 "엇, 나도 한 번쯤 저렇게 행동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항들을 몇 가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하던 일이 잘못됐을 때 환경을 탓할 때가 많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룬다,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고 몸이 아프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거나 실패했을 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경쟁을 피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상황을 합리화하고 싶어한다, 스포츠 경기나 게임을 할 때 운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못하는 일을 할 때 잘하는 일을 생각하며 위안 삼는다. 이런 문항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저는 반정도 해당되는 거 같은데요. 저도 몇 가지가 있네요. 여기 일부러 실패할 상황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근데 왜 굳이 실패할 상황을 만들까요?

[인터뷰]
그렇죠, 언뜻 듣기에는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요. 실패할 경우 자존감이 손상되는 것이 두려워 실패의 구실을 미리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유능한 존재나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욕구가 늘 존재하는데, 이것이 행동의 원동력이나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 있는데요. 자기불구화, 다른 말로 자기구실 만들기라고 합니다. self-handicapping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한 거고요. 이 개념을 제일 처음 제안한 Jones와 Berglas(1978)는, 자기구실 만들기란 실패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수행에 방해가 될 만한 변명거리나 방해물을 만들어 두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어떠한 결과가 실패했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방해요인 때문이었다라고 생각하면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실을 대는 전략적 행동입니다. 자기구실 만들기를 통해서 어떠한 결과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도 자신의 자존감, 또는 자기가치감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결국 '자기구실 만들기’라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그냥 변명하는 행동과는 이게 어떻게 다른 건가요?

[인터뷰]
언뜻 듣기에는 구분이 잘 안 가실 수 있어요. 자기구실 만들기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결국 그냥 변명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는데요. 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자기구실 만들기는 어떠한 행동을 수행하기 전, 그러니까 "미리"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가능성, 성공의 개연성을 낮추는 방해요인을 수행 전에 미리 찾아내거나, 또는 걸림돌이 될 만한 상황을 미리 만들어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시험 전에 일부러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든지, 아까도 들었던 예시처럼 약이나 술을 복용한다든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든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행동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변명의 기초를 만들어내는 거죠. "피곤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일이 일어난 후에 하는 변명이지만, 시험 전날에 일부러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시험을 망치기 '전'에 나타나는 행동이면서 변명할 수 있는 이유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앵커]
계속 들으니까 아무래도 이게 실패하는 게 두렵거나 심리적으로 큰 압박감이 느껴지는 분들이 많이 하는 행동인 거 같은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런 행동을 자주 한다고요.

[인터뷰]
그럴 수 있습니다. 특히 자존감도 있지만, 자존심이 센 사람한테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 상황에서 결과를 반드시 잘 내야만 하는 압박감이 심하거나 위협적이고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며 "무능력한 것은 곧 가치가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과에 따라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 달라지는 환경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협적이고, 우리가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죠. 뭔가를 천천히 탐구하고, 탐색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보기도 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자신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욕구가 발동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도 자신을 유능한 존재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유능한 존재로 인식되기 위해서 점점 더 과도하게 애를 쓰게 되는데요. 이럴 때 자기구실 만들기가 흔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 무가치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 실패를 회피하거나,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 아닌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바꾸게 되면 실패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피하고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고, 타인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위협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과도한 기대가 주어지는 상황 역시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기도 합니다. 긍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긍정적 평가가 무엇이 두렵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너무 좋게 생각하고 있을 때 상대방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지고 부담감이 생기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예시를 들면 좀 더 이해되실 텐데요. 몇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세계적인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 선수들, 특히 기존에 경기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전국민적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는 선수들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할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실패했을 때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요.

이럴 때, 성공 가능성을 줄이는 방해요인을 만들어 놓고 "내 생각보다 좋은 경기 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는 외부의 다른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야."라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부담감을 훨씬 덜어낼 수 있을 거예요. 경기 전날에 충동적으로 술을 마신다든지,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것 같은 행동이 나타날 때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면, 바로 이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무리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행동이라고 해도 그런 행동이 여러 번 반복되면 사람이 매번 실패만 반복하게 될 거 같거든요. 괜찮을까요?

[인터뷰]
그렇죠.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요. 단기적으로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은 우리의 자존감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외부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전략을 장기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결국 성공 경험을 못 하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을 쓰고 나면 잠깐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진짜로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아닙니다. 남들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이걸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조금씩 심해져서, 나중에는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져 버리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의 자존감에는 성취 경험이 상당히 영향을 주거든요. 자기구실 만들기 전략을 너무 자주 사용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성취 경험 자체를 줄여버리게 되기 때문에 "나는 사실 성공한 것이 별로 없어. 이룬 것이 별로 없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또 자존감이 낮아져 버리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는 것이죠.

[앵커]
이런 분들은 하나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다는 것을 좀 깨달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기 구실 만드는 습관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자기구실 만들기를 줄이려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잘 안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들 때,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걸 피하고 나면 나는 결국 더 기분이 안 좋아질 거야."라고 스스로 다잡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성취 경험이라고 해도, 자신이 끝까지 무엇인가를 완수했다면 그것에서도 상당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이러한 작은 경험들을 나 자신에게 주겠다라는 생각으로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연습을 하면 점점 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낮아지고, 그 두려움이 나를 휘두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까 한편으로는 너무 거창한 목표만 추구하기보다는 비교적 간단하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목표들도 꾸준히 세워보고 이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한 길 사람 속은>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