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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화풀이 이야기

2022년 10월 18일 오전 09:00
■ 김지은 / 상담심리사

[앵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는 뜻인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화풀이에 대해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일상생활하다 보면 엉뚱한 곳에 화를 낼 때도 있고 내는 분들을 자주 목격하는데, 이 화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그렇죠. 우선 화풀이와 관련된 속담이 있는데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이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이 속담의 뜻은 “엉뚱한 데 가서 화풀이한다.”는 뜻이죠. 이런 속담이 전해져 내려올 만큼, 화풀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출근을 했는데, 옆자리 직원이 얼른 나에게 손짓하며 귓속말로 속삭여 줄 때가 있죠. “오늘 부장님이 이사님에게 불려가서 된통 깨졌어요.” 그러면 그 날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 날 바로 보고해야 하는 안건이 아니면 되도록 미룬다거나, 부장님에게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이 없는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릴 수도 있고요. 없던 점심 약속을 갑자기 만들어서 사무실에서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 행동이 부장님 눈에 튀는 행동이면 절대 안 되겠지요.

누군가가 일진이 안 좋구나, 기분이 안 좋구나, 하고 인식하게 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대부분 그 사람을 슬슬 피합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화풀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두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강아지도 우리가 화난 것을 알아채고 우리를 피하기도 합니다.

'화풀이 본능'의 저자 데이비드 바래시, 주디스 이브 립턴은 "고통과 폭력은 문화, 시간, 공간, 심지어 종을 뛰어넘어 서로 강력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앵커]
화풀이는 어떤 심리 때문에 나타나게 되나요?

[인터뷰]
생각해 보면 화풀이는 정말 불합리한 현상이에요. 우리는 심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상처 입고 고통받을 때 이걸 받아치고 싶은 본능이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화풀이 본능'이라는 책에서는 고통의 3가지 전달 방식으로 보복, 복수, 화풀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첫 번째로 보복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즉시 가해자에게 반사하는 반응입니다. 아주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죠. 거의 순식간에, 무의식중에 벌어집니다.

두 번째로 복수는, 보복과 비슷하지만, 시차와 강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복과 다릅니다. 그래서 처음에 공격받은 쪽은 아주 오랫동안 고통을 곱씹은 후에 복수를 행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지 같은 고전, 심지어 성경과 같은 종교 서적에서도 이런 복수의 서사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죠.

그런데 세 번째로 등장하는 화풀이는 앞의 두 가지와 매우 다릅니다. 고통을 상대에게 되갚아 주는 게 아니라 상관없는 옆의 누군가에게 갚아주는 행위거든요. 정당성은 없지만,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주변에 전염시키는 것이 화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정당성이 없더라도 주변에 화를 전염시키는 것이 화풀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앞서서 강아지도 화풀이를 느낀다고 설명해주셨잖아요, 동물 사례도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동물에도 정말 흔하게 나타납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분들은 직관적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텐데요. 연구결과에 따르면 화풀이 행동은 척추동물과 어류에게서 나타난다고 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동물의 생활을 보여주는 방송을 보면 이런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 무리 안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수컷 원숭이 두 마리가 심하게 싸우고 한쪽이 졌어요. 그런데 진 쪽의 원숭이가 터덜터덜 자기 자리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새끼 원숭이를 위협하며 공격하는 시늉을 합니다. 듣고 나니 한 번쯤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드시죠? 보통 먹이를 구하거나 짝짓기를 하는 상황에서 화풀이 행동이 빈번하게 나타나지만, 영장류 에게는 먹이와 짝짓기 경쟁 외에도 거의 모든 사건이 화풀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앵커]
사람과 동물에게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건데요, 이러한 화풀이를 하면 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인터뷰]
직관적으로 느끼시겠지만, 화풀이하고 나면 속이 편안해진다는 아주 큰 이점이 있습니다. 이게 올바르게 느껴지지도 않고 사회문화적으로 권장되는 것도 아니지만요. 실제로 쥐를 데리고 실험을 한 학자가 있었어요. 조금 잔인하지만, 쥐를 전기 충격 장치가 있는 우리가 넣고 약한 충격을 반복해서 주는 실험을 했는데요. 나중에 그 쥐를 검사해보았더니 고혈압과 위궤양이 발생했었다고 해요.

이 학자는 그래서 다른 조건에서도 같은 실험을 해보았어요. 전기 충격 우리에 쥐를 한 마리만 넣는 게 아니라 두 마리를 함께 넣은 거죠.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서로 무섭게 싸웠다고 해요. 그런데 나중에 검사를 해보니 두 마리 다 위궤양의 흔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공격성을 자신의 외부로 표출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던 거죠. 연구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이 결과에 대해 "쥐는 자기가 위궤양을 앓지 않는 대신 다른 개체에 위궤양을 유발했다."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화풀이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시죠.

[인터뷰]
우리 생활 속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화풀이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특히 운전할 때 우리는 이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보복운전’에 대한 기사가 많았죠. 그런데 ‘화풀이 운전’이 아니라 ‘보복운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긴 하지만, 사실 보복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운 상황이 많습니다. 보복운전 가해자보다 상대방이 어리거나, 여성이거나, 심지어는 차가 더 작을 때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져요.

화풀이는 내가 보복당하지 않을 만큼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향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향하는 경우가 많고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반려동물이 분풀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약자가 희생양이 되기 쉬운 거죠.

[앵커]
약자가 희생양이 되기 쉬운 화풀이라는게 정말 불합리한 현상이 것 같은데요,그렇다면 내가 무심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일단 내가 화가 났고 흥분했다는 사실 자체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나 화 안 났는데?”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화내는 분들 정말 많으시죠. 하지만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분노 감정을 적절히 해소할 수 있어요. 사람은 공격받는다고 느끼거나 상처받았을 때 당연히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어'라는 신호거든요. 그래서 잘못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각성이 올라가고 흥분 상태가 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보셨을 텐데요. 이 상태가 되면, “지금 당장” 뭔가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충동이 들어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행동으로 뭐든 튀어나오게 되기 쉬워요. 바로 이 흥분 상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일단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누구에게든 이걸 전가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 잠시 그 상황에서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환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주변에 화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서 잠시 물러서서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화풀이를 만드는 '화'라는 감정을 느낄 때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인터뷰]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화가 났다는 건 이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거든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그래서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나의 의사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해답일 거예요. 생각보다 내가 화났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얘기를 못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물론 화가 났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무조건 화를 벌컥 내는 게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나는지 생각해 보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상호 교류를 통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도 많아요.

그렇다면 더더욱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이 사람에게 욕을 퍼붓고 관계를 끊어버리게 된다면 그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결과일까? 이것은 효과적인 행동일까?' 이런 생각이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제가 말씀을 듣다 보니깐 한가지 떠오른 질문이 있는데 예전에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 나의 감정을 글로 도움이 된다 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인터뷰]
그럼요, 도움이 됩니다. 사실은 아주 심하게 화가 난 상황에서는 글을 써보자 했을 때 글을 논리적으로 쓰이지 않을 수 있어요,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은 내안의 감정을 안에서만 보는게 아니라 바깥으로 꺼내놓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거든요.이렇게 좀 거리를 두고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돌아보는 것이 나의 분노를 적절하게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한템포 쉬어 가는게 중요하단 말씀인 것 같고요,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그것들을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화가 바른 방향으로 해소 될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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