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우리나라 지폐 천원 권 뒷면을 보면 전통적 화풍이 담긴 아름다운 풍경화를 볼 수 있는데요. 바로 겸재 정선의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천을 생동감 있고 독창적인 화법으로 그린 화가로 조선 후기 회화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겼죠.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겸재 정선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진경산수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지폐 천원 권에 그려진 풍경화가 바로 겸재 정선의 작품이었다고요.? 자세히 알려주시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바로 '계상정거도'라는 수묵화가 우리나라 지폐 천원 권 뒷면에 그려져 있는데요. 문화유산으로, 보물 585호로 등재되어있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는 지폐 앞면에 그려진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 서당에서 독서 중인 모습이 담겨 져 있습니다. 겸재 정선이 퇴계 이황 사후 177년이 지난 1746년에 도산 서당과 함께 주변의 풍경을 화폭에 담은 건데요.
자세히 보시면 서당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쪽으로는 웅장하게 산과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런 풍광을 '배산임수'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서당 건물 안에는 퇴계 이황이 앉아있는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작품명인 '계상정거도'는 냇가에 조용히 머무른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앵커]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였는데, 굉장히 멋진 작품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네요. 겸재 정선에 대해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조선 시대 회화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화가죠, 겸재 정선은 1676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스무 살의 나이로 도화서의 화원으로 들어가 관직 생활을 했고요. 이후 특유의 스타일로 우리나라 산수화를 그려내면서 명성을 쌓습니다.
당시에는 영조 시대였는데, 이후 정조시대 때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 문예 부흥기가 오는데요. 그 바탕에는 겸재정선이 있었습니다. 겸재 정선은 이때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확립시키면서 그야말로 ‘진경시대’를 앞장서는 독자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화폭에 담았고요, 수 백여 점이 넘는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앞서 도화서란 기관을 말씀해주셨는데, 여기가 어떤 곳인가요?
[인터뷰]
네, 당시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던 곳을 도화원 혹은 '도화서' 라고 했는데요. 예전에 드라마 이산이나 바람의 화원 등에서도 이 도화서가 등장하기도 했죠. 도화서에서 일하는 화가들을 ‘화원’이나 ‘화사’라고 불렀는데요. 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주로 궁중과 조정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들을 그림으로 기록하거나, ‘어진’이라고 하죠. 왕의 초상화 등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감상과 향유를 위한 산수화나 묵죽화 등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도화원이었지만 이후에 화원의 격을 낮춘다는 이유로 도화서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알려졌고요. 도화서를 거쳐 간 유명한 화가로는 겸재 정선 뿐만 아니라 안견과 김홍도, 신윤복 등이 있을 정도로 당대 뛰어난 화가들이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앵커]
또 앞서서 겸재 정선이 기존 산수화에서 벗어나서 진경산수화라는 장르는 개척했다 이렇게 말씀 드렸는데‘진경산수화’는 뭘까요?
[인터뷰]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성행한 화풍인데요. 겸재 정선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산수화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해석으로 진경산수화 화풍을 확립했는데요.
여기서 진경이란 실제의 경치를 뜻하는데요. 특히 어떤 상상 속의 풍경이나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리는 풍경화가 아니라 직접 그 장소, 풍경에 가서 답사하고 실제로 보고 느낀 것을 화폭에 담는 산수화가 진경산수화입니다.
조선 후기 화가인 조영석이 진경산수화에 대해서 "물체를 직접 마주하고 그 진(眞), 즉 진리를 그려야 살아있는 그림이 된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대상의 겉모습만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그 대상이나 풍경의 본질을 표현하는 게 바로 진경산수화라는 겁니다.
또 조영석은 겸재 정선에 대해 "날로 늘어나는 그림의 주문 때문에 이들로 하여금 대신 그리게 하기도 했고, 워낙 작품을 많이 남겨 그가 쓴 붓이 무덤을 이룬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이 정도로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습니다.
[앵커]
진경산수화가 당시 획기적인 화풍이었군요. 겸재 정선을 따르는 화가들이 많았겠네요.
[인터뷰]
네, '정선파'라고 해서 겸재 정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요. 정선의 새로운 화풍이 당시 조선의 화단을 크게 변화시킨 만큼 수많은 후배 화가들과 화원, 문인화가들이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선은 진경산수화 외에도 실존 인물이나 문학 작품 속 인물을 그리는 ‘고사인물도’나 시의 뜻이나 분위기를 주제로 그리는 ‘시의도’ 등도 굉장히 잘 그렸다고 알려졌는데요. 다양한 주제의 그림도 뛰어난 실력으로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정선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앵커]
감히 조선의 화풍이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 것 같은데, 겸재 정선의 대표작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네, 정선의 대표작 중에는 아무래도 ‘인왕제색도’가 가장 유명하죠.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1751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한여름에 비가 내린 후 인왕산의 모습을 담은 진경산수화 인데요. 수많은 진경산수화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명작입니다. 보통 옛날 우리나라의 그림을 보면 크기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작품의 경우 가로만 138.2cm, 세로 79.2cm로 꽤 큰 사이즈의 작품입니다. 정선이 소나기가 지나간 후 인왕산을 봤더니, 아득하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산의 아랫부분이 몽환적으로 표현된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인왕산의 검고 웅장한 바위들도 보이실 텐데요. 이런 무게감을 정선 특유의 대담한 필치로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인왕산의 봉우리는 평소에는 흰색인데, 정선은 검게 채색했거든요. 그 이유가 비가 온 후에는 젖어서 검게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당시가 영조 시대 때인데요.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산수화가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 진경산수화는 직접 답사를 가서 보고 그린만큼 더욱 생동감 있고, 특히 우리나라의 풍경이 유독 잘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앵커]
조선 후기 미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인왕제색도에 정선의 우정과 추억이 담겨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사천 이병연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요. 정선과는 평생을 절친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특히 이병연은 중국의 그림들을 수집하던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정선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봤다고 하고요. 작업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한 예로, 이병연이 시를 참 잘 썼는데 어떤 지역에 여행을 가서 느낀 점을 시로 써서 정선에게 보내면 정선이 그걸 보고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선의 작품 중 '경교명승첩'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사천 이병연이 정선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기도 했고, 판매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였다고 하는데요.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1751년에 이병연이 숨을 거두게 되거든요. '승정원일기' 기록에 의하면 이병연이 죽기 사흘 전까지 장마였다고 합니다.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릴 때가 이병연이 숨을 거둘 즈음이었다고 하는데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정선은 이병연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희망을 가지고 비가 내린 뒤 해가 내리쬐길 기다리는 찰나를 담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앵커]
이런 이야기 물론 정선의 원화까지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겸재 정선 미술관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 해있는데요.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 다양한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선의 원화도 볼 수 있는 공간이고요. 미술관 주변에는 허준 박물관과 양천향교 등 역사적인 문화 자원들이 모여있는 곳이니 한 번쯤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천원 지폐를 볼 때마다 오늘 설명해주신 내용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미술관도 한번 가봐야겠네요. 사이언스 인 아트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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