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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기후재난의 시대…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2023년 11월 28일 오전 09:00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올해 전 세계는 이상기후에 시달렸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폭우와 폭염, 가뭄과 장마를 오가며 갑작스럽게 변하는 이상기후와 환경 뉴스를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이런 기후재난의 시대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살아내야 할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앵커]
기후변화가 우리의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니깐 참 놀라운데요, 이상기후로 인해 답답함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증상을 뜻하는 용어가 있다고요?

[인터뷰]
네, 예전에는 '기후 우울'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2014년부터 미국 정신의학계는 이런 증상을 'Distress·정신적 괴로움'을 뜻하는 '기후 고통'으로 명명했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느끼는 우울감뿐 아니라 불안이나 분노, 좌절, 죄책감, 무력감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기후 고통'을 정식 용어로 채택했습니다.

한 달 전쯤, 제가 사는 지역에는 갑작스러운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20분 정도 밤톨만 한 우박이 쉴 새 없이 떨어졌는데요.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놀라고, 저는 집 안에 있었음에도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지인들에게 연락해봤더니, 그들 역시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박이 그칠 때까지 건물 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을 당해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언제 닥칠지 모를 기후재난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말씀하신 '기후 고통'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증상을 겪게 되는 건가요?

[인터뷰]
조지타운대학교 글로벌 보건학과에서 정신건강을 가르치는 샤밥 와히드 교수는 주변 온도가 정상보다 1℃만 높아져도 우울증과 불안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생활이 쉽지 않았을 때, 불안과 우울감, 무기력증을 '코로나 블루'라고 말했던 것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불안을 '기후 우울증'으로 부르는데요. 올여름 기억을 되살려 보면 유난히 폭염과 폭우가 기승을 부리면서 밖에 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우울감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났고요. 이렇게 코로나와 기후위기처럼 심각한 것을 느끼고 있지만, 개인이 해결할 수 없고,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보니 분노와 무력감, 상실감을 호소하게 됩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상기후에 노출되어 기후 변화를 체감해 온 젊은 층에서 더욱 많이 나타나고 있고요. 실제로 '기후 고통'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들 중에서는 예측 불가한 상황이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것 같아서 불안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무기력해진다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앵커]
젊은 층에서 '기후 고통'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인터뷰]
우선 2021년 영국 배스대에서 10개국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중 응답자의 45%가 기후 고통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기후 변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뒤에는 정신적으로 더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조깅과 쓰레기 줍기의 합성어인 '플로깅'이나 '1회 용품 사용하지 않기' 등 그저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직접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환경과 기후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더욱 우울 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 환경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상기후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내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허무함과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이 우울감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고작 날씨 때문에 우울하다'는 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이없고,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죠.

[앵커]
이런 경우를 보면 이상기후가 정신건강과 큰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이상기후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현상을 자주 겪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럼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터뷰]
전문가들은 5, 6년 뒤에는 ‘기후 고통’이 우울증과 조현병을 뛰어넘는 정신건강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씁쓸하지만 그 시기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하고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세계 최고의 환경심리학자인 조지마셜은 "모든 문제는 우리의 심리적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그림자'인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탐욕스러운 우리의 내면이라고 했어요.

기후 온난화를 걱정하면서 플라스틱 배출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탄소 배출 기업을 탓하면서 우리는 더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기후는 대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코로나처럼 바이러스 질환과 전염병, 그리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던 정신질환 역시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쉽고 간편하고 빠른 생활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생활터전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경각심을 다시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상기후로 인해 인간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 부분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요?

[인터뷰]
네, 급격한 기온 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아실 테고, 느껴보셨을 거예요. 브라운 대학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연구하는 조쉬 워첼 박사는 '수면 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수면은 기분 조절과 신체 회복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수면시간이 짧아졌습니다. 68개국에서 실험한 결과, 기온 상승이 연평균 44시간의 잠을 앗아갔다고 합니다. 더운 밤에는 수면시간이 더 짧아졌고, 취침 시간은 늦어지면서 기상 시간이 빨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합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회복력이 약해져서 사람들을 약물 남용이나 자살 충동처럼 부정적인 대처를 하게 만듭니다.

1년 중 자살과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날이 기온 변화가 가장 심한 날이었으며, 갑작스러운 온도변화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정신건강 환자들은 더욱 불안감을 느끼고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멕시코에서는 평균 기온이 1℃ 상승하면 자살률이 1%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습니다. 이상기후가 인간의 스트레스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근거가 되겠죠.

[앵커]
수면이 기분 조절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기분 조절과 기후와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그것 또한 연관이 깊습니다.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인명, 재산피해뿐 아니라 범죄와 폭력 행위를 부추긴다는 무서운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폭염이 인간의 공격성과 충동성을 자극해서 범죄율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발표한 '폭염과 정신건강' 보고서에서 기후 변화가 전 세계 모든 범죄율을 최대 5%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기후와 폭력, 범죄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온이 높을수록 범죄율이 증가하는 사례는 미국, 스페인, 영국, 등 세계적으로 많이 보고되고 있는데요.

특히 눈여겨 볼만한 결과는 기온이 1도 오르면 성폭력이 6% 이상 증가했다는 결과입니다. 이상기후와 폭력 증가의 연관성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앵커]
그냥 덥다 수준이 아니라 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깐 더 심각성이 느껴지는데 우리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래 범죄까지 이어지게 되는 걸까요?

[인터뷰]
기후 변화가 폭력이나 범죄 증가로 이어지는 요인으로는 인간의 뇌가 열 스트레스에 의해 손상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기분 조절 호르몬 중 하나인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인간의 공격적 성향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데, 고온에 취약한 편입니다. 고온이 스트레스를 높인다는 의학적 증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생각해 보면, 똑같은 일인데 극한 더위를 느낄 때 더 많이 짜증 내고 화를 내게 되잖아요. 폭염으로 세로토닌이 결핍되면 아드레날린이나 엔도르핀과 같은 호르몬 분비를 제대로 조절하기 어려워지고, 공격성과 폭력성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해서는 안 될 범죄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앵커]
오늘 얘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해질지 걱정이 됩니다.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인터뷰]
기후 정신과 전문의연합(CPA)의 쿠퍼 대표는 기후 고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증상이자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기후 변화는 인간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기후 고통은 장기전입니다. 절대 짧은 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에 긴 싸움에서 지치지 않도록 '회복 탄력성'을 길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연결의 힘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지지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듯이 지금은 기후를 위해 다시 한번 모두의 힘을 모을 때입니다.

단기간에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개인의 노력과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연결될 때, 변화는 시작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기후변화가 우리 심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건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요. 이에 대한 적응 방안, 대책 마련이 필요해보입니다. 조연주 미디어심리학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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