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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놓칠 수 있는 마음가짐 짚어보기

2023년 10월 24일 오전 09:00
■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부모-자녀 관계는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서로 원하는 기준이 달라 갈등하기도 하죠.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조건적인 성취와 인정은 자녀를 병들게 할 수 있어 '사랑'과 '인정'에 대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한길사람속은>에서 자세히 알아볼 텐데요,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참 편한 것 같으면서도 갈등도 자주 일어나는 그런 사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오늘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사랑'과 '인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은 소통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부모-자녀 관계는 가장 가깝지만, 또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관계이기도 하죠. 우선 다음의 이야기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해볼까요?

30대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 취업을 못 하고 있다 보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어서 늘 부모님 뜻을 따라 살아왔어요. 부모님이 좋다는 게 좋은 건 줄 알았고 부모님이 해야 한다면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면 그게 절 사랑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모님 눈치 보고 공부하느라 친구도 잘 안 사귀고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데 막상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잘 안되다 보니 이제 와서 취업도 못 하고 친구도 없는 못난 자식이 되어있습니다. 요즘은 부모님 얼굴 보는 것이 두렵고 힘이 들어요. 제가 잘못 살아온 걸까요?

[앵커]
요즘에 이런 친구들이 좀 있는 거 같아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또 한편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인터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울 거야!'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아이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잘 펼치며 스스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과 인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것으로 여긴다면 어느새 아이에게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관계가 형성되는데요. 위의 이야기를 보면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고자 착하고 성실한 자녀로 살아오셨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인정'을 받는 것을 '사랑'받는 것과 동의어로 여기고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우리가 흔히 '사랑과 인정'이라는 말을 붙여서 쓰는 경우도 많이 있는 거 같은데, 사실은 다른 개념이라면서요?

[인터뷰]
사랑과 인정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고 일부 교집합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인정은 아닙니다. 인정은 무언가 조건을 충족했을 때, 어떤 일을 성취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안되던 줄넘기 이단 뛰기를 해냈을 때 부모님께서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시는 건 결국 어떤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거거든요.

물론 그 마음속에는 '내 아이가 노력해서 어려운 일을 잘 해냈다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격려의 마음도 일부 녹아있지만, 아이가 이룬 성취를 인정해주는 마음의 비중이 훨씬 큽니다. 이와 비슷하게 '올백 맞아야 한다.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 연봉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건 아이를 위하는 일부의 마음이 있지만, 지극히 조건적인 태도이고 이런 조건이 들어가면 자녀를 '전체대상'이 아닌 '부분 대상'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떻든 ‘칭찬받을만한 행동’을 하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싸늘해지나 억지로 괜찮은 척 반응을 하게 되는 거죠. 인정과 사랑을 헷갈리는 아이는 부모님께 사랑받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인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앵커]
그런데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것도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뷰]
물론입니다.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도 저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고 적절한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총체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 개인심리학의 주창자인 심리학자 아들러는 칭찬은 위계를 가진 것으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의미로든 나보다 못한 대상이 무언가를 기준 이상으로 해냈을 때 해주는 것이 칭찬이라는 거죠.

예를 들면, 사원이 부장님을 칭찬하는 것은 맥락에 맞지 않습니다. 회사 상황을 더 잘 알고 아우르고 있는 부장님이 사원이 어떤 일을 배워나가면서 잘해냈을 때 배워나가는 사원이 어떤 일을 잘해냈을 때 칭찬하는 것이죠. 회사 상황에서 위계는 당연한 것이고 이런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자녀 관계에서는 좀 다르죠. 우리는 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이고 이러한 관계는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충족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부모-자녀 관계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하려면 부모는 내가 무엇을 잘했을 때 인정해주는 대상이 아니라 잘하지 못해도, 실패해도 그런 나를 함께 안타까워 해주고 끌어안아 주는 사랑의 대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앵커]
말씀을 들으니까 이해는 되기는 하는데, 그런 '무조건적'이라는 사랑이 아무리 부모-자녀 사이라 하더라도 쉽게 나타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어떤가요?

