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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무의식중에 익숙한 끌림'…숨겨진 심리학적 요소 알기

2023년 08월 08일 오전 09:00
■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배우자나 연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좋은 덕목을 갖췄는지 보는 것 보다, 무의식중에 익숙한 '끌림'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숨겨진 심리학적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 에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가족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려는 '귀향 증후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임지숙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리가 연인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성, 덕목 같은 게 머릿속으로는 있는데 실제 만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인 것 같은데요. 왜 이런 괴리가 나타나는 건지 심리학적으로 설명을 해주실까요?

[인터뷰]
여러분은 연인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시나요? 각자 깊이 있는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뢰나 열정, 진솔함이나 책임감 같은 다양한 연인관계 혹은 배우자 선택의 덕목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이고 실제 생활에서는 ‘직관적으로 끌리는 대상’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연인관계에서는 이러한 직관적인 끌림이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때로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끌릴 때 그것이 마치 더 진정한 사랑의 감정인 것처럼 느껴져 감정이 더욱 증폭되고 그 관계에 더욱 몰입하게 되기도 합니다.

[앵커]
결국 '끌림'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의 속성은 무엇인가요?

[인터뷰]
오늘은 ‘귀향’이라는 패턴을 통해 끌림을 설명해보려고 해요. 얼핏 귀향이라는 단어에 귀를 의심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귀향은 본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잖아요. 자, 그렇다면 우리에게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가 자라난 가정입니다. 태어나자마자, 혹은 그 이전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가장 익숙하게 인간관계를 체험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아주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어 성장하면서 맺어나가는 인간관계의 기본 틀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충분하고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면 이것이 인간관계의 좋은 원형이 되어 별다른 도전 없이 따뜻한 연인관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좀 복잡해집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괴로운 소식이지만 뉴스를 보면 가정 학대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 소식을 접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 아이들이 부모에게 저항하고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실수해서 그런 거야.' '내가 말을 잘 안 들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원인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귀향이라는 개념이 가정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성질이라는 말씀이신데 안타깝고 한편으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것에 연인관계의 끌림으로 이어진다는 건 어떤 원리일까요?

[인터뷰]
네. 어린 시절 부모는 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절대적이고 중요한 대상인 부모가 나를 보며 웃어주고, 감탄해주고, 얼러주고, 사랑을 주면 나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죠.

반대로 어린 시절 너무나 크고 중요한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비난당했던 사람은 그런 대접이 합당한 존재로 스스로의 모습을 저장해버리게 됩니다. 또한, 부모처럼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좋지 않더라도 익숙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을 가깝고 중요한 사람으로 곁에 두기도 쉽죠.

특히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폭력적이어도, 자주 싸워도, 나를 잘 돌봐주지 않아도 그것을 어떻게든 나름으로 소화하면서 적응하려고 합니다. 말도 안 되지만, '나를 사랑해서, 나를 올바르게 키우려고 때리는 거야' '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야.' '내가 잘못해서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 거야' 이렇게 나를 탓하면서 부모는 나를 사랑하고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연인관계, 배우자 관계가 깊어지면 우리는 서로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좀처럼 잘 드러내지 않는 미숙한 모습이나 상처받았던 어린아이의 모습도 드러내게 되는데요. 이때가 되면 뭔지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에 상대방을 선택했던 것이 익숙하지만 사실 나를 힘들게 하고 두렵게 했던 부모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착취적인 연애, 나를 옭아매는 연애를 반복하는 것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익숙한 경험이 끌림의 원천이 되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어린 시절의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패턴을 반복하는 '귀향 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앵커]
어린 시절 경험이 좋았던 분들은 좋은 증후군이 될 수 있지만 그게 아닌 분들한테는 굉장히 안타까운 증후군이 아닐까 싶은데요. 귀향 증후군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어요.

[인터뷰]
증후군, 신드롬이라는 표현은 어떠한 병이라는 표현으로 병명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공통된 병적 징후들이 나타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만성피로증후군이나 '피터팬신드롬' 같은 것들이 익숙한 예죠. 그렇기에 지금 설명을 들으시면서 오히려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 나는 나의 부모와는 다른 연인관계, 다른 배우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고리를 끊고자 의식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노력하셨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불행을 반복 경험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귀향 증후군에 대해 공감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이 들고요.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속성을 조금 더 살펴보면요. 귀향 증후군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정적이고 불행했던 부모 혹은 나를 돌봐준 주 양육자와의 경험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입니다.

즉, 그때는 어려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해결할 수 없어서 그저 당하기만 했던 폭력, 방임, 정서적·신체적 학대나 또 그만큼 강력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느꼈던 무의식에 새겨진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두었는데 이것을 연인관계, 결혼관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보면 어린 시절에 가정폭력을 당했는데 나중에 또 폭력적인 남편을 만난다든지 하는 사례들을 저희가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귀향 증후군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거였네요.

[인터뷰]
네. 폭력적인 아버지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막상 데이트 폭력에 반복적으로 시달리거나 폭력적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익숙함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거죠! 끌리고 매력적이라고 느껴서 사귀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끌림의 기저에 나에게 익숙하지만, 불행했던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고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경험을 반복해서 재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한 재현만이 아니라 어릴 때 힘들었던 부모와의 관계를 연인,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는 건강하게 해결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 있을 수 있어요. 다만, 귀향 증후군은 나도 모르게 끌린다고 생각하고 선택한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불행한 관계에 나도 모르게 다시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앵커]
그럼 이런 귀향 증후군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무의식적인 부분을 의식적인 부분으로 끌어올려 살펴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노력해서 주의 길게 살펴본다면 또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설명하는데요. 힘들었던 감정을 떠올리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성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수동적이고 미약한 어린 시절의 나, 당해야만 하는 나가 더는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가정을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고 상처를 받았는지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이라는 서랍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깊숙이 뭉뚱그려 넣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꺼내어 차곡차곡 정리해서 다시 넣어주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버릴 것들은 버리고, 아무렇게나 구겨진 것들은 정리해서 잘 넣어두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작업이 선행될 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강한 연인관계, 배우자와의 관계도 가능해지게 됩니다.

[앵커]
일종의 자기객관하다 이렇게 보면 좋을 거 같은데요. 어린 시절을 객관적으로 보는 작업을 통해서 이런 증후군을 많이 개선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이론적 접근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정서 프로그램은 출생에서 5세까지 50%, 5~8세에 30%가 더 형성되고 18세까지 15%가 구성되어 성인이 되기 이전에 95%가 형성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인기에는 5% 정도만 정서적인 부분이 채워지는 거예요.

8살까지 정서 프로그램의 80%가 완성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영향력이 그만큼 큰 것이죠. 인간관계 전문가인 바버라 드 안젤리스는 이러한 정서 프로그램의 강력한 영향력을 인지하고 당신이 원하는 대상에 대한 '정서적 구인광고'를 작성해보라고 말합니다.

즉, 내가 원하는 파트너에 대한 정서적 구인광고 작업을 통해 의식적으로 나에게 필요하고 보다, 건강한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 싫어도 고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고향을 가지 않는 선택은 할 수 있는 것처럼, 내게 상처와 힘듦을 준 부모더라도 그 부모를 바꿀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그 부모가 내 삶에 영향력을 휘두르도록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앵커]
오늘 이야기 나눠보니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싶었는데요. 혹시 그 기억이 좋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는 거니까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임지숙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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