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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비디오 아트는 멈추지 않는다…백남준의 예술혼

2022년 08월 12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고 백남준 작가는 예술과 과학, 국경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예술계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죠.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해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 이야기 나눠봅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올해가 고 백남준 작가가 탄생한 지 90주년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나도 유명한 분이지만 백남준 작가가 어떤 분인지 먼저 소개부터 해주실까요?

[인터뷰]
네, 백남준은 1960년대 플럭서스의 중심에서 뛰어난 실험 정신으로 누구보다도 전위적이었던, 뼛속부터 예술가였던 작가입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미학과 미술사학, 음악 등을 공부하는데요. 부유했던 집안 덕분에 일찍이 다양한 예술 장르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당시 가장 전위적인 음악이었던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을 이른 나이에 접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배경들이 훗날 백남준의 작업에 뿌리가 됩니다.

[앵커]
백남준 작가는 생전에 플럭서스의 중심에서 다양한 예술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플럭서스가 뭐죠?

[인터뷰]
플럭서스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난 세계적인 차원의 전위적 예술 운동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여기서 '플럭서스'라는 단어는, '변화, 흐름, 움직임'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백남준 작가는 1961년에 예술적 둥지가 되는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키우나스를 만나면서 창립 멤버가 됩니다. 이때 함께한 멤버로는 또 다른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 등이 있고요. 요셉 보이스는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이자, 이 플럭서스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는데요. 2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교류하면서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영감을 주는 관계였습니다.

이 플럭서스라는 전위적인 예술 그룹의 중심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경계를 허물고 콜라보를 선보이는데요. 실험적이고 그 자체로 큰 인상을 남긴 새로운 방식의 작업들을 통해서 기존 예술이 가지고 있던 개념이나 범위를 크게 확대 시킵니다. 특히 TV 모니터를 활용한 작품을 통해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의 행보를 보이는데요. 백남준의 이런 시도들은 미술사에 큰 획을 긋게 됩니다.

[앵커]
백남준 작가 하면 TV 모니터가 생각이 나는데.브라운관을 탑처럼 쌓아올린 비디오 아트가 있잖아요, 이것도 좀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많이들 알고 계시는 작품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다다익선'은 백남준 작가가 1988년에 개최된 88올림픽을 기념해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했던 작품입니다. 백남준이 작업한 TV를 활용한 설치작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작품이기도 한데요.

18.5m의 높이만큼 TV를 쌓아올렸고요. 위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작아지는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는 1003대의 TV가 사용됐는데, 모니터의 노후화로 여러 번 교체가 이루어졌고요, 이 작품은 무게만 16톤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데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건축 특성을 고려해서 제작됐고요, 이 1003개의 모니터에는 다양한 영상들이 송출되는데요, 경복궁과 부채춤, 고려청자 같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담은 소재들과 함께 프랑스의 개선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등 전 세계 각국의 상징물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또,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의 연주 모습도 담겨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 영상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 동서양, 전 세계 인류가 문화 예술과 과학으로 하나가 되고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에 1,003대의 TV가 사용했다고 했는데, 이 숫자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요.

[인터뷰]
네, 1,003이라는 숫자는 바로 10월 3일인 개천절을 상징한다고 하고요. 88올림픽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났음을 축하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 지금은 아쉽게도 관람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되는 동안 하루 약 8시간 가량 매일 영상이 상영됐다고 하는데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니터를 포함해서 여러 부품들이 노후화됐고요, 2002년에는 모니터의 노후화가 원인이 돼 화재가 일어나기도 해서 당시 가동이 중단됐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리와 교체가 반복되다가 결국에는 2018년 2월에 가동이 중단됐고요. 올해 시범 가동됐었는데, 올해 9월, 다시 재가동 예정이라고 합니다.

[앵커]
전자 기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품의 노후화란 문제가 생기는 거 잖아요, 이걸 백남준 작가도 고민을 해봤을까요?

[인터뷰]
이 부분에 대해서 2019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다익선 복원 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하기도 했고요. 독일과 미국을 포함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서 조사와 자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런 작품의 경우에는 또 작품 안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부분도 중요한데, 예를 들면 당시의 부품을 찾아서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 이 시대의 부품을 적용 시킬 것이냐 이런 것들이거든요.

