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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예술가가 사랑하는 방법, 김환기 화백 이야기

2022년 09월 02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사랑은 생각만 해도 사람을 설레게 하고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예술가가 사랑하는 방법과 김환기 화백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뮤즈'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등장하는데요. 일단 이 뮤즈가 어떤 뜻인지 알아볼까요?

[인터뷰]
네, 먼저 이 뮤즈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딸들입니다. 예술과 학문의 여신으로, 미술이나 춤과 노래, 연극, 문학 같은 분야에 능하고 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신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음악을 뜻하는 뮤직이나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 같은 예술과 관련된 단어들의 어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 보니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뮤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은 머릿속의 관념을 작업으로 풀어내야 하기도 하고, 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늘 영감을 찾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작품 속에 뮤즈가 드러나는 경우도 많고요, 또 역사적으로도 뮤즈와 사랑에 빠진 예술가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뮤즈라는 단어의 뜻을 짐작만 했었는데 정확하게 알게 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잘 알려진 작가 이상과 또 화백 김환기 화백의 공통점이 같은 여인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정말 궁금하거든요. 누구인가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웠던 <날개>라는 소설로도 잘 알려진 시인이자 또 소설, 수필가이기도 한 이상. 그리고 국내 미술품 경매 역사상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죠, 김환기 화백이 사랑한 여인은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김향안 여사인데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법한 최고의 아티스트 두 명의 뮤즈고요. 아마 김향안 여사에 대해서도 아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우선 김향안은 당대 천재 시인이었던 이상을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됩니다. 둘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다가 결혼하게 되고요, 함께 도쿄로 떠납니다만 안타깝게도 이상의 건강 악화로 짧은 결혼 생활 후에 사별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김환기 화백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때 김환기 화백은 이미 한 차례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상태였고 슬하에 세 명의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향안과 김환기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한층 가까워지고요.

김향안은 김환기 화백이 화가로서 예술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내조에 굉장히 힘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김환기가 프랑스와 뉴욕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던 것도, 김향안 여사의 역할이 컸다고 하고요. 김환기 화백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김환기 회고전을 진행하고 또 재단을 운영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것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 2명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김향안 여사,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한데 어떤 활동을 한 분입니까?

[인터뷰]
네, 김향안 여사는 191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는데요. 본명은 원래 김향안이 아니라 변동림이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문학 활동을 하기 시작해서 작가 이상과 사별 후에 김환기와 재혼하게 됩니다. 재혼 후에 김환기와 함께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서 미술 평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고요. 이후에 함께 또 뉴욕으로 건너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김환기 화백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하고요, 1992년에는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하게 되는데 사설의 개인 기념 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라고 합니다. 또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김향안 여사의 원래 이름은 '변동림'이라고 제가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김향안이라는 이름은 김환기의 아호였던 '향안'과 성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김환기 화백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였을지 좀 짐작이 가는 대목이죠. 사실 이 둘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그 힘들었던 피난 시절에도 김향안은 김환기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서 자신이 직접 발로 뛰었다고 합니다. 또 김환기는 이런 김향안의 노력을 고맙게 여겼고요, 해방 이후에 점점 미술계에서 활동을 넓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앵커]
아마 김환기 화백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대표적인 화가가 된 것도 김향안 여사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김환기의 작품은 프랑스와 뉴욕 시대로 크게 나뉘는데요, 프랑스 파리에서의 데뷔를 고민하고 있을 때 호탕하게 지지했다고 하고요. 오히려 자신이 먼저 파리로 넘어가서 소르본 대학과 에꼴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또 미리 작업실을 마련해두면서 김환기를 부르거든요. 굉장히 당찬 여성이었던 것 같은데요.

김향안은 또 언어 능력도 뛰어나서, 원어민 수준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하게 되고 김환기의 비즈니스가 있을 때도 통역을 하기도 하면서 돕고 또 이끌어줬습니다. 이후에 김환기의 뉴욕 시대 때도, 큰 결심을 하고 또 김향안과 함께 뉴욕으로 떠나게 됐는데요. 이전의 프랑스에서보다는 훨씬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약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생활고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역시 김향안은 김환기 화백이 예술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본인이 직접 생계를 책임지게 되고요. 덕분에 김환기는 정말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크게 인정받는 대작들을 당시에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얘기를 들어보니까 내조를 넘어서 앞에서 이끌어준 그런 정신적인 지주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해외에서도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처럼 '뮤즈' 관계인 예술인들이 있나요?

