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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예술가들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이야기

2023년 01월 27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레오나르도 다빈치마저 질투했던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예술에 관심이 적은 분들도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익숙하실 텐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천재 중에 천재라고 불리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뒤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드디어 미켈란젤로가 나오네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또 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 불리는 정말 천제인데 미켈란젤로 어떤 인물인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로맹 롤랑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재가 뭔지 모른다면 미켈란젤로를 보라'.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로 손꼽히는 예술가죠,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입니다. 워낙 재능이 많아서 시를 쓰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를 포함해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3명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불리죠.

1475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어린 시절부터 조각용 끌과 망치를 가지고 노는 걸 즐길 정도로 일찍부터 재능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당시 피렌체는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의 부모님은 예술가보다는 좀 더 상업 거래와 관련된 직업을 갖길 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고요. 메디치 가문의 눈에 들어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앵커]
미켈란젤로 하면 또 우리나라에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천장화 경험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죠, '천장화'는 미켈란젤로가 처음 그린 천장의 그림인데요. 1508년부터 꼬박 4년 동안 작업해서 1512년에 완성됐는데요. 당시 보통의 예술가들은 이 성당 천장의 10분의 1 정도 크기를 그리는 데에만 평균 3년 정도가 걸렸다고 하거든요. 미켈란젤로의 첫 천장화인데도 불구하고 작업 속도가 굉장했다고 보면 되고요. 속도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수준이었습니다.

훗날 이 비현실적인 작업 시간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계산해본 결과 미켈란젤로가 하루에 2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매일매일 작업해야 4년 만에 마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리면서 굉장히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4년 동안 천장에 매달려 작업하면서 어깨가 휘고 등도 굽게 되고요. 오랜 시간 동안 얼굴에 석회분진을 맞는 바람에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주로 조각을 했던 미켈란젤로는 이 천장화를 맡기 전까지 회화 장르에 크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앵커]
정말 몸과 정신 모든 것을 바친 역작이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사실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을 거 같거든요. 그런데도 천장화를 맡아서 그리게 된 이유가 뭘까요?

[인터뷰]
당시에는 교황의 권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입니다. 율리우스 2세가 교황이었던 시기에 이 '천장화' 작업이 미켈란젤로에게 의뢰되는데요. 이때 미켈란젤로는 교황과의 사이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대쪽같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교황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렇다 보니 아무리 천재예술가라도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 거의 명령의 느낌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려줄 것을 의뢰하고요. 참고로 미켈란젤로는 당시에 조각가였고 회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천장화는 프레스코라는 고 난이도의 기법을 사용해서 그려야 했는데요. 프레스코화는 벽에 석회 반죽을 바른 후 물기가 마르기 전에 물감을 칠해서 완성해야 하기에 쉬지 않고 작업해야 하는데, 이런 프레스코화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웠던 거죠. 교황이 천장화가 언제 완성되느냐고 닦달하자 미켈란젤로는 '내가 끝낼 수 있을 때 끝난다'라고 맞받아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만 한 실력자가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끝내 화해했고요. 교황이 작업 과정을 중간에 보여달라고 해도 완성될 때까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가 완성되고 나서야 공개했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앞서서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맡기 전에 주로 조각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조각 작품도 궁금한데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으로는 '피에타'와 '다비드' 등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피에타'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제목인 '피에타'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를 뜻합니다.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고요. 1498년에서 99년경에 제작됐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피에타'로 인해서 24살의 나이로 일찍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성모가 예수를 이렇게 품에 안고 있는 이 도상 자체를 '피에타'라고 하는데요, 미켈란젤로 말고도 수많은 예술가가 이 '피에타'의 도상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만 그중에서 최고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켈란젤로 자신도 이후에 여러 피에타를 만들었는데요, 다른 작품들은 이때 조각한 이 작품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하죠.

한 추기경으로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에 놓여질 '피에타'를 의뢰받아 작업했는데요. 사진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2m 정도 되는 대작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요, 안겨 있는 예수의 신체 디테일을 보시면 힘줄이나 근육, 골격 같은 부분이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성모의 옷자락 주름도 어떻게 돌로 이렇게 조각했을까 싶을 정도로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데요. 특히 성모의 은은한 미소와 아름답고 젊은 여성으로 표현되어있다는 점도 특징인데요. 미켈란젤로는 성스러운 존재인 성모는 속세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젊고 아름답게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미켈란젤로의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나 이 작품은 더 경이롭게 느껴지는데요. 그런데 피에타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서요?

[인터뷰]
네, 피에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데요. 당시 조각가들이 자신의 조각에, 특히 눈에 띄지 않는 곳도 아니고 작품의 한가운데에 서명을 남기는 일은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만들고 유명해진 후에야 뒤늦게 서명을 새겨넣습니다. 이유가 재밌는데요. 이 '피에타' 작품이 유명세를 얻지만, 정작 사람들이 누가 조각했는지는 잘 몰랐다고 합니다. 또 피렌체의 조각가가 아니라, 롬바르디아의 출신 조각가의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어느 날 밤에 성 베드로 성당에 몰래 들어가 서명을 남겼다고 하고요. 성모 마리아의 상체 부분을 가로질러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다'라고 남겼습니다.

[앵커]
천재 예술가에게도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피에타' 작품이 테러 위협에 놓인 적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피에타상은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하기도 하고 성 베드로 성당에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세계 각지에서 작품을 보러 찾아가기도 하는데요. 1972년에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내가 예수다. 우리 어머니는 저렇지 않다.'라면서 이 작품을 15번이나 망치로 가격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피에타상의 성모 마리아 코 부분과 눈꺼풀, 왼팔 부분이 훼손되어 떨어져 나가는 등 손상을 입는데요. 이후에 복원 과정을 통해 본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 해프닝 이후에 피에타상은 방탄유리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앵커]
명작인 만큼 잘못된 관심까지도 받았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 하면 천지창조로 알려져 있는 천장화 그리고 피에타와 함께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도 유명하잖아요. 이것도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거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하지만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때부터 맡은 건 아니고요. 미켈란젤로가 71살이 되던 해인 1546년에, 40년째 건축 중이던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 책임자였던 안토니오 다 상갈로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교황 파울루스 3세는 그다음 적임자로 미켈란젤로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당시 미켈란젤로가 워낙 고령이었기 때문에, 건축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컸지만, 교황의 의견은 확고했고 미켈란젤로 또한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이듬해인 1547년에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의 최고 전결권을 쥐게 되고요.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자신의 생에서 최후의 임무라고 생각했겠죠. 이 건축이 말년의 미켈란젤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1564년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서 많은 부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앵커]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정말 미켈란젤로는 조각부터 회화, 건축까지 조형예술의 3대 장르를 모두 섭렵한 천재 중의 천재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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