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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근대 서양 문화·예술 후원의 큰 손…메디치 가문

2022년 09월 23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피렌체가 메디치를 낳았지만, 메디치 없이는 피렌체도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문화예술 후원의 큰 손으로 잘 알려진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메디치 가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제가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의 전시회를 가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이 '메디치 가문' 이더라고요. 이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따서 ‘메디치 효과’라는 단어도 있다고 하던데, 이건 어떤 말인가요?

[인터뷰]
‘메디치 효과’는 경제 용어이기도 한데요. 서로 무관한 영역의 지식이 결합 돼서 혁신이 일어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1+1은 2가 아니라, ‘1+1은 2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낸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프란스 요한슨’이라는 작가가 쓴 '메디치 효과'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인데요. 물어보신 것처럼 메디치 가문과 연관된 말이고요. 메디치 가문이 문화 예술 전반과 더불어서 과학이나 철학 같은 아주 광범위한 분야들을 후원했기 때문에, 그 중심에 있던 메디치 가문을 하나의 ‘매개’로 생각해서 만들어진 표현 같습니다.

[앵커]
문화 예술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 후원을 한 곳이 바로 메디치 가문인데, 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아마 이름만 들으면 다 아실법한 아주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그리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도 잘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바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았습니다.

[앵커]
한 분도 모르는 분들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예술가들을 후원한 집안인데, 그런데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도시 자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조금 더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앞서 이야기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뿐만 아니라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단테, 마키아벨리 같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 철학자, 작가 등의 위인들을 대거 배출한 곳이 바로 피렌체죠.

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다는 점도 있는데요. 이 르네상스 시대는 그야말로 천재들이 쏟아져나온 시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렌체는 이런 르네상스를 이끈 본거지라고 보시면 되고요. 또 서양의 문화예술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피렌체가 오늘날에는 인구 30만 명 정도 되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도시인데요. 르네상스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타 유럽국가가 농업 중심의 봉건 체제였다면 이 피렌체는 상공업의 시민 계층이 중심이었고 문화예술과 정치 관련된 지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뛰어났다고 알려졌고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 피렌체에서 문화예술이 유독 발달 되었다고 봅니다.

[앵커]
서양 문화예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 '피렌체' 이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은 어땠나요?

[인터뷰]
네, 먼저 당시에 피렌체는 오랫동안 권력 다툼이 있었는데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이주를 오게 됩니다. 메디치 가문이 본격적으로 피렌체를 지배한 시기는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인데요, 사실 메디치 가문이 애초부터 크게 부유하거나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닙니다.

조반니 디 비치 메디치가 은행업으로 크게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가문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 건데요, 1421년에는 피렌체 최고 통치자인 '곤팔로니에레'에 선출되기도 합니다. 이 조반니는 권력을 가진 후에도 귀족들보다는 오히려 평민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냈고요. 그러면서 또 교황청의 지지도 받았다고 합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때문에 당시 유럽의 귀족들이나 왕가들은 메디치 가문이 운영하는 은행을 신뢰했다고 하고요.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이 되기도 합니다. 15세기에 이미 유럽 최고의 은행을 선점하게 되고요, 그 외에도 상업이나 다른 사업을 통해서도 많은 부를 축적합니다.

최고 전성기 때 메디치 가문의 자산이 지금의 가치로 약 140조 원이 넘는다고 추정됩니다. 특히 피렌체뿐만 아니라 타 유럽 국가의 명문 가문과도 교류하고 혼인을 맺기도 하면서 안팎으로 세력을 넓혀나갔습니다.

[앵커]
부와 명예와 권력까지 모두를 거머쥔 그야말로 최고 명문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메디치 가문이 언제부터, 왜 문화예술에 후원한 건가요?

[인터뷰]
우선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의 역사를 간단하게 훑어보면요. 앞서 이야기한 조반니부터 이미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요즘 국내 미술 시장이 이전에 비해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미술품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처럼요, 이때 피렌체 또한 문화 예술 분야가 발달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고요. 가문이 쌓은 부와 권력을 정치적, 군사적 세력 확장을 위해 쓰는 대신 문화 예술을 후원하면서 르네상스라는 황금기를 지배한 점에 주목할 수 있겠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원근법'을 최초로 회화에 적용하면서 서양 미술사에 근간을 만든 '마사초'를 포함해 수많은 예술가를 지원했고요.

또 조반니 디 비치의 아들인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도 중요한 인물인데요. 코시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경영과 정치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외교 정책에도 뛰어나서 피렌체의 '국부'라고 불리울 정도로 칭송받는 존재였는데요. 코시모는 아버지인 조반니가 지원했던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더욱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했습니다.

[앵커]
아버지에 이어서 아들까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 계속해서 이어지나요?

[인터뷰]
코시모의 아들인 피에로, 그리고 피에로의 아들인 로렌초 디 피에르 데 메디치가 이어서 권력을 세습 받습니다. 이 로렌초 시기가 바로 피렌체의 문화예술이 최고의 번영을 이루는 시기인데요. 로렌초가 메디치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가 스무살의 나이였는데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인 안목이 특출났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들을 훌륭하게 후원했습니다.

그 중에는 잘 알려진 미켈란젤로도 있고요, 로렌초가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로렌초가 예술품 수집을 즐기기도 했는데 그것보다도 예술가를 후원하는 걸 더 좋아했다고 알려져있고요. 동시에 본인이 직접 시를 쓰기도 할 정도로 예술에 푹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메디치 가문은 18세기까지 르네상스 문화예술계를 물심양면으로 크게 후원합니다.

[앵커]
대를 이어서 후원하는 모습인데, 대표적으로 소개해주실만한 후원받은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로렌초는 '비너스의 탄생'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도 적극적으로 후원했는데요. 특히 보티첼리의 '코시모 메디치의 메달을 든 남자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의 신원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로렌초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여성은 로렌초의 동생인 줄리아노의 연인이기도 했던‘시모네타’가 모델인데요. 이 시모네타를 보티첼리가 짝사랑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앵커]
참 재미있는 얘기, 대단한 얘기가 묻어있는 가문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 지금 현재 위상은 어떤지 궁금한데 지금 현재도 남아있습니까?

[인터뷰]
아쉽게도, 메디치 가문은 1743년, 마지막 혈통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재산과 예술품들은,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모두 피렌체에 기증됐고요.

사실 그보다 전인 1494년에, 그러니까 로렌초가 마흔 셋의 나이로 세상을 뜬지 2년 뒤에 이미 메디치 은행은 파산했습니다. 로렌초는 문화예술에는 아주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났지만 경영 쪽으로는 크게 재능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일찍이 ‘사람이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앵커]
그야말로 피렌체와 메디치는 떼려야 떼 놓을 수 없는 사이 같은데 실제로 미술 시장에서 메디치 가문과 같은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까?

[인터뷰]
네, 보통 미술품을 수집하고 작가를 후원하는 ‘아트컬렉터’가 있는데요. ‘아트컬렉터’가 바로 이런 메디치 가문의 역할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아트컬렉터의 역할이 미술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하기도 한데요.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후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100% 오로지 투자 목적이다’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보통은 컬렉터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또 노출하고 홍보하면서 작가의 성장에 일조하는 경우도 있고요. 국내외 컬렉터 중에는 자신의 미술품 컬렉션에 어떤 테마를 정해두고 컬렉팅을 하기도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도, 국내외 미술사에서 유의미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미술관 측에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예정이라고 감사를 표했던 것도 기관을 넘어서 한국의 미술사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의 컬렉션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앵커]
오늘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둥지가 되어준 메디치 가문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더불어 예술가가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사이언스인 아트' 박수경 아트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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