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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ZOO] 협력하고 소통하는 동물, 늑대

2023년 10월 04일 오전 09:00
■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동물의 다양한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오늘도 이동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어떤 동물을 만나볼까요?

[기자]
네, 오늘은 개의 조상으로 알려진 늑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늑대는 과거 우리나라에 살았던 토종 동물이기도 한데요, 아마 '이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늑대를 부르던 이름인데요,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어 '느쿠데'에서 늑대가 되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만큼 늑대는 우리와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중요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앵커]
'이리'는 많이 들어봤는데, 늑대를 말하는 것인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나라에 많던 늑대가 어쩌다가 지금은 사라지게 된 건가요?

[기자]
늑대는 과거 만주 지역에 살면서 한반도 쪽에 내려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1900년대 초에 러시아 학자가 남긴 기록을 보면 만주에는 늑대가 많지만, 조선에는 늑대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늑대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호랑이에게 밀려난 늑대가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면서 한반도에도 서식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해수 구제 정책'이 있었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모두 박멸하겠다, 이런 정책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30년 동안 무려 1,300마리가 넘는 늑대가 사살됐다고 합니다. 이후 1980년에 경북 문경에서 늑대가 한 마리 발견됐다는 기록을 끝으로 우리 땅에서 늑대는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런데 늑대가 말씀하신 것처럼 개의 조상이기도 하잖아요? 개랑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기자]
갯과 동물은 공통으로 한 동물에서 늑대와 여우, 코요테 등으로 분화됐는데요, 과거 어느 시점에 지금의 개와 가장 가까운 회색 늑대 종이 발생했고, 이 늑대들이 야생성을 잃고 사람에게 길들여지면서 개로 진화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개와 늑대는 같은 조상을 가진 동물로, 야생성을 완전히 길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나뉘게 된 거죠. 실제로 개와 늑대의 유전자를 비교해보니 평균 99.96%가 일치하고요, 서로 교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앵커]
그냥 조상의 수준이 아니라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는 거네요?

[기자]
맞습니다. 특히 우리와 함께 사는 개는 모두 유전적으로 유럽보다는 아시아 쪽에 살던 고대 늑대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 연구팀이 유럽과 시베리아, 북미 등에서 발굴된 고대 늑대 뼈 72마리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인데요, 초기에 나타난 개의 유전자는 유라시아 동쪽 늑대에만 기원을 두고 있었고, 이후에 중동지역 늑대의 유전자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니까 초기의 개들은 아시아 쪽 늑대와 훨씬 더 가까운 형태였다는 거죠.

또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토종 개들이 전 세계 개들 가운데 늑대와 가장 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연구팀이 모두 33품종 2,200여 마리 개의 유전자를 분석해 봤는데요, 한국 토종개는 다른 개보다 늑대와 유전자형의 차이가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풍산개가 가장 늑대와 유전자형이 비슷했고요, 그다음으로 경주 개 동경이, 진돗개 순으로 늑대와 닮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내 토종개들이 가장 야생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죠. 또 중국의 차우차우나 샤페이, 일본의 시바견같이 다른 아시아 개들도 유럽 쪽 개들보다는 유전적으로 늑대와 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하신 대로 개와 늑대의 유전자 차이가 0.04%에 불과한데요. 이런 작은 유전자 차이가 신체적인 차이도 만들었을 거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자]
늑대는 먼저 갯과 동물 중에 가장 몸집이 큰데요, 다 자란 늑대는 어깨높이가 1m 가까이 되고 몸무게도 80kg까지 나갑니다. 또 개와 늑대는 모두 이빨 개수가 42개로 같지만, 물어뜯는 힘에서는 큰 차이가 있는데요, 치악력을 측정해 보면 개는 평균 100kg대인데 반해 늑대는 그 2배인 200kg에 달한다고 합니다.

생김새에서도 차이를 볼 수 있는데, 늑대는 긴 꼬리에 귀에 뾰족하고요, 작은 눈과 날렵한 주둥이를 가져서 전반적으로 날카로운 모습입니다. 반면에 개들은 진화 과정에서 주둥이가 납작해지고 눈은 커지도록 변해왔는데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조금 덜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사람에게 길들여 생활하면서 사냥에 필요한 감각을 제공하는 귀와 꼬리도 늑대보다 작고 뭉툭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무래도 늑대가 개보다는 훨씬 더 사납고 또 공격력도 강하겠죠?

