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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나의 수많은 얼굴, 진짜 나는 누구일까?

2022년 11월 08일 오전 09:00
■ 이혜진 / 상담심리학자

[앵커]
우리는 집에서의 나, 사회에서의 나 등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데요, 그중에서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으실 겁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서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요. 우선 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는지부터 말씀해주시죠.

[인터뷰]
우리가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아오는 거 같아요. 보통의 경우는 사춘기 때 '나는 누구지?' 이런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정체성 고민은 그때가 끝이 아니죠. 성인이 되어서도,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자기 소개할 때 보면 대체로 이렇게 말하죠. '나는 어느 회사에 OOO 팀장입니다'. 자녀가 있는 분들께 여쭤보면 '나는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빠'라고 소개하기도 하죠. 보통은 내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소개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익숙하기 때문인데요.

여러분들은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같으신가요? 집에서와 밖에서의 모습에 차이가 크게 없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둘 간의 차이가 크다면, 밖에서는 에너지도 많이 쓰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요. 집 밖에서의 모습이 다양할수록 혼란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집에서의 모습과 내 방에서의 모습의 차이가 크다면 집에서도 편치 않습니다. 이 경우, 집에서도 내 진짜 모습을 억누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또 생각하게 되죠. '진짜 나는 누구인가?'

[앵커]
정말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 를 생각해봤는데 어제도 그런 생각을 해본 거 같고 정말 그런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하는 생각인 거 같은데, 스스로 누구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복잡한 질문인데, 오늘 하나씩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알아가는 화두이기도 한데요. 이럴 땐 심리학자들의 오랜 연구를 통해 그 방향을 잡아볼 수 있겠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심리학자 융은 세 가지로 구분했는데요.
첫 번째, 남이 보는 나. 두 번째, 내가 되고 싶은 나 세 번째, 진짜 본래의 나 우리가 주로 사회에서 소개하는 '나'는 남이 보는 나, 더 정확히 말하면 남이 보아주길 바라는 '나' 입니다. 또, '페르소나'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말하죠. 우선, 내가 주로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인식하는 것부터 출발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앵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이기는 한데,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잖아요. 페르소나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이 연극을 하면서 썼던 가면에서 출발한 개념인데요. 배우들의 경우엔 극 중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역할을 연기하게 되죠. 그런데 연극이 끝난 후엔 어떨까요? 무대가 아닌데도 관객이 있는 것처럼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면 문제가 생기겠죠.

배우들처럼 우리도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데요. 대체로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통해 '타인이 평가하는 나'를 나로 인식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온전히 설명하는 데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우리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앵커]
페르소나가 가면에서 출발한 개념이라고 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이 가면을 써도 되는 걸까요?

[인터뷰]
우선, 페르소나에도 순기능이 있기에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페르소나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상호작용하고, 적응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인데요. 집단이 공동으로 정해 놓은 행동 규범을 지킬 수 있게 되고요. 최근 몇 년간 멀티페르소나(Me and Myselves)라는 신조어도 널리 쓰이고 있죠. 페르소나는 이 시대의 생존에 필수요소라고 분석됩니다.
여기서 '멀티페르소나'란 '복수(mulple)의 가면'이라는 의미로,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쓰듯 전환이 빠른 현대인의 다중 정체성을 뜻하는데요. 직장에서와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평소'와 '덕질' 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며, '일상'에서와 'SNS를 할 때'도 정체성이 다른 모습을 묘사하는 개념입니다.

SNS의 종류에 따라서도 페르소나가 달라질 수 있기도 한데요. 예를 들면 영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SNS에서는 설명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이는 분이, 사진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SNS에서는 말없이 이미지로 표현하는 사람과 같이 다른 정체성을 보일 수 있는 시대니까요.

[앵커]
때와 장소에 따라 우리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한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역기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페르소나 역기능이 있는데요. 바로 각종 '척'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위험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게 척인데요. 우리는 일상에서 "남이 보는 나", 즉 페르소나를 더 잘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옵니다.

흔히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착한 학생, 유능한 직원, 훌륭한 리더"와 같은 역할이 나의 페르소나가 되는데요. 사회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더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엄마인 척, 착한 학생인 척, 사교적인 사람인 척, 대범한 리더인 척, 척'과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역할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내가 척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내가 누구인가? 혼란스러워지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앵커]
페르소나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나도 모르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간이 있는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가면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나도 모르게 연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경우 내가 페르소나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어느 시점부터 진짜 본래의 나를 상실하는 거죠. '남이 보게 된 나'와 '진짜 본래의 나' 간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상황으로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 착한 사람 역할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 보면, 착해지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착한 역할 연기에 충실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덜 착하고 싶은 순간의 나는 존재를 숨겨야 합니다. 진짜 본래의 나는 소외되어 고립되는 것이죠. '영리한 엘제'라는 그림 형제의 동화 내용에서도 특정 페르소나만 허용되는 삶의 비극적 결말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요. 동화 속 엘제는 '영리해야만'하는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영리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엘제는 정말 총명하구나!"라고 칭찬하며, 총명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엘제만 수용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엘제는 어느 순간 자신을 보며 '이게 나일까, 아니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일까?’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페르소나가 굳어버려 자기를 상실합니다. 영리한 모습만을 연기하다 진짜 자기를 잃어버린 겁니다.

[앵커]
사회적 역할을 연기하다가 진짜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니까 아찔하기도 하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페르소나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설명해주셨는데, 적절한 선이 있어야 될 거 같거든요.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우선, 내가 주로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인식하는 것부터 출발해보시기를 추천했는데요. 현재까지 만들어 온 나의 페르소나를 알아보는 겁니다. 지금 내가 자주 만나는 사회적 상황에 걸맞은 페르소나를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난 어떤 모습인가? 떠올려봅니다. 요즘 MBTI로 자기를 알아볼 때도 혼란스러울 경우 나의 페르소나가 나 자신이 되어 있을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하는 데요.

본인이 편한 기능과 실제로 사용하는 기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사고형)가 편한데 F(감정형)로 산 경우, 결정할 때 상대방 눈치나 상황을 신경 쓰느라 불편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T(사고형)로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연습이 필요합니다. 무계획을 좋아하는 P(인식형)가 사회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서 J(판단형)로 살아왔다면,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P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허용해주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페르소나를 사용하면서 마음이 편할 수도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게 궁극적인 목적인데요. 페르소나는 사회적 상황에서 꼭 필요했기에 생겨났을 것인데요. 문제는 그것이 지나칠 경우 내 모습을 억누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찾아가게 되면 페르소나를 쓰면서도 나만의 개성이 생겨납니다.

구체적으로 편안하게 페르소나를 사용하기 위한 연습으로 '자신이 고유하게 느끼는 감정'에 관심을 가져보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감정과 있는 그대로 접촉하면서도, 외부 세계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로 나아가는 것이죠. '지금 나는 이런 감정이구나', '지금 나는 이렇게 지나치게 성실함이 요구될 때 좀 힘들구나'를 알아주면 그 순간 힘을 빼볼 수 있겠죠. 힘을 빼면서도 그 상황에서 적응하기 위한 조금 더 편안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상황과 맥락에 따라 페르소나를 적절히 골라 쓸 수 있는 나로 살아가면 좋겠죠.

'페르소나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를 쓰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접근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기(self)'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골라 쓰는 '자기들(selves)'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앵커]
가끔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것에 모두가 스트레스받을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진짜 나에 초점을 맞추고, 건강하고 조금은 가볍게 페르소나를 활용해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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