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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잊고 싶은 과거가 있으신가요? 흑역사 심리를 파헤쳐보자.

2023년 06월 13일 오전 09:00
■ 이혜진 / 상담심리사

[앵커]
누구나 살아오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데요. 그것을 신조어로 '흑역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흑역사는 회피하고 싶은 존재이더라도 그때 보다 성장한 '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흑역사의 심리에 대해 알아보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혜진 상담심리사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흑역사란 단어만 봐도 뭔가 뜨끔한 느낌이 드는데, 오늘은 흑역사를 바라보는 심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다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고, 계속 마음을 떠도는 과거의 나를 흑역사로도 표현하는데요. 특정 시점의 나를 떠올렸을 때, 혹은 갑작스럽게 어떤 사건이 불쑥 떠올랐을 때 혼란스럽거나 부끄러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린 흑역사를 그리 유쾌하게 느낄 순 없는 게 자연스럽고요.

최근 방송인 전현무도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더라고요. “제 인생의 흑은 KBS에 있을 때”라고 밝히면서 프리랜서인 지금은 방송을 즐기면서 하지만 KBS 아나운서로 재직했을 땐 성과를 내야 할 것 같아 쫓겼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쫓겼다”는 표현을 보니까 과거에 힘들었던 시절을 흑역사라고도 빗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흑역사는 어떻게 정의되고 있나요?

[인터뷰]
우선, 흑역사란 “흑”이라는 한자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검은, 어둠과 역사를 합쳐서 만들어낸 용어에요. 현재는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혹은 없던 일로 된 과거의 일”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없던 일로 된”이라는 표현에 특별히 눈이 가는데요.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없었던 일로 만들고자 “취소”하려는 심리가 포함되어 있는 용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취소”라는 방어기제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상쇄하려는 현상인데요. 그 사건을 떠올렸을 때 함께 따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줄이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미 발생한 사건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은 인간의 방어 행동인 것이지요. 실제로 흑역사를 지우고 싶은 심리는 연령과 상관없이 나타나고 있고요.

최근 정부에서는 디지털 흑역사를 지우기 위한 일환으로 만 24살 이하를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 서비스를' 올해 4월부터 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신이 만 18세 미만의 나이에 올렸던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 삭제나 가림(접근배제)을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요. 실제로 “나의 흑역사 지우개로 싹싹”이라는 카피로 홍보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앵커]
디지털 자료처럼 지울 수 있는 형태로 남아있다면 흑역사도 참 지우기 쉬울 텐데 기억이기 때문에 쉽게 지울 순 없는 거 잖아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진 “기억” 때문에 우리가 특정 흑역사를 삭제하길 원한다고 해도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찜찜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인터넷에 남아있는 그 시절의 나, 소환하기 싫어! 처럼 과거 온라인에 남긴 다이어리 글이나 사진부터 졸업사진 속 내 얼굴과 같이 어떠한 형태로 이 세상에 남아있어 누가 언제든 볼 수 있는 경우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떤 행동, 예를 들어 “술에 취해서 실수했던 나” “첫사랑 에게 고백했다 차였던 나” “돌이키기 싫은 어린 시절의 나” 등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흑역사로 불리고 합니다.

[앵커]
방금 화면에 나왔던 것처럼 눈물 셀카가 흑역사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그러고 보니 싸이월드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불 킥하는 추억이 되살아날까 두려워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인터뷰]
맞습니다. 대표적인 흑역사의 살아있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싸이월드는 2000년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 높은 대중적 이용도를 자랑했던 SNS였는데요. 당시 수많은 글과 사진들을 업로드 하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했던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이불킥'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곤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타인”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때 날 몰랐는데 지금은 나를 사람들이 그때의 나를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데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생길 수 있어요. 내가 그때의 나를 보는 것보다 어쩌면 더 신경 쓰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볼 점은 그때의 내가 현재의 나와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어떠세요?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까요?

[앵커]
이미지나 성격이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와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한데 예전의 나도 나잖아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때의 나도 나 긴한데 지금의 내가 봤을 때 별로 나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나는 달라졌어, 그때의 나는 뭔가 미숙하다’는 느낌 적인 느낌이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앵커]
그렇게 생각해보니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한데요, 그렇다면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한 단계가 있을까요?

[인터뷰]
우리가 흑역사를 떠올리면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느낌은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때의 내가, 내가 아닐 순 없는 거니까요. 결국, 과거의 나를 수용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자기수용의 영역입니다. 내가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받아들이는가? 그때의 나도 흑역사에 존재하는 나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되는 자기수용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앵커]
그렇다면 이게 핵심 질문이 될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하면 흑역사 속의 나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나요?

[인터뷰]
사실 흑역사 자체가 편안해져라, 한다고 갑자기 편안해질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때의 나를 내가 편안해 하지 않는다는 현재의 마음 상태에 집중해보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지만, 그 흑역사를 떠올렸을 때 불쾌감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부터 굉장히 고통스러운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혹시라도 과거의 특정 기억이 단순한 흑역사를 넘어서서, 일상의 고통으로 재현되고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통해 치유가 필요한 상태라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트라우마 사건처럼 무거운 상태가 아닌 흑역사라면 이런 마음가짐을 시도해보시면 좋겠어요.
- 나는 그것을 왜 잊고 싶은가?
- 그것이 왜 나의 흑역사인가?

이렇게요. 앞서 설명 드린 방송인 전현무씨는 자신의 성찰 경험을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자기 성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거죠. ‘과거에 너무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니 놓친 것들이 있었구나.’ 그래서 그때를 지금과는 다른 흑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렇듯 내가 그때의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보는 성찰의 시간은 그 때의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거죠.

- 그래서 그 사건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봤을 때 어떤 마음인가?
-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성장한 내가 그때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이런 것을 글이나 말로 꺼내보시는 겁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내가 대화할 수 있을 때 자기수용도 가능해지거든요.

[앵커]
마지막으로 흑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실까요?

[인터뷰]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나와 흑역사 시절의 나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나는 그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의 경험을 거쳐서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한걸음 씩 나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말을 건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과거의 나도 껴안을 수 있는, 자기수용이 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앵커]
과거의 흑역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장한 지금의 나에 집중하는 게 좋네요. 이혜진 상담심리사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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