[인터뷰]
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대표적인 프랑스 작가죠, 마르크 샤갈에게도 일생 최고의 '뮤즈'가 있었습니다. 바로 '벨라'인데요. 영혼의 동반자라고 여길 만큼 깊이 사랑했고요. 그런 부분들이 바로 샤갈의 작품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요, 벨라는 당시 부유한 상인 집안의 자제였는데 샤갈의 첫 여자친구의 친구였다고 하고요. 그런 벨라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샤갈은 1910년에 파리로 향하게 되는데요, 입체파 화가들이나 문학가들 같은 여러 예술가들과 본격적으로 소통하게 되면서 영향을 받아서 이전 러시아에서의 작업에 비해서 색감이 더 밝아지기도 하고 또 화풍도 변화하게 됩니다. 이때 샤갈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또 바이올린 연주자 등을 그린 작품들이 나오게 되고요. 1915년에 벨라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이후에 연인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거 그려집니다. 얼마나 행복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한데요, 이런 서사적이고 세련된 도상으로 인해서 프랑스에서 샤갈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1944년에 그렇게 사랑하던 벨라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면서 굉장히 충격받게 되고요. 작품 스타일에도 일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노년에는 파리에서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면서 지냈고요. 샤갈에게 벨라는, 함께 있으면 하늘을 부유하는 것 같이 황홀함을 주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앵커]
샤갈의 작품에도 뮤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있네요. 이외에도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런 뮤즈 같은 커플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이야기인데요, 아마 온라인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접하셨을 것 같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퍼포먼스 아티스트인데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들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또 깊은 인상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주로 인간의 고통이나 죽음, 본능, 감정 같은 것들에 주목하고 자신의 신체를 주로 이용해서 퍼포먼스를 하는데요, 몸 자체를 매개로 해서 작품을 보는 관객과 소통합니다.

또, 마리나의 연인이었던 울라이 또한 퍼포먼스 아티스트였고요. 둘은 네덜란드에서 함께 만나서 함께 활동하기도 하는데요. 1976년부터 1989년까지, 함께 작업을 하고 또 연인으로 관계를 이어갑니다. 같이 작업한 퍼포먼스도 많은데요. 서로 마주 본 채로 지탱하고 서서 활과 화살을 쥐고 있는 <정지 에너지>도 많이 알려졌죠. 울라이가 손에서 화살을 놓칠 경우에 아브라모비치에게 화살이 꽂히게 되어있는 굉장히 긴장감을 주는 퍼포먼스입니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둘이 실제로 연인이라서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도 있고요.

또 잘 알려진 영상 작품이 있죠. 뉴욕의 모마에서 736시간 동안 진행됐던 퍼포먼스로, 하나의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있고요, 마리나는 한쪽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반대편 의자에는 누구나 와서 앉을 수 있는데, 다만 아무 말도 할 수 없고요. 가만히 마리나와 눈으로 대화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많은 관객들 사이로 갑자기 나이가 든 모습의 울라이가 나타나서 맞은편에 앉는데요. 이 둘은 이때 이미 헤어진 지 꽤 된 상태거든요. 마리나와 울라이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거든요. 그리곤 말없이 손을 부여잡습니다. 손을 잡은 것에 대해서 마리나는 후에, '울라이를 만난 것은 내 인생 그 자체를 만난 것이기에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앵커]
헤어진 연인과 가만히 앉아서 눈을 마주치고 있는 행동 자체가 정말 어려운 거 같은데 참 흥미롭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제로 행위예술처럼 마리나와 울라이의 이별도 평범하지 않았다면서요?

[인터뷰]
네, 이 둘은 헤어짐도 한 편의 영화 같았고요. 정말 작품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예술적 동반자로 지냈던 이 둘도 여느 연인들처럼, 결국 헤어짐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이 둘은 마지막까지도 예술로 승화시키기로 합니다. 약 2,500km를 떨어진 곳으로부터 마주 보고 걸어와서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는데요. 붉은 옷을 입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황해에서부터 걸어오고요, 푸른 옷을 입은 울라이는 고비사막부터 걷기 시작합니다. 이 둘은 90일 동안 서로를 향해서 걸어서, 만리장성의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만리장성 위에서 만난 둘은 서로 포옹함으로써 둘의 관계를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앵커]
예술작품에 다양한 사연의 사랑이 녹아들어 있으니까 좀 아련하기도 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고요. 아트플랫폼 누아트의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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