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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와 잘 그만두는 법

2023년 03월 14일 오전 09:00
■ 김지은 / 상담심리사

[앵커]
때론 그만두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하지만 우리는 종종 상황이 잘못되거나 불만족스럽더라도,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 에서는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와 관련해 매몰 비용과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잘 그만두는 법' 정말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는데요. 잘 그만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터뷰]
사업이 망해가는 것 같은데 접을 수가 없고, 고시가 안 될 것 같은데 그만둘 수가 없고, 독이 되는 관계 같은데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몇 년이고 고시 준비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향해 ‘고시 낭인’이라고 말하며 비웃기도 하고, 폭락하는 주식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을 못 보고 소위 말하는 ‘희망 회로’만 돌리고 있다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심지어 반복적인 데이트 폭력이나 학교 폭력 피해,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피해에 관한 뉴스를 보거나, 최근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볼 때도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어리석지? 나라면 제때 잘 빠져나올 텐데.”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정말 큰 함정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그게 “나는 아닐” 것이라고 모두가 믿지만, 정작 나의 일이 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 더!”를 외치며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앵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본 적 있는 이야기 일 것 같은데요, 보통은 그만두는 것보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끈기 있게 계속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인터뷰]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은 서로 “시작이 반이다.”라고 많이 격려해줍니다. 시작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뜻을 담은 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사실은 시작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미 기존에 하고 있던 일이어도, 계속하던 것을 그만두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흔히 수능이나 고시 등을 준비할 때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라든지, 새해 결심을 이야기할 때 “작심삼일” 같은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우리가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은 너무나 쉽고,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지속시키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하고 그만둘 때를 놓치기 십상입니다.

물론 어떤 일을 끈기 있게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든지, ‘그릿’ 같은 개념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이유도 바로 이것이죠. 하지만 그만두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하고 있던 일을 얼마나 열심히, 또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의 여부와는 별개의 일입니다. 문제는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지만, 제때 그만두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앵커]
생각해보면 사회가 '끈기'를 강조하다 보니깐 제때 그만 두는 것의 중요성의 대해서는 사실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무언가를 제때 그만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우리가 무언가를 그만두기 어려워할 때 심리학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매몰 비용의 오류입니다. 매몰 비용이란 이미 발생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미 묻어버린 비용’, 써 버리고 지나가 버린 비용입니다.

이것은 꼭 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노력이든, 에너지든,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들이게 되는 비용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이미 써 버린 것은 다시 회수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날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오늘 한정 특가로 나온 복숭아를 발견했다고 치겠습니다. 환불 불가 조건의 특가였지만, 마침 며칠 후에 집들이도 있겠다,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만 5킬로그램이나 주문해 버린 거죠. 그런데 참석하기로 한 손님이 코로나 19에 걸려버린 겁니다. 집들이는 취소되고 말았지만, 당연히 복숭아는 환불을 받을 수가 없겠지요. 이렇게 이미 지불 했지만 회수할 수 없는 것, 이 경우에는 복숭앗값이 매몰 비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매몰 비용이 우리가 제때 그만두지 못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으까요?

[인터뷰]
흔히 경험하는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직장인 경수씨가 있습니다. 경수씨는 새해를 맞이하여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어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야심 차게 헬스장도 등록하고, 영어 학원도 등록했습니다.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어차피 저녁 먹고 집에서 각종 ott만 보고 있으니까 남는 시간도 많겠다,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연초에 설 연휴까지 있고, 어영부영 지나다 보니 거의 출석을 못 한 겁니다.

어느 날 확인해보니 회원권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고, 횟수는 20회 넘게 남은 상황입니다. 경수씨는 “이대로는 돈을 날리겠어. 본전 찾으려면 한 달 동안 최대한 횟수를 많이 써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5일 연속으로 하고, 영어 학원까지 꾸역꾸역 가다가, 그만 주말도 되기 전에 갑자기 열이 나고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헬스장 회원권도, 영어 학원 수강권도 이미 돈을 지불한 시점에서 매몰 비용인 셈입니다. 즉 지금 새로 지출하는 비용이 아니라, 이미 써 버린 비용이기 때문에 매몰 비용보다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지금의 체력과 시간을 무리해서 써 버리고 아플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수씨와 같은 상황에서 경수씨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앵커]
듣고 보니깐 그런데 본전을 뽑으려고 하는 마음을 많은 분들이 평소에도 먹고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인터뷰]
그렇죠.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보면, 우리는 같은 양의 이익과 손실이 있다고 할 때 손실에 심리적으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보고, 반대로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주머니를 뒤져보니 내가 갖고 있던 5만 원짜리 지폐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보며 비교해보시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반응이기에 이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긴 어렵지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무언가를 그만두지 못하면서 행복하지 않고, 힘들고, 어딘가에 갇혀버린 느낌이 들 때입니다. 그리고 보통 이미 불행한 느낌이 들기 한참 전에 문제 신호가 나타났던 경우가 많습니다. 몇 달 전에 말씀드렸던 타조 효과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문제 신호를 무시하다가 문제 상황이 더욱 커져 버리고 마는 사태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마찬가지로 신호가 나타날 때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제때 그만두기 위해서, 어떤 신호가 나타날 때 그만두어야 할까요?

[인터뷰]
상황마다 구체적인 신호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그 상황을 바라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약속한 A와 B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사귀는 3년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결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서로의 집안 문제로 다툼이 발생했고,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가 A가 물건을 집어 던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B는 ‘이렇게 폭력성이 있는 사람이었나?’라고 흠칫했다가, ‘한 번뿐이니까’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 이번에는 A가 B를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결혼 후에 A의 폭력성이 더욱 심각하게 드러날 위험성이 높겠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게 자신의 상황이 되면 바로 이 매몰 비용의 오류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사귀었으니까, 이미 결혼했으니까, 아이도 생겼으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상황을 합리화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매몰 비용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입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가진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매몰 비용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고려한 기회비용을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대로 결혼하여 10년 후에도 행복할 확률이 어느 정도일까요? 또는 결혼하지 않았을 때 10년 후에 행복할 확률이 어느 정도일까요? 이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뿐만 아니라 고시든, 사업이든, 내가 지금 붙잡고 놓기는 어려운데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당 될 수 있습니다.

[앵커]
사실 말씀해주신 그런 사례가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거고 사기를 당한 분들도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인터뷰]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 이미 진입했을 때 고민하기 시작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매몰 비용의 오류 같은 인지적인 오류에 빠지기 더욱 쉽습니다. 따라서 어떤 것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그만둘 기준’, 즉 중단 기준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고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가정할 경우, ‘3년 안에 몇 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둔다.’, 또는 ‘3년 이상 1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그만둔다.’ 같은 기준을 미리 세우고 시험 준비에 진입하는 겁니다. 또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싸울 때 언성이 높아지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개인 신상이나 가족에 대한 것처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나를 속이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같은 기준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중단 기준을 세우지 않고 어떤 일이나 관계를 시작했다면, 지금 잠시 멈추고 현재 나의 상태를 돌아보며 기준을 점검하는 것,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기회비용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네, 오늘 말씀 나눠보니까 자신의 기준을 잘 세워서 멈춰야 할 때와 계속 나아가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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