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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진부하고 뻔하다?…'신데렐라 서사'에 매료되는 심리

2023년 10월 31일 오전 09:00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로맨스 드라마는 전개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될지 예상 가능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다소 '뻔하다'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뻔한 스토리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클리셰'에 대해서 어떤 심리를 가지게 되는지 조연주 미디어심리학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클리셰(Cliché) 라는 말 참 많이 쓰는데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네, 클리셰(Cliché)는 인쇄에서 사용하는 연판(鉛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판에 박은 듯한 문구나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문학 용어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인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의미하는데요. 클리셰 (Cliché)를 적당히 잘 활용한다면 익숙한 내용으로 친근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작품을 너무 진부하고 뻔하게만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어서 적당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결말이 쉽게 예상되는 '신데렐라 서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여기에는 우리가 수천 년을 함께해 온 사랑 이야기에 대한 익숙함과 친근함이 있기 때문인데요. 최근 흥행에 성공한 로맨스 드라마들을 보면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오래된 기본 공식을 따르면서 대놓고 클리셰(Cliché) 범벅의 드라마라고 말합니다. 클리셰 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클래식한 매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죠.

[앵커]
우리나라 로맨스 드라마 보면 재벌이 가난한 여자 좋아하게 되고 그런 클리셰들이 항상 있는데 굳이 다 아는 스토리인데 보게 되더라고요,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세상이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면서 예측 가능성이 현대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정감을 추구하는 욕구가 커지면 새로운 것보다 기존의 질서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데요. 대중이 클리셰 드라마를 찾는 것 또한 불안정한 시대에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적극 활용해서 흥행에 성공한 '사내맞선'과 '킹더랜드'를 즐겨 본 이유로 많은 시청자들이 '이상적인 결말'을 들었는데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를 보면 우울한 현실이 떠올라서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기분이 가라앉은 반면, '사내맞선'이나 '킹더랜드'의 경우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결말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이상과 현실이 계속 빗나갈 때 사람들은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작품 속의 행복한 결말과 사랑의 성취 등을 통해 현실 속 암담했던 감정에서 벗어나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빈부 격차의 극복은 현실에서 더욱 어렵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더 쉽게 빠지게 됩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 사회적인 분위기나 어떤 변화 같은 것도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인터뷰]
우리나라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국민들의 연간 독서량이 매우 적다는 사실, 아시죠? 사람들이 독서대신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즐기는데요. 그래서 진지한 주제보다는 단순하고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에 익숙해졌어요. 현실이 힘들고 팍팍할수록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나 방대한 세계관의 복잡한 이야기보다 피로도가 적고 단순한 전개에 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깊고 길게 사유하기'보다는 이해하기 편한 클리셰 서사의 드라마로 '얕고 짧게 느끼고 즐기기'를 원하는 거죠. 최근 나오는 작품은 과거에 비해 전개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인데요. 클리셰 요소를 활용한 드라마는 빠른 전개에서 일부 내용을 놓쳐도 이해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이 밥을 먹을 때나 이동하면서 영상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야 하는 콘텐츠는 보기 힘들고, 아무 때나 끊어 봐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클리셰 드라마들에서는 거의 다 내용이 똑같다고 느껴지는데 그 안에 새로움도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 우리가 클리셰 라고 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클리셰 였을까요? 어떤 것도 계속해서 새로울 순 없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이 있죠. 그럼에도 많은 창작자가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그것이 우리를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새로움에 대해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하나의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전개와 결말이 뻔한 로맨스 드라마가 사랑받는 건 결국은 '해피엔딩'이라는 '아는 맛'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죠.

인간의 이야기는 들여다보면 대부분 클리셰의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소재가 참신해도 보편성을 가지지 못한 이야기는 외면당하기 쉽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사람들은 새로움을 원하는 동시에 클리셰를 원합니다. 뭔가가 예상과 잘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기뻐하고 안도하거든요.

최근엔 기존의 클리셰를 비트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만들어진 클리셰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만나 뒤틀리는 순간, 시청자는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이는 곧 쾌감으로 다가옵니다.

[앵커]
인간의 이야기는 대부분 클리셰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도 많은 클리셰가 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인터뷰]
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는 부모·자식 간의 애증, 형제 사이의 갈등, 연인의 만남과 이별, 어린 시절 사랑했던 상대와의 재회, 직장인의 반복되는 하루일과 등이 있는데요.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전형적인 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전형적인 이유는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서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래서 많이 사용했고, 많이 사용한 이유는 재밌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클리셰를 원하는가?'를 생각해 보시면 현재 내가 즐기는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클리셰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해왔는데요. 이야기 속에서 내가 기대하는 결말이 무엇인지, 나의 갈증이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겠죠. 내 현실이 불안할수록 희망을 보고자 하는 심리가 클 수도 있습니다. 만약 클리셰를 비틀고 싶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어떤 욕구가 작용해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앵커]
클리셰로 자신의 욕구도 알 수 있다고 하니까 요즘 자꾸 보게 되는 드라마는 뭔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우리 삶에 도움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떨까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글로벌 CEO이자 언론들에게서 '우리 시대 가장 혁신적인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작가 겸 투자자 티모시 페리스(Timothy Ferris)는 "인생의 비밀은 클리셰에 숨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가까운 곳에 답이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죠.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평범하고 진부해진, 그런 곳에 진리가 숨 쉬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성공하고 싶다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매일매일 꾸준하게 하라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살을 빼고 싶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이야기, 또 몸에 좋은 채소를 많이 먹고, 꾸준한 운동을 하고 적당한 수분 섭취와 수면이 건강 비결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해야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별함이 알고 보면 평범함이라는 사실도 많이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클리셰의 힘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주목하면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보통 클리셰하면 진부하고 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방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인생의 비밀은 클리셰에 있다는 이 말이 굉장히 와 닿았는데 클리셰 속에 어떤 진리가 있는지 저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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