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진 / 상담심리학자
[앵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만, 사실은 언제 행복하고 불행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사람이 언제 행복감을 느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정말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행복이 무엇이냐 아마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신가요?
[인터뷰]
오늘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행복이 뭔가요?
[인터뷰]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감은 다 다릅니다. 불행도 마찬가지인데요. 행복은 기분 좋은 감정이고,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행복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는데요.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나오는 말인데요. 그는 지나친 자극을 갈망해서 심신이 황폐해지는 경우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적정한 자극'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요. 강렬한 즐거움만이 행복이 아닐 수 있단 거죠. 행복은 대체로 기분 좋은 상탭니다. 흔히 행복을 달성해야 할 목표나 성취처럼 여기기도 하는데요. 행복은 느껴지는 정서이고요. 외부적 사건이 아니라 "내부적 만족감"입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걸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행복은 기분 좋은 감정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사실 언제 행복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
맞습니다. 이런 현상은 '해야 하는 것' 을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있는데요. 이 방송을 보면서도 "아, 계좌이체 해야 하는데." 한편에서 불편한 소리가 들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해야 하는 것'엔 내가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역할이 포함됩니다. 회사 업무뿐만 아니라 자녀, 배우자 등 가정에서의 역할까지, 우리에게 해야 하는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타인의 평가나 외적 보상 없이도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저 그 자체로 좋은 거죠.
예를 들어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습니다. 누군가는 이걸 가사, 노동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해야 하는 일로 여기기도 하는데요. 또 다른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주우면서 마음이 흡족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자발적으로 행동한 "하고 싶은 일"인 거죠. 핵심은,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까 보통은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더 흔할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디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처음엔 힘들 수 있는데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있죠. 즉 자기 이해부터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요. 욕구의 우선순위를 매겨보는 겁니다. 제 설명을 들으시면서, 나에게 중요한 욕구의 순서를 꼽아보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자 윌리암 글래서는 인간의 5대 기본 욕구를 정의했습니다. 1번, 생존 욕구. 생존이 중요한 사람은 위험한 일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고, 건강과 안전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규칙을 잘 따르거나 아끼고 모으려는 절제 행동이 나타나죠. 조심성도 높게 나타납니다.
2번, 사랑과 소속감 욕구. 사랑과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은 관계를 위해 고통도 참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친밀감을 얻는 것을 좋아합니다.
3번, 힘의 욕구. 이게 중요한 사람은 성취하기 위해 추진력을 발휘합니다.
4번, 자유의 욕구. 구속이나 간섭, 누가 시키는 일에 순응하기를 싫어해서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5번, 즐거움의 욕구.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앵커]
5가지의 욕구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사실 다 중요하게 느껴져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려운데요.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요?
[인터뷰]
욕구의 우선순위는 내가 어떨 때 불행감을 느끼는지를 살펴보면 혹은 슬픈지 생각하면 결정이 쉽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불행감이나 슬픔을 느끼는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거죠.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불행을 느끼는 건데요.
가령 일상에 재미가 없을 때 불행감을 느낀다면, 5번 즐거움의 욕구가 중요한 사람인 겁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신호를 감지할수록 행복감을 확보할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나에겐 "즐거움"의 욕구가 중요한데 채워지지 않고 있는 걸 알았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행동 하나를 찾아서 시도하는 것부터 할 수 있겠죠.
[앵커]
앞서 알려주신 다섯 가지 욕구 중에서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꼽아보는 게 아니라 어떨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지를 살펴보는 게 순서를 정하는 방법이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그 불행감을 느낄 때는 어떤 형태로 불행감이 나타나나요?
[인터뷰]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받는다고 말하는데요. 일상에서의 예를 욕구와 함께 살펴보면 이런 모습이 관찰됩니다.
첫째, 생존의 욕구가 높은 경우, 예측하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데요. 낯선 일 자체가 안전에 위협으로 다가오는 거죠.
둘째,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가 높은 경우, 누군가와 불편할 때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관계의 갈등을 참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날 수 있고요.
셋째, 힘의 욕구가 높은 경우, 일이 계획한 대로 안 됐을 때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뜻대로 일을 진행해 성취해야 만족감을 느끼는 겁니다.
넷째, 자유의 욕구가 높은 경우 누군가 나를 간섭할 때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이는 성취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데요. 자율성을 침범당하는 상황 자체를 위협으로 느끼는 점에서 힘의 욕구와는 구분됩니다.
다섯째, 즐거움의 욕구가 높은 경우 웃을 일이 없을 때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흔히 "재미있는 게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받는다."는 말을 자주 하죠. 이때 '내가 지금 재미있는 게 필요하구나?'라고 해석하는 것부터가 내 마음에 응답하는 행동이고요. 실제로 재미있는 것을 자신에게 줄 수 있으면 행복감을 충전할 수 있습니다.
[앵커]
방금 설명해주신 불행감을 느끼는 5가지 욕구가 사람들 모두 가지고 있는 걸까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인간의 "기본" 욕구라서 우리에게 모두 존재합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존재하고요. 욕구의 강도는 모두 다르다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욕구를 늘 원하는 만큼 충족할 수는 없는데요. 상대적으로 중요한 욕구를 가능한 수준으로 충족하며 사는 게 필요합니다. 이 욕구 이론을 제안한 윌리암 글래서는 모든 욕구를 평등하게 바라봅니다. 현재 내가 어떤 욕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가? 이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거죠.
이 말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나에게 중요한 욕구가 소외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즐거움의 욕구가 1순위인데 이걸 모른다면, 사회적인 역할, 즉 "해야 하는 것"을 지나치게 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즐거움"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그럴 땐, 성취를 줄이고, 재미있는 활동을 늘려주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앵커]
자, 언제 행복함과 불안감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쭉 설명을 들어봤는데요, 말씀을 들어보니깐 우리가 언제 행복하고 불행감을 느끼는지를 안다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조언해주시죠.
[인터뷰]
인간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매 순간 선택하는 행동은 나의 욕구(need)와 바람(want)을 충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거죠. 우리는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명확하게 알수록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역할", "해야 하는 것"에 목적이 반영될 수 있는데요. 그럴 땐 순수한 욕구, 즉 현재 내게 중요하거나 채워지지 않아서 슬픈 욕구를 찾아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욕구가 충족될 때 행복감을 느끼는가. 스스로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행복감을 경험한다고 고통과 불행감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요. 행복과 불행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삶에서 찾아오는 소소한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는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 내가 지금 기분이 살짝 좋구나! 일을 마칠 때가 되니 무사히 해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살짝 드네?.' 이렇게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결을 짚어보는 겁니다.
내가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삶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들을 포착하면서 행복의 순간을 찾는 연습을 해가면서 살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저는 갑자기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에 행복의 총량을 끌어다 쓴 것 같아서 불안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앞으로는 삶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진짜 나의 욕구를 찾아서 진짜 행복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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