백남준은 생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작품에 쓰인 기존의 부품이 단종됐을 경우에는 신기술을 사용해도 좋다고 의견을 밝혔었다고 하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최대한 그 당시를 반영해서 기존 작품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판단했고, 그게 미술관의 역할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보면 관객이 참여하는 그런 작품도 많이 볼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TV 붓다'가 있죠. 이 작품의 의도에 대해 설명 좀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네, 백남준 작가는 비디오 아트를 통해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시도를 많이 해왔죠.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수동적인 역할이기보다는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TV붓다'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관객참여형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불상과 TV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요. TV 화면 안에는 마주 보는 불상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미리 찍어둔 영상을 틀어놓은 게 아니고요, 불상이 실시간으로 촬영 돼서 화면에 나타나는 건데요. 만약에 관람객이 이 불상 뒤에 서 있으면, 화면 안에 그 모습이 같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의 모습은 TV를 시청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화면 속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아를 찾음과 동시에 당시 첨단 기술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앵커]
녹화 되어있던 영상이 아니라 불상의 이른바 셀카를 찍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는 구도라는 말씀이신데요,백남준 작가를 우리는 '비디오 아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데 백남준 작가는 비디오 아트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뭘까요?

[인터뷰]
네, 백남준 작가는 살아 생전 이런 얘길 했습니다. "나는 만인이 즐겨보는 대중매체를 예술로 선택한 예술 깡패다". 백남준은 플럭서스의 중심에서, 기존 미술계의 엘리트 주의에 반대하기도 했는데요. 같은 맥락으로, 미술 자체에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에 TV라는 도구를 선택한 것도 있겠고요.

또 한가지는, 백남준의 유목 생활이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던 백남준에게 있어서 공간과 시간은 참 중요한 요소였는데요. 특히 하나의 시간대에 여러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특성, 여러 시간대가 한데에 모일 수 있다는 점이 당시의 뉴미디어, 새로운 기술의 특징이었는데요.

백남준은 자신의 작품을 ‘시간-예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비디오 영상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다르게 변화하는 이미지를 노출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면서, 또 영상의 속도, 즉 시간을 마음대로 빨리 감고 또 멈출 수 있는 장치. 백남준은 이런 특징들에 주목했습니다.

[앵커]
비디오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다고 하는데 작곡이나 음악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요?

[인터뷰]
네, 백남준 작가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초기 활동 작품들은 주로 음악을 메인으로 활용해서 악기를 부수거나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하면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식의 작업을 많이 했었습니다.

백남준 작가는 1956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현대음악을 전공하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전위 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바로 이듬해에 독일 뒤셀도르프 소재의 한 갤러리에서 '존 케이지에 대한 오마주' 라는 작품 초연을 하게 되고요. 이때 공연 중간에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든요.

또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이라는 작품에서 피아노 2대를 부수고, 관람객의 넥타이와 셔츠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또 머리에 샴푸거품을 내기도 하는 등 당시 큰 충격을 안기면서 인지도를 계속해서 쌓게 됩니다.

[앵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백남준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듣고 있는데,마지막으로 대표작 몇 가지만 더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많은 작품이 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먼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달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12가지 형태로 나눠서 형상화했는데요. 이 작품에 대해서 에디트 데커라는 비평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현대의 삶은 태초의 시절의 기억을 거의 잃고, TV의 차가운 빛이 달빛을 대신하게 됐다.'

저도 생각해보면 최근에는 실제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본 기억보다 TV 속 드라마나 영화 같은, 화면을 통해 본 기억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한데요. TV 속에 얇은 초승달부터 둥근 보름달까지, 12개의 형상들을 담아서, 백남준은 흘러가는 시간을 한데 모아서 지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즉, 시간을 공간에 재조합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백남준 작가는 브라운관을 캔버스 삼아 예술세계를 펼친 그런 멋진 작가였던 것 같은데요.오늘도 음악과, 공간, 그리고 시간과 영상의 흐름까지 한 작품으로 만나본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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