[기자]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늑대들 가운데 완전히 길들일 수 있는 종들만 개로 진화하면서 야생성을 잃게 됐는데, 늑대의 이런 야생성에 대해서는 조금 의외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늑대는 보통 한 쌍의 우두머리 부부가 가족을 이끄는 형태로 5~11마리 정도가 모여 사는데요, 이 우두머리 늑대의 경우는 다른 개체들보다 유난히 과감하고 공격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구팀이 이런 우두머리 늑대의 기질은 기생충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는데요. '톡소플라스마 원충'이라는 단세포 기생충에 감염된 늑대가 훨씬 더 용감하고 무리를 이끌 가능성이 큰 늑대가 된다는 겁니다. 이 기생충은 고양잇과 동물의 배설물을 통해 감염되는데, 근육과 뇌 조직에 물혹을 만들면서 결국 감염된 동물의 뇌까지 조종합니다. 실제로 연구팀이 늑대 220여 마리의 혈액을 분석해 봤는데요, 톡소플라스마 원충에 감염된 늑대는 감염되지 않은 개체보다 가족을 떠나 무리를 형성할 가능성이 11배 높았고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될 확률은 46배가 높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 기생충에 감염된 늑대는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종종 보였는데요, 이런 특징이 자신의 무리를 적들로부터 보호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이 때문에 도로를 건너다 치여 죽거나 사람에게 접근해 사살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늑대의 성격이 기생충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굉장히 놀라운데요. 그런데 개와 늑대가 굉장히 닮아서 생김새보다는 습성에서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기자]
네, 맞습니다. 우선 우리가 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개는 자신의 동료보다 인간에게 의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실제 오스트리아 연구팀이 개와 늑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2마리가 함께 당겨야 먹을 수 있는 사료통을 준 뒤에 성공할 때마다 보상을 준 건데요. 그 결과, 개는 472번의 시도 중에 2번만 성공했고, 실패할 때마다 주변 사람을 바라보면서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반면 늑대는 416번의 시도 중에 100번이나 성공했고, 실패할수록 동료 늑대와 더 협업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처럼 늑대는 개보다 훨씬 더 사회성이 뛰어나고 서로 협력하는 능력도 발달했다고 합니다.

[앵커]
개가 참 똑똑한 동물이다 보니까 사회성도 좋을 줄 알았는데 늑대가 반대로 훨씬 더 사회성이 좋네요?

[기자]
사실 늑대는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유명한 동물입니다. 개들은 위계질서에 따라서 계급이 낮은 개체가 높은 개체에 복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늑대는 계급과 관계없이 집단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의사소통부터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수평적인 관계는 먹이를 먹을 때 잘 나타나는데요. 보통 개에게 먹이를 주면 계급이 높은 개체가 먹이를 독차지하잖아요? 다른 동료가 접근하면 으르렁거리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늑대는 위계질서가 다른 개체들이 함께 있어도 먹이를 같이 먹습니다.

또 늑대들은 무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먼저 대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연구팀이 20마리 개들에게 밀봉된 소시지 상자를 주자 한 마리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열어' 라고 명령하자 몇 마리만 성공했는데, 개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명령에 따르는 습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입니다. 반면 10마리 늑대들에게 같은 문제를 줘 봤는데요. 이 가운데 8마리가 2분도 되지 않아서 상자를 열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늑대의 경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사실 늑대가 개에 비해서 굉장히 사납게 생겨서 좀 날카로운 동물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는데요. 좀 따뜻하고 영리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네, 이런 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동이 늑대의 '하울링'인데요. 이렇게 길게 울음소리를 내는 행동은 늑대가 무리의 동질감을 확인하거나 서로 대화하기 위해 하는 행동입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정글북'이란 동화에서 보면, 버려진 아이를 늑대가 데려다 키우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늑대는 가족애가 아주 뛰어나고 무리끼리 끈끈한 편인데, 실제로 자신이 낳지 않은 새끼도 무리에 들어오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키운다고 합니다.

[앵커]
우리가 흔히 늑대를 좋지 않은 비유로 사용을 하곤 했는데, 사실은 아주 의리 있고 멋진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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