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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한국 여성 최초' 타이틀의 두 작가…나혜석·이성자

2023년 08월 25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예술의 세계와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사이언스 in Art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두 인물에 대해 얘기해볼 텐데요, 바로 나혜석과 이성자 작가입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입지를 굳힌 두 작가의 대표작과 인간 나혜석의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 화가를 소개해주신다고요.

[인터뷰]
네, 바로 우리나라 미술계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 또 여권론 운동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작가, 나혜석입니다. 나혜석은 비교적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는데요, 일본에서 유학하던 오빠의 영향을 받아 도쿄의 사립여자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여자유학생이 주를 이루던 '여자계'라는 기관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옛날에는 당연시했던 어린 나이에 딸을 결혼시키던 풍토에 맞서기도 하는데요. 이런 결혼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 '경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나혜석은 보수적인 시절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여성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건데요.

1919년에는 3.1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합니다. 나혜석은 이후 재능을 살려 1921년에 전시를 하는 등 본격적으로 활동하는데요. 조선 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입선하는 등 입지를 쌓고요, 또 자신의 철학과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담은 글도 꾸준히 쓰게 됩니다.

예술적 재능을 활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활발히 표현하던 나혜석은 1926년,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특선 상을 받기도 하는데요. 여류 화가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향해 공부 하다가 뉴욕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을 횡단하며 특유의 화풍을 확립해갔습니다.

[앵커]
정말 멋진 재능과 시대를 앞서 나가는 작가가 아니였나 싶은데요. 어떤 작품을 그렸을까요?

[인터뷰]
네, 나혜석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실제 나혜석의 사진도 같이 가져왔는데요. '자화상'에서 보이는 모습은 나혜석의 실제 모습과 좀 차이가 있죠? 화풍도 그렇고, 생김새도 비교적 서구적으로 표현됐는데요. 때문에, 이 작품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게 맞다, 아니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나혜석이 프랑스 파리에서 일정 기간 공부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당시에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졌고요. 그때 파리에는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거장들이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특히 앙리 마티스가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는데, 나혜석이 이 야수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로제 비시에르라는 야수파 화가에게 배우기도 하면서 화풍을 전개해나갔는데요.

이 '자화상' 작품에 드러나는 거침없고 강렬한 화풍에서 야수파의 특징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옷차림과 배경,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진지함과 고독함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나혜석의 심리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앵커]
네, 그러니깐 실제 모습과는 다른 자화상이네요. 보여주고자 하는 또 다른 모습을 담은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작품을 그렸나요?

[인터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의 작품인데요. '무희(캉캉)'이라는 작품입니다. 1940년에 그려졌고요. 이 작품 역시 한국적인 느낌보다는 인물의 신체 비율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서구적인 분위기가 나는데요. 당시에 한국으로 들어오던 서양 문물이 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피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함을 보여주는데요. 전체적인 색감이 갈색 톤으로 차분한 느낌입니다. 나혜석은 당시 여성을 억압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난 신여성이었기 때문에, 작품에서도 그런 성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앵커]
네, 마치 영화 속 주인공 같다, 자기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로서가 아닌 인간 나혜석의 삶은 어땠을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서 여러 방면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부딪히며 살았기 때문에 단조로운 삶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나혜석의 작업 세계를 차치하고 봤을 때, 인생에서 몇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연애결혼과 불륜, 이혼 같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많이 이야기되는 주제들입니다.

나혜석은 김우영이라는 변호사와 1920년에 연애 후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할 때 몇 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첫 번째는 남편인 김우영이 전처와 낳았던 아이 그리고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 또 하나는 그림 그리는 걸 방해하지 말아라 등의 조건이었습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같지만, 이때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결혼을 하고,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며 워킹맘으로 꾸준히 활동했거든요. 그때 워킹맘으로서의 고단한 일상을 가감 없이 담은 판화 작품도 있습니다. 가사 노동을 하고, 밤에 일을 하는 모습인데요. 저도 워킹맘으로서 지금 봐도 공감 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당시 주변에서 크게 비난받으며 명예가 추락하게 됩니다. 나혜석과 김우영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잠시 남편과 따로 떨어지게 되는데, 그때 최린이라는 지인과 나혜석이 불륜 관계가 되고요. 이게 국내에 알려지면서 미술계와 언론이 등을 돌리게 되거든요. 나혜석은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이혼고백서'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자식들까지 모두 등을 돌리게 되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되고요, 결국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앵커]
삶 자체는 화려했는데 만루가 좀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추상화가를 소개해주신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크게 인정받았는데요. 1991년과 2002년, 프랑스 정부 문화 예술공로훈장을 받았고요, 2009년에는 한불문화상과 우리나라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성자인데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추상 화가로서 국내외에서 크게 활약한 작가입니다.

이성자는 1953년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는데요. 추상회화에 관심이 많아 당시 파리에 있던 김환기 화백과 더불어 이응노, 남관, 권옥연 등 지금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언급되는 작가들과 교류했습니다. 프랑스의 오베르뉴와 파리 등에서 개인전을, 이후 한국에서도 전시를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했고요.

특히 1975년에는 김환기, 이응노 등과 함께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꾸준히 한국을 오갔는데, 초기에는 추상과 구상을 병행하다가 60년대 이후 이성자 화백의 시그니처인 음과 양, 기하학, 우주적인 상징 등을 화폭에 담으면서 작업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엄청난 수상 경력을 가진 거장이네요. 작업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나요?

[인터뷰]
네, 이성자 화백은 살아생전에 약 4,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굉장히 다작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개인전만 80여 회, 그룹전은 300회가 넘게 가졌다고 하죠. 그동안 이성자 화백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초기에는 파리에서 영향을 받아서 작품에 선이 거칠고 강렬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추상뿐만 아니라 구상도 연구를 많이 했고요. 50년대 말부터는 색채가 다채로워지는데요,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주로 화폭에 담으면서 판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동양의 음과 양 사상과 빛에 주목하면서 자연을 탐구하고,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이 음양 사상과 시간, 우주 공간 같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공간을 넘어 초월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생명과 죽음, 동양과 서양 같은 완전히 다른 요소를 재결합해서 추상적으로 나타냅니다.

[앵커]
초월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냈다고 하니깐 상상이 안 가고 궁금하거든요. 대표작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작품 두 점인데요. '혜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과 '직녀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입니다. 각각 1998년, 2000년에 그려진 작품인데요. 이성자는 남프랑스 투레트라는 지역에 '은하수'라는 이름을 가진 작업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곳에서 본 밤하늘을 화폭에 담았는데요.

이 두 작품에서는 우주가 묘사됐는데, 아득하고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굉장히 화사하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그려졌습니다. 은하수와 행성 같은 요소들이 추상적으로 나타나면서 또 동서양의 요소가 적절히 드러나거든요. 리듬감이 느껴지고 다채로우면서도, 아주 심플하고 정제된 느낌이 우주인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보다 여성이 꿈을 펼치기 더 어려웠던 시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안에서 꽃 핀 두 작가의 그림이라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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