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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하얀 거짓말'

2022년 09월 27일 오전 09:00
■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타인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닌 거짓말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선의의 거짓말로 불리는'하얀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지숙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거짓말은 나쁜 일이다, 피해야 하는 일이다 라고 인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사람들이 살면서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려주시죠.

[인터뷰]
네. 미국 Southern California 대학의 심리학자인 Jerry Jellison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아주 사소하고 의례적인 말까지 포함하면 하루 평균 200회, 즉 8분에 1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하루 2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거짓말의 횟수에 대해서는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매일 거짓말을 하는 존재임은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말을 바라보는 데는 2가지의 상반된 관점이 존재합니다. 우선 사전적 정의를 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어 말을 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보기 때문에 기만적이고 처벌받아야 마땅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죠. 그러나 암묵적으로는 소위‘하얀 거짓말’이라고 불리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통념 또한 존재합니다. 오늘은 특히 하얀 거짓말(white lie)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앵커]
네. 저희가 생각보다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좀 더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하얀 거짓말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거짓말인 것을 알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짓말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장하는 흰색은 ‘악의나 악한 의도로부터 자유로운, 도움이 되는, 순결한, 해롭지 않은, 도덕적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우리나라에서도 항일운동 당시 흰색 옷을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얼핏 하얀색과 거짓말은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 모순된 조합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혹은 대인관계를 위해서, 하얀 거짓말은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하게 됩니다.

[앵커]
생활 속에서 쉽게 하는 하얀 거짓말의 대표적인 예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인터뷰]
예를 들면, 출근해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온 직장상사를 마주쳤는데 직장 상사가 '나 머리 했는데 어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상사의 헤어스타일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 '잘 어울리세요! 산뜻해 보이세요!'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드리게 되죠. 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새 옷을 입고 나와서 어떤지 묻습니다. 이 때도 우리는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더라도 '좋다, 괜찮다, 잘 어울린다.' 등 대체로 좋은 답변을 해주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예들을 우리는 굳이 '거짓말한다.' 고 표현하기 보다'사회생활 잘한다.' '눈치가 빠르다.'고 이야기하고 '대인관계를 잘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하얀 거짓말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포함하고 처세술 정도로 여기기도 하는 거죠.

[앵커]
예시를 들어주시니깐 저희가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표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하얀 거짓말이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인터뷰]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이나 치료법을 믿고 환자가 실제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 레미제라블에서 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신부님이나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의 화가 할아버지처럼 하얀 거짓말을 통해 상황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경우들도 실재합니다.

[앵커]
하얀 거짓말이 상대에게 별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셨는데, 아무래도 거짓말이다 보니깐 마구 남용해서는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주의할 점 이 있겠죠.

[인터뷰]
네. 하얀 거짓말의 경우 더 주의가 필요합니다. 영국 런던대학(UCL) 심리학과 탤리 샤롯 교수팀의 연구를 살펴보면, 자신에겐 득이 되고 실험 파트너에겐 손해일 때보다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될 때는 거짓말을 하는 폭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서로 득이 된다고 믿는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심리가 강화되기 때문인데요.

설사 하얀 거짓말이라도 관계 속에서 진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깊이 있는 소통을 어렵게 만듭니다. 출근해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온 직장상사를 마주쳤을 때 '나 머리 했는데 어때?'라는 질문에 거짓말하게 되는 건 이분법적인 사고 때문이기가 쉽습니다. 실제로 내 마음에도 들고 잘 어울리신다면 대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분법적으로 무조건적인 ‘좋다’는 표현이나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별로다’라고 말하는 팩트 폭격은 둘 다 좋은 해법이 되기 어렵습니다.

O, X로 나누기보다 상대방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헤어스타일 바꾸시니까 기분 좋아 보이세요! 하고 싶었던 스타일이세요?' 등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며 확장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풍부하고 진솔성을 가진 의사소통의 방식이 될 겁니다.

[앵커]
네, 거짓말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순기능도 갖고 있는 이른바 하얀 거짓말에 대해 살펴봤고요. 새빨간 거짓말처럼 다른 색으로 표현되는 거짓말들도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네. '새빨간 거짓말'은‘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의미하는데요. 이러한 거짓말을 왜 새빨갛다고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새빨갛다는 '명백하다, 분명하다, 명확하다.'의 의미로 쓰이고 중국에서도 노자는 아이의 마음을 적자지심(赤子之心), 순자는 숨김없는 그대로의 마음을 '적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순수와 무(無)를 의미하는 것을 빨강이라는 색으로 나타내서 다 알아볼 수 있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이죠.

그 외에도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오늘 더 예뻐 보인다거나 멋져 보인다’는 거짓말을 핑크빛 거짓말이라고 칭하고요. 주사 맞기 싫어서 아픈데도 안 아프다고 말하거나 자기 전에 귀찮은 마음에 닦지 않은 이를 닦았다고 말하는 귀여운 아이들의 거짓말을 옐로우라이, 노란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앵커]
거짓말 앞에 색깔이 붙는다 라는 것에 유래를 설명 해주셨는데, 무척 재밌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색깔의 거짓말 있나요?

[인터뷰]
네. 핑크나 노랑처럼 사랑스러운 색에 비유되는 거짓말들도 있고 무게감 있는 거짓말 또한 색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경찰들이 동료 경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사건들이 미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경찰의 제복 색상인 파란색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진 파란 거짓말은 집단의 이익을 지키거나 내집단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을 의미합니다. 회사 동료의 실수로 협력사에 피해를 주게 되었을 때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죄를 은폐하려는 의도로 하는 나쁜 거짓말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가장 안 좋게 생각하는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과 대비하여 블랙라이, 새까만 거짓말이라고 부릅니다.

[앵커]
거짓말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건데요. 이런 거짓말을 미리 판별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겁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등장했는데요. 피노키오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도 거짓말을 하면 코에 일정한 반응이 오게 됩니다. 이를 ‘피노키오 효과’(Pinocchio effect)라고 해요. 거짓말을 하면 기본적으로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긴장하게 되고 불안감 또한 느끼게 되는데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있어서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켜 콧속 조직이 팽창하도록 하고 혈압 또한 높아져서 코끝 신경 조직이 가렵게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자꾸 코를 만지게 되고요. 실제로 빌 클린턴 전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성추문과 관련해 연방 대배심에서 증언할 때 분당 평균 26번이나 코를 만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앵커]
저도 잘 생각해보니깐 뭔가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할 때 코를 자꾸 만졌던 기억이 있는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던 거군요. 그렇다면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일까요?

[인터뷰]
네. 연구 결과를 보면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말은 참입니다. 거짓말을 할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정서-거짓말을 해서 불안하고 기분이 뭔가 찝찝한 것들은 우리의 뇌 중에서 공포나 부끄러움과 같이 불쾌한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기 때문인데요. 즉, 거짓말을 제어해주는 편도체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거짓말을 점점 편하게 하게 되는 겁니다.

리플리증후군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거짓된 허구를 진실로 믿고 살면서 가상의 자신이 진짜 자신인 것처럼 자기화되는 병적인 상태를 의미하는데요. 이런 리플리증후군의 상태가 되면 거짓말탐지기도 무용지물이 된다고 합니다. 즉,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자신마저 속이게 되는 거죠.

[앵커]
다양한 거짓말 색깔 살펴봤는데 그 중 하얀 거짓말이 상대를 배려해 쓰긴 하지만 진정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사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길 사람 속은?'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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