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도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도덕, 윤리 교과목을 떠올리시거나 당위적이고 고루한, 혹은 맞는 말이지만 실제 세상살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그러나 실제로는 도덕성이 우리 삶에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고 미래 사회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질 거라고 하는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도덕'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르게 살아야 한다만 떠오르는데 미래 사회에서 더 중요해지는 개념이라고 말씀해주실 텐데요. 착하게 살라는 내용만은 아닐 것 같은데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이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도덕성'의 중요함이 새롭게 대두 되고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인 생명의 미래 연구소는 지난 4월 인공지능 개발의 일시적 동결을 촉구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동성명에는 오픈 AI 공동설립 당사자인 일론 머스크도 함께 하였고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포함해 1,300여 명의 기업경영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AI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죠. 놀랄만한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 챗 GPT를 통해 쉽게 다양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위의 성명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도덕적인 판단이 배제된 기계가 정보를 남발할 때 얼마나 위협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예를 들면 챗 GPT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정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각종 피싱범죄에 충분히 악용될 수 있는 여지도 더 클 수 있다는 거죠. 즉,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결여 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입니다.
[앵커]
정말 이런 산업들이 발전하면서 도덕성에 대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도덕성이라는 게 정말 교과서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장 현실적인 우리 삶에 닥친 문제들이네요.
[인터뷰]
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볼까요?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용화가 머지않은 이야기라는 뉴스, 아마 자주 접해보셨을 텐데요. 실제로 기술적으로는 자율주행은 이미 충분히 가능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도덕적 딜레마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때 급브레이크를 밟아 보행자를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운전자를 먼저 보호할 것인가는 기계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들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 행동의 준칙이나 규범에 대한 다양한 소통과 논의가 선행되어야만 발전된 기술을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인류를 위협하는 환경오염에 대항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 공정한 무역을 통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같이 현재 우리 일상의 다양한 주제들도 역시 도덕성과 깊은 연관을 가집니다.
[앵커]
정의라는 것은 사회적 풀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성의 정답과 실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설명해주실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인지적으로 아는 것과 양심이나 공감, 이타성에 기반한 정서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결국 도덕성은 행동을 통해서 나타나는데요. 그래서 이러한 행동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들을 통해 도덕성에 대해 더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도덕성과 관련한 오래된 논쟁 중 하나가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혹시 착한 세모 실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앵커]
글쎄요, 착한 실험이요?
[인터뷰]
생후 12개월 된 아기들에게 화면으로 동그라미가 언덕을 오르려고 할 때 세모가 동그라미를 도와 밀어 올려주는 장면을 보여주고 반대로 네모는 동그라미가 언덕을 오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때 아이들의 안구운동을 측정해보면 세모가 동그라미를 돕는 장면을 더 오래 보고 실제로 영상에 등장한 것과 동일한 모양의 도형을 주었을 때, 네모가 아닌 세모를 선택해서 집습니다.
반대로 네모를 돕는 역할로 바꾸면 네모를 더 오래 쳐다보고 네모 도형을 집었고요. 이 실험은 Premack 과 Premack의 1997년 실험 연구를 통해 시작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주며 연구가 되었는데요. 심지어 6개월 된 영아들도 착한 세모를 구별해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은 이러한 선함과 도덕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입니다.
[앵커]
6개월 된 아기들도 착한 행동을 알아보고 더 좋아한다니 놀랍고 신기하네요. 요즘 굉장히 힘든 범죄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 보면 과연 성선설이 사실일까?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인터뷰]
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이와 관련하여 2013년에 발표된 Armin Falk 교수 연구팀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는데요. 이 연구 역시 행동에 중점을 둔 실험입니다. 연구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지만 건강한 실험용 쥐를 살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참여자들에게 2가지 선택권을 줍니다. 첫 번째는 10유로를 받고 살 처분을 하는 것이고 2번째 선택지는 10유로를 받지 않고 기부해서 실험용 쥐를 계속 사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험 결과 54%는 1번, 46%는 2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기부를 통해 쥐를 살린 거죠. 그런데 실험 조건을 바꿔서 양자 간 혹은 다자간에 매수와 매도를 통해 쥐의 생명을 거래하는 방식을 취하자 10유로에 쥐를 팔겠다는 결정이 75%로 증가합니다. 심지어 여러 명이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는 쥐의 생명 가격이 급락했어요.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거래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면서 죄책감도 여럿으로 분할된다고 해석했고 주변 사람들이 쥐의 살 처분을 선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덕성이 급속히 무너져내리기 쉽다고 보았습니다. 즉 돈이나 물질,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참여한다는 조건에서 인간은 훨씬 더 쉽게 도덕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오징어 게임에서도 돈과 다자간의 경쟁과 거래가 사람을 얼마나 비윤리적인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지가 잘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앵커]
저는 '악의 편법성'이라는 개념이 생각나기도 한데, 이렇게 여러 명이 책임을 나눠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도덕성이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단 부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근데 머릿속에서는 도덕적인 것이 올바를 수는 있지만, 도덕적인 선택을 한다고, 보면 손해 볼 수 있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선택이 맞는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실제 도덕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회적 통념은 사실 거의 착각에 가까운 잘못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최근 연구들은 도덕적 성향이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를 평가하는데, 유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도덕 정체성이 강할수록 추후 삶의 의미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학교 곽금주 교수가 초등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도덕지수를 측정하고 도덕성이 높은 아이와 평균적인 아이를 각각 6명씩 뽑아 실시했던 실험연구가 있었는데요. 몰래카메라만 작동하는 상태에서 눈을 가리고 표적을 맞히거나 협동해서 작은 탁구공을 바구니에 넣는 게임을 실시하였고 성공한 만큼 선물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결과는 규칙을 지킨 아이들이 좋지 못했지만, 실험 결과는 놀랍게도 정직하게 응했던 아이들이 집중력과 또래 관계, 심지어 "내 삶은 정말 좋다. 나는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 삶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도덕성이 높은 아이들이 또래 관계도 좋고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도덕성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증명이 된 거네요!
[인터뷰]
네. 2021년 구인 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1022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자의 거짓말 현황’을 조사했던 결과가 있는데요. 코로나 19 여파로 취업이 더 어려워지면서 기업 10곳 중 4곳에서 지원자의 거짓말이 늘었다는 씁쓸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거짓말한 지원자에 대해 49.2%가 과도한 경우 불이익을 준다고 했고 무조건 감점이나 무조건 탈락시킨다는 응답도 각각 23.2%, 22.3%에 달했어요. 결국, 취업하고 싶어서 잘 보이려고 한 거짓말이 오히려 더 악수를 두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거짓말을 통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때문에, 기업들도 상품성과는 별개로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윤리경영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어필 하려고 하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직자들에게는 특히 도덕성과 관련한 검증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위로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좋은 성과, 의미 있는 삶, 행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도 중요하게 갖춰야 할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앵커]
정말 의미 있는 삶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내 자신이 나를 바라 보는 시선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과 마음가짐이 필요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임지숙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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