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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멕시코의 국보 아티스트 '프리다칼로' 이야기

2023년 01월 20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멕시코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일상에서의 고통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입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멕시코의 국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칼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 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프리다 칼로,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게 되는데,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1921년 국립예비학교에서 공부합니다. 칼로가 성장하던 시기의 멕시코는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혁명이 일어났는데요. 격변의 시기를 겪으면서 혁명가에 심취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격 또한 강인하고 열정적이었다고 하고요. 당시 학교에서 벽화를 그리는 디에고 리베라를 보고 큰 영감을 받는데요, 이후 칼로가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18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겪은 칼로는, 이 사고로 인해서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게 될 정도로 고통 속에서 살게 되고요. 이 육체적, 심리적 상처가 훗날 프리다 칼로의 예술 세계에서 큰 주제가 됩니다.

칼로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지내는 칼로를 위해, 침대 위 천장에 거울을 달아주는데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자화상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 게 많은데요. 아름답게 미화해서 그린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고통을 캔버스에 마음껏 분출해냅니다. 1940년대 말부터 건강이 악화하고, 거듭되는 수술 실패로 대부분 시간을 누워 지내게 되지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요. 1953년 첫 개인전을 연 후, 이듬해에 사망하게 됩니다.

[앵커]
자화상을 보면 웃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자화상에 몰두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주로 어떤 모습을 주로 담았나요?

[인터뷰]
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하기보다는 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18살 때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를 겪으면서, 신체의 많은 부분이 골절되는 부상을 겪었기 때문에 그나마 자유로운 건 양손뿐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천장에 달아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화상을 주로 그리게 되는데요.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 때문에, 또 내가 제일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린다.” 프리다 칼로의 예술 인생에서 자화상은 자신의 고통을 풀어내는 방법이기도 했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앵커]
소아마비에 교통사고까지 정말 어린 나이에 큰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인데요. 정신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중 대표작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자신의 아픔을 시각적으로 너무나 잘 그려낸 작품이죠. 1944년에 그려진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입니다. 언뜻 봐도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이는 모습인데요. 이 작품은 프리다 칼로가 척추 수술을 받은 직후에 그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칼로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척추 세 군데가 골절됐는데요. 작품 속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철로 된 기둥이 군데군데 부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칼로가 평생을 의지했던 코르셋 또한 그려져 있는데요. 칼로는 당시에 착용하던 코르셋 위에 이 작품처럼 기둥을 그려 넣기도 하고, 자신이 유산한 아이의 형상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칼로는 자신의 아픔을 작업으로 승화시키곤 했습니다.

[앵커]
그림만 봐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앞서 프리다 칼로가 예술에 빠질 수 있었던 건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어떤 관계였나요?

[인터뷰]
프리다 칼로가 굉장히 사랑하던 인물이 '디에고 리베라'였는데요. 프리다 칼로가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던 '디에고 리베라'는 당시 멕시코 미술계에서 거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이런 디에고 때문에 칼로 또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앞서 이야기했는데요. 디에고 역시 재능이 뛰어난 칼로가 훌륭한 화가가 되도록 돕겠다고 했지만, 반대로 칼로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안기게 됩니다.

복잡한 여성편력 때문인데요. 디에고는 칼로와 결혼하기 전 이미 외도로 두 차례 이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칼로와 결혼한 후에도 이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고요. 심지어 칼로의 여동생과도 부적절한 관계로 치닫자 칼로는 디에고에게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이후에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연애도 하는 등 자유롭게 생활하지만 워낙에 안 좋았던 건강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칼로는 끝내 디에고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집착과 증오를 반복하며 죽는 날까지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앵커]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많은 고생을 했던 작가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칼로의 작품 속에 디에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기도 한가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프리다 칼로에게 디에고는 단순히 배우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던 존재였습니다. 이런 마음이 여러 작품 속에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949년에 그려졌는데요. 이 작품 속의 여성은 칼로, 안겨 있는 남자아이는 디에고를 의미합니다.

광활하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두 얼굴의 하늘을 배경으로, 그 중심에서 디에고를 안고 있는 칼로가 보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죠. 칼로는 늘 자신을 괴롭게 하는 디에고에게 매번 실망하면서도, 결국엔 다시 사랑으로 품게 되는데요. 칼로는 이런 마음을 단순히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모성애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에고를 향한 복잡한 마음이 시각적으로 잘 나타났습니다.

[앵커]
디에고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사랑 또는 증오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스토리가 많은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프리다 칼로의 인기가 이 스토리도 포함 된 것 같은데 인기가 어느 정도 일까요?

[인터뷰]
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인기가 좋다는 것은 경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디에고와 나'라는 작품이 202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12억7천만 원으로 낙찰됐는데요. 남미 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전 기록의 주인공은 바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였는데요. 2018년 980만 달러에 낙찰됐던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가보다 훨씬 높은 금액인 3,490만 달러로 기록을 세웠습니다.

작품 '디에고와 나'는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뜨기 5년 전에 그려졌는데요. 1949년에 그려진 자화상으로, 작품 속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눈이 3개인 디에고의 얼굴이 주요 특징입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에도 디에고 리베라는 여성 문제로 칼로를 힘들게 했는데요. 이때 디에고가 칼로의 지인이자 영화배우였던 마리아 펠릭스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셋의 삼각관계를 세 개의 눈으로 묘사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 소더비 라틴 아메리카 미술 담당자인 ‘안나 디 스타시’는 이 작품에 대해서 “오늘 경매의 결과가 궁극의 복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칼로의 재능과 매력이 검증된 것이기도 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칼로의 입장에서 디에고에 대한 복수이자 디에고를 극복했던 그런 순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프리다 칼로가 유작으로 남긴 특별한 작품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시죠.

[인터뷰]
평생 수십 차례의 수술과 수많은 약으로 버텨왔던 프리다 칼로는, 죽음에 이르기 일주일 남짓 남았을 때 'Viva la vida'라는 작품을 그리게 됩니다. 1954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수박이 다양한 모양으로 잘려있는 정물화입니다. 수박의 붉은 과육과 검은색의 씨가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는 이 작품은 마치 프리다 칼로의 강렬하고 질겼던 삶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한데요.

프리다 칼로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평생을 고난 속에 살며 예술의 혼을 불태웠던 프리다 칼로에게 어쩌면 죽음이란 고통스러운 생 끝의 출구였을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락밴드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이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 바로 'Viva la vida'이기도 합니다.

[앵커]
전까지는 칼로의 그림을 보면 강인해보였는데요.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깐 애써 강인한 척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비바 라 비다!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 라는 뜻이죠. 그녀는 이 그림을 통해 마지막 만세를 외치며 생을 마감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수경 아트 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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