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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동화 속을 엿보는 듯한 '앙리 루소'의 작품세계

2023년 09월 15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평일에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말에만 그림을 그려 '일요화가'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앙리 루소인데요. 루소는 원시적 화풍과 늦깎이 작가 생활로 당시 비평가들의 비웃음 대상이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해 결국 빛을 보았습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마치 동화 속을 엿보는 듯한 앙리 루소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앙리 루소는 지금은 아주 유명한 작가인데, 예전에는 그렇게 비아냥을 많이 받았다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오늘은 앙리 루소에 대해 다룰 텐데요. 루소의 작품을 보시면 굉장히 원시적인 화풍이 특징으로, 주로 정글이나 이국적인 자연을 소재로 작업했습니다. 루소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새로운 미술 사조가 활발하게 생겨나던 시기였지만, 루소는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깊이 몰두했습니다.

독학했기 때문에 기존의 미술 기법에는 익숙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자신의 작업에 대해 스스로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더욱 특유의 스타일을 이어나갔고요. 당시 비평가들은 루소의 작품을 비웃거나, '일요화가'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일요화가'란, 평일에는 본업을 하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작가다"라는 말로 쓰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전업 작가 외에도 본업과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들이 많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단어입니다.

[앵커]
요즘은 갓 생 산다,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옛날에는 비평의 대상이었군요. 앙리 루소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한데요. 소개 좀 해주시죠.

[인터뷰]
앙리 루소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인데요. 앞서 '일요화가'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고 했는데, 사실 어느 정도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루소는 일찍부터 작가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니라, 세관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때문에, 평생을 '르 두아니에' 즉, 세관원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기도 했는데요. 마흔 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마흔한 살이 되던 해에, 첫 작업실을 마련하는데요. 이때부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고 특히 루소는 독립 미술가 전시인 앙데 팡당 등에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확립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또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듣다가 결국에는 루소만의 스타일이 당시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브라크 같은 거장들에게 인정받기도 하거든요. 혹평하던 비평가들과 대중들에게도 마침내 찬사를 받게 됩니다.

[앵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루소는 정글이나, 이국적인 자연을 주로 그렸다고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루소는 미술을 독학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보다 나은 스승이나 교육은 없다." 자연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작업으로 전개해 나아갔는데요. 루소의 많은 대표작이 있지만, 특히 정글을 그린 작품들이 유명하거든요. 1904년부터 1910년 사이에 정글 소재를 가장 많이 그렸고, 이때 약 20여 점을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루소는 태어나 한 번도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다고 알려졌는데요. 즉 정글과 이국적인 자연 소재의 작품들은 모두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루소는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파리의 식물원이나 자연사 박물관, 동물원 등에 수없이 찾아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자연의 디테일을 착안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서 작품들을 창조해냅니다. 또 인쇄물이나 사진집 등 시각 자료 등도 열심히 연구하면서 작업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늦게 작가의 길을 걸었지만, 생전에 인정받을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지금 나가고 있는 그림들이 다 상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놀라운데요. 정글을 소재로 그린 작품 중에 한 작품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1905년 10월에 파리 그랑팔레의 '살롱 도톤'이라는 전시에 출품됐던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루소의 정글 작품 중에서 가장 사이즈가 큰 작품으로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대작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라는 작품인데요. 루소가 자연을 묘사한 작품들이 상상을 기반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고 보니까, 우거진 수풀이나 나뭇잎 배경이 마치 조각조각 붙인 것처럼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죠?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요. 이 작품의 부제가 있는데요. '굶주린 사자는 영양을 덮쳐 갈기갈기 찢는다. 퓨마는 자신의 몫을 차지할 때를 기다리며 숨죽인다. 맹금은 입에 문 가엾은 동물에게서 뜯은 살점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다. 해가 진다.' 이런 굉장히 긴 부제입니다만, 작품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앵커]
부제라기보단 거의 설명문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 적혀져 있는데요. 이 작품으로 인해서 루소가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고요?

[인터뷰]
맞습니다. 지금 이 작품을 보시면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있는데요. 그게 루소의 정글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 중에 하나, 입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포착된 화면이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사실 작품에 등장하는 퓨마는 정글에서는 살지 않는 동물이죠. 하지만 루소가 굳이 작품에 그려 넣으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냈거든요.

특히 앙브루아즈 볼라르라는 20세기 초 프랑스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트 딜러가 있는데요. 볼라르는 훗날 거장이 된 예술가들의 무명 시절에 많은 지원을 했던 인물로, 세잔과 르누아르, 고갱과 피카소 등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높은 안목을 가졌던 볼라르가 이 루소의 작품을 보고 1906년에 200프랑을 주고 구매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살롱 도톤 전시에서 앙리 마티스와 라울 뒤피, 조르주 브라크 등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고요. 당시 유명 잡지에도 이 작품 사진이 실리면서 매체에 첫 등장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지금 저희가 앙리 루소가 정글을 소재로 한 그림을 보고 있었는데요. 정글이 아니라 사막을 배경으로 한 그림도 있다고요?

[인터뷰]
네, 바로 '잠자는 집시'라는 작품으로 1897년에 그려졌습니다. 작품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막의 밤을 배경으로 달빛 아래 잠들어있는 한 여인과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요. 루소는 이 작품에 대해, "방황하는 만돌린 연주자 네그레스라는 여인이 사막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고, 사자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녀를 발견했지만 잡아먹지 않았다."라고 해석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 은은하게 반짝이는 별빛이 굉장히 아득한 느낌인데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 여인과 사자 둘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전혀 위화감이나 무서운 분위기가 아니라, 뭔가 낭만적이고 동화 같은 감정이 드는 작품입니다. 집시 여인이 입고 있는 무지갯빛의 의상과 물결치는 헤어스타일이 아득하고 어두운 색감의 뒷 배경과 대비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앵커]
뭔가 익숙한 동물과 사람이 나오긴 하는데, 마치 꿈속에서 보는듯한 그런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 재밌는 일화가 있다면서요?

[인터뷰]
네, 웃지 못할 일화인데요. 앙리 루소는 작가 인생 동안 자신이 무척 위대한 예술가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비평가들에게 조롱을 받을 때조차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루소는 이 작품을 자신의 고향의 시장인 '라발'에게 판매하려고 했는데요. 그때 라발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가 내 고향에 대한 헌사로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구매해줬으면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발은 구매하지 않았고요. 지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자존감이 굉장히 높다고 하셨는데, 그게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 지금 위상을 보면 굉장히 이유 있는 자존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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