[인터뷰]
물론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 100% 충족을 주는 무조건적 사랑은 어렵죠. 다만 완전하지 않더라도 노력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위계의 개념을 떠나 상대방을 북돋워 주기 위한 '격려'의 방식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아이가 시험을 잘 봤을 때 점수나 등수를 칭찬해주면 역으로 그만한 점수나 등수를 유지하지 못했을 때는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럴 때 특히, 인정받는 것을 부모의 사랑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경우는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시험을 100점 맞아도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다음 시험엔 100점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시작하게 되기도 합니다.

위의 사례도 여기에 해당이 되지요. '내가 기대하는 시험을 잘 본 아이'로 부분적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전체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시험결과를 받고 들어오는 아이를 전체적으로 살피고 아이의 표정이 환하고 분위기가 밝다면, "**이 표정이 정말 기뻐 보이네! 마음이 뿌듯한 것 같다!"라고 읽어주며 점수 90점, 100점 자체보다는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기뻐하는 **이의 모습을 보는 게 흐뭇하고 기쁘다고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험 잘 본 나'를 인정해주고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과정이 성과로 나와서 기뻐하는 나'를 지켜봐 주고 그런 나의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알아봐 주고 이해해줄 때 '시험 못 본 나'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타까워 해주고 속상한 마음을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그럼에도 응원해주는 부모님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앵커]
정말 생각을 해보면 시험을 못 본 것도 굉장히 힘든데, 부모님이 그거에 대해서 채찍질까지 한다면 그 짐이 2배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좀 인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녀를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은 계란 만이 아닙니다. 사랑과 인정을 부모라는 대상에게 모두 구하려고 하면 서로 부딪혀서 깨지게 될 수 있어요. 부모는 온전히 사랑의 대상으로 남아있고, 인정은 사회에 나가서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면접에 떨어진 날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거절당한 날에, 내세울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릴 때 못난 자식이라 부모님께 차마 전화도 못 하고 이야기도 못 꺼내며 자신을 더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부족해도 나를 기다려주고 안아줄 대상이 있다는 것에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거죠.

특히, 유교문화에서는 사회의 틀과 규율에 맞추는 것이 개인의 삶보다 우선하거든요. 그래서 자녀가 부모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호적 파서 나가!'라는 말을 하게 되고요. 이러한 유교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어서 부모의 기준에 맞춘 삶에 대한 요구가 특히 더 큰 부분도 있습니다.

[앵커]
'부모는 온전히 사랑에 대상으로 남아있고 인정은 사회에 나가서 구해야 한다'라는 말씀이 참 울림이 있는데요. 부모-자녀 관계를 건강하게 맺기 위해서 생활 속에서 어떤 거를 실천하면 좋을까요?

[인터뷰]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닌데 저는 '아무 이유 없이'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즉, 그냥 한 번씩 자기 전에 누워있는 아이 방에 들어가서 손이나 발, 저는 주로 발을 잘 만져줘요. 그러면서 '우리 **이 많이 컸네! 우리 **이 발이 참 예쁘네.'와 같은 말을 한마디 해줍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저 밥 먹고 있는 아이 앞에 앉아서 밥 먹는 걸 지켜봐 주고 말없이 사랑을 담아 그저 너의 존재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쳐다보면서 미소 지어주는 것, 너와 함께여서 좋다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으로도 아이들은 큰 위안을 받아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나라는 이유로 부모님이 나를 마음으로 온전히 안아줄 때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청사진을 펼칠 수 있게 될 겁니다. 성취는 아이의 일부분이지 전부는 아니기에 인정받을 만한 일을 해내서 사랑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아무 이유 없이도 온전히 전체로 사랑해주는 마음을 갖는 것이 부모-자녀 관계에서 잘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앵커]
네. 정말 온전히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해주는 것이 가족인 거 같은데요. 때때로 그 마음을 잊고 사는 거 같은데,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임지숙 상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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