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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제주도를 그리는 이왈종 화백 이야기

2023년 01월 06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제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가, 이왈종 화백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제주도의 관광지로 알려진 왈종 미술관이 이왈종 화백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건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이왈종' 화백의 제주도 사랑과 예술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이왈종 화백, 저희가 앞서 잠깐 소개를 해드렸는데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인터뷰]
네, 제주를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진 이왈종 화백은 194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대 회화과와 건국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개인전 또한 꾸준히 개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데요. 1974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이후에 미술기자상과 한국미술 작가상, 한국미술문화대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이 있고요. 자신의 작품을 담은 화집과 저서도 틈틈이 출간합니다.

하지만 이왈종 화백의 진짜 전성기는 약 11년간 재직하던 대학교수를 그만두면서 시작되는데요. 1979년부터 추계예대에서 재직하다 1990년대에 퇴직하고, 제주도 서귀포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왈종 화백이 제주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자신을 둘러싼 자연 풍경과 일상을 담은 대표작, '제주생활의 중도'시리즈가 이때부터 그려지게 되고요. 특유의 유쾌함과 다채로운 색감 또 화폭 안에 다양한 요소를 조화롭게 담아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유로운 화풍이 주요 특징입니다.

[앵커]
이왈종 화백 작품의 중심이 제주도라서 고향이 제주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제주에 정착하게 된 건가요?

[인터뷰]
이왈종 화백이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때라고 합니다. 데모로 인해서 수업을 이전처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안식년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도 할 겸 제주도로 향하게 됩니다. 처음 계획했던 1년의 휴식 기간이 끝나고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왈종 화백은 교수직을 내려놓고 제주도에서 쭉 작업하게 되는데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약 30여 년간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왈종 화백은 처음 대학교수가 됐을 때, 5년만 하고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겠다고 했지만 11년 동안 근무하게 되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요. 한편으로는 화가로서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절실했다고 합니다. 교수라는 직함이 가져다주는 여러 좋은 점들이 있었지만, 이왈종 화백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그저 욕심부리지 않고 생을 다 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에서의 생활도 뒤로하고 제주로 떠나야 했다고 합니다. 낯선 제주행이 이왈종 화백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당시의 과감한 판단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던 셈입니다.

[앵커]
휴식이 필요해서 제주도에 가게 됐다가 이 곳에서 인생이 바뀌게 된건데 이 화백에게 제주는 어떤 공간인가요?

[인터뷰]
네, 큰 결심을 하고 갔기 때문에 금방 적응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제주에 정착한 초기에는 서울에 대한 일종의 향수병이 심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런 날엔 오히려 더 작업에 몰두하면서 잡념을 가라앉혔습니다.

특히 이왈종 화백은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고 자연경관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만큼 제주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서도 큰 영감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일몰이나 벼락, 태풍 등이 있는 날에는 밤을 새며 포착하려 노력한다고 하고요. 이왈종 화백은 눈으로 스케치를 한다고 표현하는데요, 이런 자연 현상은 예상치 못할 때 순간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각인해 뒀다가 작업할 때 화면에 재구성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림만 그리면서 살고 싶다는 이왈종 화백에게 제주도는 영감의 원천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제주도에 진심인 작가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면 이 화백의 대표작인 '제주생활의 중도' 라고 하는데 이 제목의 의미가 뭔가요?

[인터뷰]
네, 아무래도 이왈종 화백의 작품 중에서는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죠. 1990년대부터 자신이 머물던 제주도를 배경으로 자연경관과 일상생활 모습을 주제로 작업하는데요. 제목인 '제주생활의 중도'에서 '중도'라는 단어는 불교 용어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본다는 겁니다.

이왈종 화백에게 바르게 본다, 평등하게 본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합니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나비나 꽃, 사람, 강아지 같은 존재들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화폭에 담는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래서 등장하는 소재들 또한 원래의 크기가 아니라 비슷한 크기로 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앵커]
작품 속 소재를 차별 없이 평등하게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그렇다면 이 화백의 작품 특징은 뭘까요?

[인터뷰]
작품을 보면 마치 옛날의 민화 같은 풍속화의 느낌도 있는데요. 이왈종 화백이 조선 시대 대표적인 풍속 화가죠. 신윤복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3대 풍속화가 중 1명인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양반 계층의 풍류나 남녀 간의 애정 등 조선의 일상 풍경을 담아냈죠. 이왈종 화백은 신윤복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해학의 미를 높이 사고, 자신 또한 작품에 그런 위트를 담습니다.

'제주생활의 중도'에는 파릇파릇 나무나 꽃, 새처럼 자연 요소들도 있지만, 특히 '골프'를 소재로 담기도 하는데요. 자연과 골프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선 자연 속에서 골프를 치죠. 이왈종 화백은 '리얼한 우리 삶의 풍경이다. 그림은 솔직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앵커]
앞서 이 화백의 대표작 이름 '제주생활의 중도' 에서 '중도'라는 단어가 불교 용어라고 하셨잖아요. 어떠한 계기로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된 건가요?

[인터뷰]
이왈종 화백이 종교 서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반야심경'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평정심을 얻고, 세상의 만물은 다 상대적인 존재라는 깨달음 또한 얻었다고 하는데요. 이왈종 화백은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내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고찰을 답사하면서 수양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앵커]
'반야심경'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은 이왈종 화백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인터뷰]
이왈종 화백은 초기에 '발묵기법'이라는, 동양화 중에서도 수묵화의 전통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요. 발묵기법은 종이 위에 먹이 번지게 하는 기법입니다. 이후에 수묵과 채색을 혼합해서 작업하다가 최근에는 장지에 아크릴을 주재료로 사용하는데요. 또 2cm 정도 두께의 닥종이를 특수제작해서 작업하기도 합니다. 제작 과정에서 특수처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물이 닿아도 형태가 변형되지 않아서 작품 보관에 용이 하다고 합니다.

특히 도자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왈종 화백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내 작업에 장르의 경계는 없다. 조각이나 도예를 배웠다면 지금의 작품 스타일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돈이 목표가 아니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돈 따라서 하면 작가는 모두 망한다. '이처럼 이왈종 화백은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림을 정말 사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만날 수 있는 이왈종 화백의 미술관, 왈종 미술관에 대해 알려주시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의 정방폭포 옆에 왈종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2013년 6월에 개관한 왈종 미술관은, 이왈종 화백이 직접 건축의 외관을 디자인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공간입니다. 건물의 모습이 마치 대형 백자 찻잔처럼 생겨 이목을 끄는데요. 이 건물 디자인에 대해서 ‘내 그림을 보여줄 곳이라 공들였고, 건축가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아예 백자 도자기로 구워 보여주면서 설득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이왈종 화백은 건축 외관의 샘플을 도자기로 구워 소통했다고 합니다. 건축은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다비드 머큘로와 한만원 한 도시건축 소장이 함께 작업했고요. 야외에는 화백이 직접 가꾼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정원에 즐비해 건물과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합니다. 제주도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앵커]
네, 오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요. 제주에 방문하게 된다면 꼭 왈종 미술관에 가봐야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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