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사이언스 in Art] 겹겹이 쌓인 '색면의 조화'…에텔 아드난의 작품세계

2023년 09월 22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100년에 가까운 일생 동안 철학과 문학 그리고 작가의 삶을 거쳐 간 '에텔 아드난'은 중동 레바논 출생의 예술가인데요. 일찍부터 고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자연을 소재로 그렸는데 겹겹이 쌓인 '색 면의 조화가' 매력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에텔 아드난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철학과 미술, 문학을 넘나든 예술가 에텔 아드난을 소개해주신다고요.

[인터뷰]
에텔 아드난은 레바논 출신의 예술가인데요. '레바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초부터 지난 2021년,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올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세계적인 작가인데요.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잘 써서, 시나 소설, 희곡 등 문학계에서도 유명한 '현대 아랍계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에텔 아드난은 한 곳에 머물며 작업하기보다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또 활동했는데요. 1950년에 파리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55년, 미국으로 이주해서 UC 버클리와 하버드 등에서 공부했고요. 캘리포니아 도미니칸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문학으로 하던 이야기를, 회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요. 자연을 주 소재로 삼으며 페인팅과 판화뿐만 아니라 태피스트리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작품을 전개했습니다.

[앵커]
에텔 아드난이 미술이 아니라 철학과 문학을 먼저 시작했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러면 어떤 계기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요?

[인터뷰]
에텔 아드난은 평생 전 세계 곳곳을 오가며, 시인이나 언론인, 철학자, 화가 등 다양한 직업으로 살았는데요. 1954년부터 1962년 사이 발발했던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있었던 전쟁 이후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아드난은 '나는 더이상 프랑스어로 글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프랑스로부터 등을 돌리는데요. 강대국의 언어로는 작업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겁니다. 그렇게 1960년대부터 2021년까지 회화와 드로잉, 태피스트리, 도자 등 약 60년에 걸쳐 수많은 매체를 활용해 활발하게 작업하고요. 세계적인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로부터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문학과 미술에 통달하는 작가 인만큼 이 둘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에텔 아드난은 일본의 '레포렐로' 형식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데요. 레포렐로란 접혀있는 종이를 뜻하거든요. 우리가 흔히 보는 아코디언 형식이라고 하죠, 병풍처럼 지그재그로 접힌 종이 리플렛이나 홍보물 같은 것들이 레포렐로에 포함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드난은 이 레포렐로에 대해서 '그림을 확장 시킬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일본에서 수입해온 레포렐로 형식의 접이식 종이에 파노라마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잉크만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양한 색상을 활용해 매혹적인 그림을 채웠고요. 주변의 친숙한 물건들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네. 그런데 주로 자연을 소재로 삼았다고요?

[인터뷰]
에텔 아드난은 주로 바다나 하늘, 산 등 자연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는데요. 특히 작가 본인의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많이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드난은 평소 빛이나 계절,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으로부터 늘 놀라움과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내가 그린 그림은 풍경을 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담겨있기도 하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특정한 어떤 풍경만을 담는 것이 아니고,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때문에 에텔 아드난의 작품을 보면 형태가 추상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굉장히 시적이다, 문학적이다, 라는 느낌이 듭니다.

[앵커]
그렇다면 에텔 아드난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한 점 소개해주실까요?

[인터뷰]
산이나 하늘, 나무 등 다양한 풍경의 자연을 소재로 다루는데요. 아드난이 사막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작품명은 '애리조나'인데요. 작품명과 색감에서 사막을 주제로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황토색으로 표현한 사막과 더불어 그 위에 층층이 쌓인 색 면의 조합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인데요. 에텔 아드난이 북부 캘리포니아에 거주할 당시에 미국의 서해안을 여행하면서 영감 받아 그린 작품으로, 초기작에 속합니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색상들은 다양한 시간대의 사막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정오 시간대의 푸른색과 녹색, 노을이 질 때의 분홍색과 남색 빛의 저녁 시간대까지 하루 동안 사막의 여러 얼굴을 시각적으로 나타냅니다. 에텔 아드난은 자신의 장편 에세이에서 '색상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표시다. 나는 색을 보기 때문에 존재한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야기만 계속 들어도 에텔 아드난이 색감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요, 생전에 빈센트 반 고흐를 존경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에텔 아드난의 작품들을 보시면 고흐의 작품과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밝고 강렬한 색감의 사용과 나무, 태양, 풍경 등의 자연을 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또, 고흐의 작품도 아드난의 작품처럼 하나의 시 같은 느낌이 있고요. 고흐가 평생 자신의 동생인 테오에게 손편지를 통해 글을 썼는데, 아드난 또한 글로써 자신을 표현했다는 점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앵커]
그런데 에텔 아드난이 주로 자연을 그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작업 방식이 어땠나요?

[인터뷰]
에텔 아드난은 주로 캔버스 위에 페인트로 작업했는데요. 작품에서 주로 보이는 에텔 아드난 특유의 색 면 구성은 멀리서 보면 플랫하게 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텍스쳐가 눈에 잘 보이거든요. 마치 쫀쫀한 크림을 발라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작업할 때 나이프를 사용해서 캔버스 표면에 페인트를 납작하게 눌러 바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물감을 사용할 때, 팔레트에 짜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캔버스 위에 튜브를 짜서 나이프로 도포를 한다고 하고요. 캔버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작업하는 에텔 아드난은 재료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재료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작업에 공동 저자가 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다고 하는데, 그중 태피스트리라는 매체도 잘 활용했다고요?

[인터뷰]
네, 에텔 아드난은 태피스트리를 소재로도 많이 작업했는데요. 아드난의 출생지인 레바논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드난이 어린 시절, 페르시아 카펫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아랍의 공예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아드난에게 카펫은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예술이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태피스트리에 자신의 작업을 접목 시키는데요. 여기서 태피스트리는, 직기를 이용해 실을 엮어 만든 직물 공예품입니다.

에텔 아드난은 어릴 때부터 카펫을 접해왔기 때문에 벽에 거는 태피스트리 작업도 자주 했는데요. 특히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베이루트에 미술관이나 그림은 없었지만, 우리는 러그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미학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그림뿐 아니라 문학, 철학까지 아주 다채로운 통로로 세상과 소통했던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