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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취재파일] 약물 부작용 원인 '카이랄성 분자' 간단하게 구별하는 기술 개발

2022년 12월 19일 오전 09:00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분야의 과학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이언스 취재 파일' 시간입니다. 오늘은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기자]
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조금 어렵기도 하고 생소하게 들리기도 할 텐데요.바로 '카이랄성'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카이랄이라는 성질, 특성을 말하는 겁니다.

의약품 개발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지금까지는 이 카이랄성 분자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특별한 도구 없이도 눈으로 쉽게 카이랄성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우선 용어부터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카이랄성 그러니깐 그 성질이란 게 뭔가요?

[기자]
카이랄성, 'chirality'라는 영어인데요, 한글로 하면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합니다. 분자식은 같지만 구조가 다른 화합물을 말하는데요. 가장 쉬운 예는 바로 우리 손입니다.
오른손과 왼손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회전시켜도 겹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거울에 비친 모습은 같지만 겹쳐지지 않는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 카이랄성 분자라고 말합니다. 카이랄성 분자는 구별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요. 빛을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 오른손 분자, D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르고, 반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 왼손 분자, L 거울상 이성질체로 부릅니다. 여기서 D는 라틴어로 오른쪽을 의미하는 덱스터에서 따왔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카이랄 중심에 나타난 치환기들의 3차원적 배열에 따라 R와 S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앵커]
그럼 카이랄성 분자에는 뭐가 있나요?

[기자]
가장 쉽게는 포도당이 카이랄성 분자입니다. 탄수화물을 분해하면 최종적으로 얻는 단당류가 포도당, 글루코스잖아요.글루코스의 동의어로 '덱스트로스'라는 게 있는데, 이게 오른쪽에 있는 당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그래서 포도당을 분자식으로 표현할 때 D-글루코스라고 쓰거든요.

그런데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포도당은 D-글루코스뿐이고요. 합성과정에서 L-글루코스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L-글루코스는 몸속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열량도 없다고 합니다.

과일향에서도 카이랄 분자를 찾을 수 있는데요.바로 레몬과 오렌지입니다. 아로마의 일종인 리모넨 분자가 카이랄성 분자인데요.S-리모넨은 레몬향을 내고, R-리모넨은 오렌지향을 냅니다.

또 다른 예로는 아스파탐이 있습니다. 아스파탐은 설탕의 약 200배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인데요. 화학 구조에 당을 포함하지 않아 최근 저칼로리 음식과 음료에 많이 첨가되는 설탕 대체체인데요.

그런데 아스파탐도 카이랄성 분자라서 L-아스파탐은 단맛이 나지만, D-아스파탐은 쓴맛이 난다고 합니다.

[앵커]
설명을 들으니깐 정말 신기한데 그러니깐 재료가 같은데 구조가 달라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잖아요. 실제로 카이랄성의 중요성을 확인한 사건이 있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탈리도마이드 사건' 입니다. 1957년 독일의 한 제약사인 그뤼넨탈이 개발한 진정제인데요.

항생제를 주로 만들던 이 회사는 새로운 경련 진정제를 개발하던 중 탈리도마이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회사는 쥐와 토끼 등의 동물실험을 통해 무해하다는 걸 확인하고,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이 약은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는 약이었는데요. 진정 효과보다는 임신부의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당시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 5년 후, 탈리도마이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는데요.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들이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신생아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끔찍한 부작용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탈리도마이드 분자의 카이랄성 때문이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 분자는 R형과 S형으로 구분되는 카이랄성 분자였는데요.R형은 진정 및 수면 작용이 있었지만, S형은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겁니다. 결국, 태아가 필요한 영양분을 혈관으로부터 공급받지 못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이 태어난 거죠.

