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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일 중독' 원인·해결법과 자가진단

2023년 03월 21일 오전 09:00
■ 임지숙 /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앵커]
최근엔 삶의 질을 중시하면서 이른바 '워라밸'이 중요하게 떠올랐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일 중독'은 다른 중독과 달리 미화되기도 하는 단어죠. 오늘은 간단한 사례를 통해 '일 중독'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지숙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네, 오늘도 이야기 시작해볼까요?

[인터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는 40대 중반의 대기업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A입니다. 저는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저를 '일 중독자'라고 부릅니다.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주변에 소홀한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나만을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닌데 가족들조차 저를 비난하고 서운하다고만 하니 너무 섭섭하고 힘이 빠집니다. 그렇다고 맡은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너무 힘이 듭니다. 이런 사례입니다.

[앵커]
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 흔히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은 일에 몰두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자신의 헌신까지 매도당하는 것 같아서 힘들어하시는 같은데 그렇다면 이분을 일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우선 무엇보다 A 씨 입장에서는 '일 중독'이라고 매도당하는 기분이라 굉장히 억울하실 것 같아요. 조직을 위해 헌신하고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자신을 몰라주는 주변이 참 야속하고 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일 중독의 여부는 일에 쓰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다른 일상을 건강하게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과 더 중요한 것은 일을 멈추고 미루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즉 스스로 일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 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왜 나쁘냐고 반문하는 일 중독자분들도 계신데요. 엄밀히 말해 일이 지나치게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A 씨 스스로 자신에게서 한걸음 떨어져서 일을 하지 않을 때 불안하지 않은지, 일 외에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 있는지 등을 타인의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면서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오늘 주제를 보니까 혹시 저희도 일 중독인지 체크 해 볼 수 있는지 궁금한데요. 가능한가요?

[인터뷰]
네,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연구팀의 간단한 워커홀릭 진단테스트를 한번 같이 보시죠. 다음에 제시되는 7개의 문장 들을 보시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시면 1점, 드물게 그렇다고 생각되시면 2점, 때때로 해당한다면 3점, 자주일 때는 4점, 늘 그렇다면 5점의 점수를 주시면 됩니다. 문장을 보시면서 하나씩 체크를 해보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 일하는데 시간을 좀 더 많이 내려고 고민한다.

-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일하게 된다.

- 죄책감, 불안, 무기력, 우울증 같은 감정을 없애려고 일한다.

- 다른 사람들이 일을 좀 줄이라고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 일을 못 하게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 일을 하느라 취미, 여가활동, 운동은 뒤로 미룬다.

-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건강이 나빠진 경험이 있다.

4점 혹은 5점을 주신 문항이 7개 중 4개 이상에 해당하신다면 워커홀릭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일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분들도 막상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으시지 않을까 싶어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키워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일 중독'으로 정의되기도 했을 정도로 사실 척박한 환경과 상황을 딛고 빠른 경제성장을 해오면서 우리에게는 일 중독이 덕목이나 미덕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거든요.

[앵커]
저도 체크리스트를 들으면서 해봤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높게 나와서 저도 경계 수준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일 중독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할 수 있을 텐데 원인을 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우리가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나름의 서사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이유 들이 있기 때문에 A 씨 역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 중독 상태가 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일은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주된 수단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성취를 통해 만족감도 주고 경제적인 안정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보니, 여타 다른 중독과 달리 병리적 속성이 가려지면서 긍정적으로 포장될 여지도 크고, 일이라는 게 워낙 우리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삶의 큰 테마인 일과 관계를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관계는 양방향 소통이기 때문에 내가 에너지를 많이 쓰더라도 상대방에 따라 예외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태반인 반면, 일은 일방향적이라, 내가 input을 충분히 하면 100%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output이 보장된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결과치를 보여주는 속성이 있다 보니 일 중독 상태가 되면 될수록 관계보다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가치 있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가 쉽죠.

[앵커]
일 중독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그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보고 인지하는 것이 결국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사실 일에 몰입하는 것과 일에 중독되는 것은 어느 정도 연장선상에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극명한 차이는 몰입은 긍정적인 정서를 주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에 온전히 몰두한다는 느낌이 커서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특성인 반면에, 일 중독은 일과 관계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고 강박적으로 매몰 되어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느낌이 훨씬 큰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일 중독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탈진되는 '번아웃증후군'을 가속화 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일 중독'은 우리 삶에 어려움도 주지만 이득도 함께 주기 때문에, 일의 양을 갑자기 줄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의 균형과 풍요로움은 일만 완벽하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시는 건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작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면 무리가 오는 것처럼 관계적 측면에 안 쓰던 에너지를 갑자기 무리해서 쓰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앵커]
몰입과 중독의 차이를 명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실생활에서 해볼 수 있는 일 중독을 극복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인터뷰]
일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일 중독 상태에서 급격하게 시도하기에는 너무 도전적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일을 줄이는 것보다는 관계에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1일 1 안부 전화를 권하고 싶어요. 휴대전화에 저장되어있는 사람들의 목록을 쭉 훑어보면서 오늘 뭔가 한번 통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는 거죠. 대상은 가능한 내가 마음이 편하고 가까운 대상, 쉽게는 가족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연락을 하는 것도 좋지만,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나를 떠올려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호의와 고마움을 자연스레 느끼게 되거든요.

여전히 부담이 되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말씀을 드려보자면, 운전하고 가는데 학창시절 함께 살던 동네를 지나다가 생각나서 연락했다던가, 오늘 점심을 먹는데 예전에 같이 즐겨 먹었던 메뉴여서 그때 생각이 나서 전화해봤다 등의 관계를 연결해줄 수 있는 작은 추억들과 함께 연락하시면 오래간만에 연락하더라도 어색함이 한결 줄어드실 겁니다. 부담이 된다면 문자를 보내실 수도 있지만, 일방소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통화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앵커]
보면 일 중독이신 분들은 시선이 일이나 나를 향한 거 같은데 말씀하긴 거처럼 타인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인터뷰]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일 중독에 이르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쉽게 일을 조절하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작은 관계 맺음을 시도하면서 또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 중독자는 신체적 건강을 돌보는 것조차 미루고 일에 매진하게 되기 때문에 운동부족이나 수면부족, 불규칙한 식사습관으로 인한 대사증후군을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악화 되면 과로사까지도 이어질 수 있고요. 꼭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과 관련 없는 취미활동을 통해 정신적인 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이러한 작지만, 긍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일을 조절하고자 하는 동기 역시 스스로 가지도록 이끄는 것이 일 중독을 극복하는데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실, 일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몰라서 못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일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불안감과 공허를 어찌할 줄 몰라 다시 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처방안으로 관계와 나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위해 시간을 쓰는 연습을 먼저 하는 것이 안정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까 일을 조정한다고 노력하기보다는 인간관계나 건강 등 다른 부분에 관심을 늘려나가는 것이 현명한 해결책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신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A 씨와 같이 일 중독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가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A 씨처럼 40대가 넘어서서 기업의 중간관리자까지 되신 분들은 그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며 일해오신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관성처럼 계속 달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는 일단 멈춰 서서 좀 더 길게 미래를 바라보고 삶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작업을 꼭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가 그리는 삶이 계속 일만 하는 삶은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작은 부분부터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앵커]
네, 일은 우리 삶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삶 자체가 될 순 없으니까요. 한 번쯤은 내가 일 중독인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할 거 같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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