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사이언스 in Art] '거미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

2023년 10월 06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루이스 부르주아는 세계 곳곳에 거대한 거미 조각들을 설치했는데요. 무서운 외형과는 다르게 작품의 이름은 '마망', 즉 어머니를 뜻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마음으로 거미 조각 작업에 몰두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소개해주실 작가가 거미 작가로 유명하다고요?

[인터뷰]
네, 이 작가의 대표작인 거미 조각을 본 분들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바로 루이스 부르주아인데요. 현재 전 세계 6점이 설치되어있는 청동으로 된 대형 거미 조각 'maman' 시리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이 작품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거미는 나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찬사입니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거미처럼 실을 짰고, 거미처럼 매우 영리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각별한 마음이 컸다고 하는데요. 평생 거미를 소재로 활발하게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앵커]
거미로 어머니를 떠올리는 게 굉장히 특이한 거 같은데요. 루이스 부르주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터뷰]
루이스 부르주아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미국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입니다. 20세기 가장 주목받은 조각가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거대한 거미 형상의 조각 작품 '마망'이 루이스 부르주아의 시그니처로 유명합니다.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갤러리를 하는 집에서 태어났는데요. 1935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지만 이후 미술 쪽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었던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고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도 공부를 이어가는데요. 특히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해온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소통하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판화와 조각, 설치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작업하는데, 60년의 긴 시간을 무명으로 보내다가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글로벌 아티스트로 거듭났습니다.

[앵커]
긴 무명시간을 보내다가 이제야 빛을 발하니까 요즘에 참 행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조각뿐만 아니라 판화 작업도 많이 했다고요?

[인터뷰]
네, 루이스 부르주아는 초기에 드로잉과 판화 등 평면 작업을 주로 했는데요, 처음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갔던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의 판화 작업들이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각에 집중하면서 잠시 놓았던 게 70대가 된 후, 다시 판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고요. 타계할 때까지 계속되어 평생 1,500여 점의 판화를 작업했습니다. 부르주아는 1990년에 자신의 모든 판화 작업들을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증하게 됩니다.

[앵커]
그런데 루이스 부르주아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직접 작품에서 보인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는데요. 아버지의 외도를 직접 목격하고, 또 그 일을 오랜 시간 동안 묵인하며 참아온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고생 하던 어머니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부르주아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커지는데요. 이런 내면적인 아픔을 작품으로 끊임없이 풀어내게 됩니다. 작업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부르주아는 예술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분열된 가족의 문제 등을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에 대해서 "부드러움과 폭력, 수용과 반항, 양면성과 신념이 가득 차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루이스 부르주아의 시그니처 작품인 '거미' 작품에 대해 알려주시죠.

[인터뷰]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작가 본인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 외에도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1947년, 드로잉 등으로 자주 그렸던 거미를 1990년대 후반부터 조각으로 작업하기 시작하는데요. 청동으로 만든 대형 거미 설치 조각 'maman'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망 시리즈는 높이가 9m, 지름 10m가 넘는 대형 작품인데요. 청동과 스테인리스 스틸,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거미 몸통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요, 몸통에 있는 주머니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알 32개가 들어있습니다. 부르주아는 이 거미 조각에 대해서 "자기 배에 품은 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인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암시한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압도할만한 스케일의 작품을 만들었을 과정을 생각하면 참 애틋하면서도 존경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앵커]
그런데 또 어떤지 저런 작품들을 보면 영화의 스틸 컷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은데요. 이런 루이스 부르주아가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고요.

[인터뷰]
네,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한 게 아니라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는데요. 1973년 '프랫 인스티튜트'와 '쿠퍼 유니온' '브루클린 컬리지' '뉴욕 스튜디오 스쿨'등 유수의 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또,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와 롱아일랜드의 공립학교에서도 수년 동안 판화와 조각 등을 가르쳤는데요.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도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라던가, 연구 등을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깊이를 더했다고 합니다.

[앵커]
젊은 예술가, 학생들과 함께 모임을 열었는데 모임 이름이 아주 독특하다면서요?

[인터뷰]
네, 루이스 부르주아가 1970년대 초에 첼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여는데요. '살롱문화'라고 하죠? 예술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활발하게 비평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게 됩니다. 모임 이름이 '일요일, 피의 일요일'이었는데요. 이 모임에는 특히 젊은 예술가와 학생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고요, 루이스 부르주아가 이 예술가들에게 비평을 했다고 합니다. 다소 무자비하게 비판했다고 해서 '피의 일요일' 이라는 모임 명이 붙은 거고요. 거기에 부르주아 특유의 건조한 유머감각이 더해져서 많은 영감을 주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앵커]
루이스 부르주아가 6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무명작가였다고 들었는데요. 작가 인생은 어땠을까요?

[인터뷰]
루이스 부르주아는 뉴욕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의 미술계에서 치열하게 작업했는데요. 특히 1940년대 초반에는 나무로 된 조각이나 평면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1945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페기 구겐하임의 여성 예술가 전시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1954년에는 동시대 주목받는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과도 교류하며 지냈는데요. 이 시기부터 청동과 대리석, 석고 등으로 작업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렇게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제2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인정받으면서 1982년, 여성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또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자신의 나이나 위치 등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평생을 자신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앵커]
자 오늘은 거미 작품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를 만나봤는데요. 이 작품을 직접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