[앵커]
방금 설명해 주신 부분이 영상으로도 나갔는데요. 영상을 보니까 카이랄성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데요. 이 사건 이후 의약품 개발에 있어서 카이랄성을 구분하는 게 중요해졌을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학계에 따르면 전체 의약품의 절반 정도가 카이랄성 물질로 만들어진 카이랄 의약품이라고 합니다. 그중 일부는 탈리도마이드처럼 위험한 카이랄 분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요. 실제로 결핵 치료제 성분인 '에탐부톨'의 카이랄 분자는 실명을 유발할 수 있고, 관절염 등 염증 치료제 성분인 '나프록센'의 카이랄 분자는 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앵커]
그럼 합성 분자를 만들 때부터 카이랄성을 조절할 순 없는 건가요?

[기자]
한 방향의 분자만 사용하거나 분자 합성 후 효과가 있는 쪽만 분리해서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원하는 방향의 카이랄성 분자만 선택해 합성하는 게 무척 어렵다는 건데요. 원하는 카이랄성 유기분자를 합성하려면 그동안은 금속이나 생체 촉매인 효소가 필수적이었고, 복잡한 화학반응 또한 거쳐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3의 촉매라 불리는 비대칭 유기촉매가 개발된 이후, 현재는 과거보다는 빠르고 저렴하게 그리고 친환경적인 다양한 유기 합성 반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비대칭 유기촉매 개발 공로로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석탄연구소장과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2021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또, 2020년 기초과학연구원 분자활성촉매반응 연구단에서는 2개의 카이랄성 분자 중 한 종류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는데요. 연구진은 카이랄 다이아민 골격을 포함한 이리듐 촉매가 99% 이상의 정확도로 거울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요. 이를 이용해 의약품 필수 재료인 락탐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앵커]
원하는 카이랄성 분자를 합성하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이미 합성한 분자가 카이랄성 분자인지, 카이랄 분자가 얼만큼 들어있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분자의 카이랄성을 분석하는 것 또한 중요하죠.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빛을 얼마큼 흡수하는지에 따라 카이랄성을 분석했는데요.

하지만 이 분석법은 빛의 크기에 비해 분자가 너무 작아 상호작용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농도의 시료를 써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고농도의 시료를 만드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측정 시간도 오래 걸렸고요. 자외선 영역의 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료가 손상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또, 카이랄성 검사 장비가 비싸 의약품의 가격까지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고요.

[앵커]
그런데 이번에 국내 연구진이 고가의 장비 없이도 육안으로 쉽게 카이랄성을 구별할 수 있는 분석법을 개발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서울대 남기태 교수팀은 고려대 이승우, 박규환 교수와 공동으로 육안으로 분자의 카이랄성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분석 시스템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는데요.핵심은 카이랄성 구조에 반응하는 금 나노 입자를 일정하게 배열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고분자 기반의 나노 구멍 격자를 이용해 금 나노입자를 주기적으로 배열했는데요. 이렇게 하면 빛과 분자 간의 상호작용이 극대화돼 방향성에 따라 가시광선 중 특정 빛만 나와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눈으로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 투명한 액체를 개발한 분석 시스템에 넣어보면, 왼손 분자는 보라색, 오른손 분자는 빨간색으로 나타납니다. 연구진은 색깔에 따라 카이랄성 분자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농도 차이를 비교하면 각각의 카이랄성 분자가 얼만큼 들어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요. 연구진의 설명 직접 들어보시죠.

[남기태 /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 카이랄성을 가지고 있는 금 입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 주변에 분자가 있는 것에 따라서 색깔들이 달라지는 것의 의미를 파악했고요. 저희는 이 기술이 학문적인 발견을 뛰어넘어서 앞으로 또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활용처는 새로운 약품들을 개발한 것뿐만 아니라 어떤 환경 관련된 센서들, 의학과 환경 분야의 새로운 센서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연구진은 개발한 분석 시스템이 눈으로 쉽고 빠르게 분자의 카이랄성을 구분할 수 있어 의약품의 카이랄성 분석은 물론 분석학이나 진단학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앵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카이랄성을 쉽게 구분하게 된다면 의약 산업의 효율과 정확도가 높아져 약값도 줄어들고 부작용도 줄어드는 등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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