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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살면서 직면하는 감정과 의사결정

2022년 10월 04일 오전 09:00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우리는 매일, 거의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죠. 그런데 결정을 할 때, 객관적인 상황과 내용을 비교하고 살피는 이성적인 판단도 들어가지만, 그에 못지않게 감정적인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의사결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감정의 요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의사결정'이라고 하면 주로 이성적인 판단만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사결정에 감정의 역할이 아주 크다면서요?

[인터뷰]
사람들은 감정과 이성이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요. 현대 심리학에서는 감정과 이성을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마부가 쌍두마차를 모는 비유를 들어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마부를 '이성'으로, 두 마리 말(馬)을 '의지'와 '욕망'으로 비유했고, 마부는 균형을 잡으며 두 말을 몰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이는 감정보다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감정이 이성적 행동이나 생각의 방해물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이성만 중요하고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감정은 이성적인 생각을 뒤흔들 만큼 매우 큰 힘을 가졌고, 그가 쌍두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을 '감정'에 비유한 것은 마차에서 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성은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방향을 조종하는 역할을 하지만, 감정은 마차를 끄는 근본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결정을 내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결정을 내렸는데도 그 결정을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이거도 감정 때문이라고요?

[인터뷰]
아무리 숙고를 해서 결정한 것이라도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실행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뭔가 내키지 않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인데요. 감정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결정은 뿌리가 약한 나무와 같습니다. 지속시키는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결국 사라지게 되죠. 만약 고민 끝에 결정은 내렸는데 실행이 되지 않을 때는 실행 방법을 점검하는 것 외에 결정에 대한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앵커]
실행 방법 말고도 결정에 대한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는데요. 자, 그렇다면 감정과 이성, 모두를 동원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감정이 이성보다 의사결정에 더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노벨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자신의 논문 "감정과 의사결정"에서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언급했습니다. 사실 의사결정에 앞서 의사 결정자는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고, 결정을 위한 완벽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한계 범위 내에서 선택지를 매우 단순화시키고, 그 후에 남은 것 중에서 만족스러운 쪽을 고르는 것이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했는데요. 사이먼은 이를 최적의(optimal) 선택이 아닌, 만족화(satisficing)된 선택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래서 사이먼은 빠르고, 반사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작용하는 '직관력'과 느리고, 의식적이고, 명백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이끄는 '인지 능력'이라는 두 가지 능력을 병행해야 의사결정을 더욱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 합리성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우선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앞서도 잠깐 말씀을 해주셨지만, 감정이 마차를 끄는 근본적인 힘과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의사결정에서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정리를 좀 해주시죠?

[인터뷰]
감정은 뇌의 행동 선택 과정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이렇게 사소한 결정부터 '어느 회사에 취업할까'처럼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까지 우리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감정이 필요합니다. 뇌에 종양이 생겨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을 제거한 환자들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일부 환자는 기억이나 언어, 지능 등 완벽한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종양 제거로 감정은 느낄 수 없었는데요. 이들은 분노나 기쁨, 슬픔 등 감정을 겨냥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고를 떠올리게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연구결과 감정이 마비된 환자들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아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문제 상황에서 여러 대안을 도출하고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감정이 배제된 채 이성만으로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인데요. 만약 감정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면, 수많은 옵션의 장단점을 끝없이 비교하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까 감정이 없다면 우리가 결정을 내릴 방향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감정이 그만큼 의사결정에 중요하다는 건데, 그런데 요즘 MBTI 검사처럼 서로 성격 유형을 나누는 것이 유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유형에 따라서도 의사결정의 방식이 달라질까요?

[인터뷰]
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사고와 감정은 상황에 따라 모두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때로는 라이벌 관계가 되기도 하는데요. 융의 심리학을 연구했던 스위스의 심리학자 졸랜드 자코비에 따르면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옳고 그름, 참과 거짓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가깝고, 감정에 기반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좋다 싫다, 동의할 수 있다, 없다, 혹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로 결정하는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사고형은 '맞아, 이것이 옳은 거야'라고 표현한다면, 감정형은 '이것이 나에게 가치가 있어'라고 표현합니다. 사고형은 결정할 때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기 때문에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감정형은 그 결정이 좋았기 때문에 결정을 한 것입니다. 감정형은 개인적 감정과 가치관이 중요해서 결정을 내릴 때 실리적인 것보다는 그런 결정이 어떤 기분을 가져오느냐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앵커]
네, 그런 차이가 있다는 거는 그래도 알고 있지만, 머릿속으로 두 가지가 충동할 때가 많거든요. 일은 해야 되는데 영화 보고 싶고 이런 감정이 충돌할 때가 많은 데 왜 결정하기 전에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 걸까요?

[인터뷰]
네. 우리 뇌에서 밀고 당기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 킵 스미스 교수는 '사람이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두 개의 마음을 가졌고, 뇌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며 의사결정 메커니즘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스미스 교수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위험하거나 애매한 상황에 고민하게 하고 뇌가 활동하는 모습을 관찰했는데요. 그 결과 사람이 고민할 때는 신중한 판단을 하는 뇌 부위와 감정적 판단을 하는 뇌 부위가 동시에 작동했습니다. 흔히 계산 영역으로 불리는 뇌의 신중한 시스템은 수학과 합리적 결정에 이용되고, 감정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은 뇌의 원시적인 부분이 담당합니다.

인간은 뇌의 원시적인 부위와 이성적인 부위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결심하게 되는 건데요. 우리의 뇌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생기지만 감정과 이성의 지배를 동시에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는 엄청난 양의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한 사람 속에 다양한 의사결정 알고리즘이 존재해서 그래서 고민이 길어진다는 사실 참 놀랍습니다. 오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이 얼마나 힘이 센지 알게 됐는데요. 그런데 이런 감정을 자극해서 사람들이 제도를 잘 따르게 설계하는 방식이 있다는데 이건 어떤 원리인가요?

[인터뷰]
과거 대중들은 공손한 문화 속에서 규칙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사람들이 지시를 원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길 원합니다. 자유를 원하는 만큼 결정부터 책임까지 본인의 몫이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안전띠를 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봤을 때, 광고를 반복해서 하거나, 위반 시 벌금을 많이 부과하는 방법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는 '클릭 잇 오어 티켓(click it or ticket.)'이라는 캠페인을 만들었는데요. 안전띠를 매든지 아니면 벌금을 내라는 뜻으로, 캠페인 이후 안전띠를 착용하는 비율이 10%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살펴봤더니, 이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준 것이 다른 캠페인과의 차이점이었습니다. 안전띠를 맬 수도 있고 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위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건 오로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죠.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를 주면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했는데요. 사람들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그 캠페인에 동조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타인에게 결정권을 줄 때 역시 감정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는 주요 도구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앵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원래 저는 감정을 배제해야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는데요. 옳고 좋은 결정을 할 때는 옳은 방향과 그리고 근본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서 감정과 이성이 공존해야 한다는 걸 배운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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