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조르조 모란디는 당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조금 다른 길을 걸었는데요.
화가 인생에서 대부분 정물화와 풍경화만을 그리며 일상적이면서도 단순한 소재로 어떤 미술 양식에도 속하지 않은 특유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작가입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과 '에칭 기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앵커]
조르조 모란디라는 작가가 평생 병과 같은 정물화만 그렸다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최근 직장인이나 비전공자 성인들이 취미로 다양한 아트 클래스를 체험한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 클래스에서는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을 많이 참고한다고 합니다. 특유의 차분한 컬러감과 감성적인 무드 때문에 모란디의 작품이 담긴 포스터를 집에 걸어두는 분들도 많은데요. 모란디의 그림을 주로 모사하는 이유 중에는 따라 하고 싶은 무드 때문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순한 하나의 소재를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병'인데요. 모란디는 평생 동안 병을 소재로 한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앵커]
'병을 그리는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본격적으로 조르조 모란디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이탈리아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조르조 모란디는 볼로냐에서 태어났는데요. 1907년, 볼로냐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특히 모란디는 아카데미에서 렘브란트의 작업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렘브란트가 생전에 판화가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모란디 또한 판화 기법 중에 특히 ‘에칭’을 깊게 연구하기도 합니다.
이후 1910년에 피렌체에 방문해 조토와 마사초 등 거장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큰 영감을 받고요, 볼로냐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20년대 후반부터는 이탈리아를 넘어 해외에서도 전시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1948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문 1등을 수상하고 1957년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인지도를 쌓습니다.
모란디는 작가 인생 전반에 걸쳐 몇 점의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는데요. 색감과 구성의 조화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이고 단순한 소재도 특유의 화풍으로 풀어냈습니다. 평생 1,350여 점의 유화와 133점의 에칭을 작업했을 정도로 다작을 했고요. 특히 모란디의 유화 중 2점은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소장되어 현재 백악관 컬렉션에 속해있기도 합니다.
[앵커]
반도체 공정에도 에칭 과정이 있는데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 조르조 모란디가 형이상학적 회화라는 운동에 참여했었다고요. 형이상학적 회화가 뭔가요?
[인터뷰]
네, 형이상학적 회화는 이탈리아 근대 회화 스타일 중 하나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조르조 데 키리코가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자신의 작품 속에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요소들을 넣어서 수수께끼처럼 묘사합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복제해서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개념이나 상징을 넣어 모호하게 만드는 건데요. 모란디도 초기에 이 회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1920년대 말에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이후에 어떤 미술 사조에 속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모란디는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건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래서 모란디가 정물화를 그리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런데 조르조 모란디는 왜 '병'이라는 소재에 주목했을까요?
[인터뷰]
네, 모란디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인 아르덴고 소피치는 모란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는데요. "모란디는 고전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즉,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며,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다. 전통적인 동시에 현대적이다."
모란디가 그리는 정물화는 시각적인 경험에 대해 주목하는데요. 지금 보고 있는 사물이 정말 그게 맞는지, 본질에 대해서 묻는 질문을 계속하거든요. 모란디는 주로 화병이나 그릇, 꽃, 다양한 병들을 캔버스에 담았는데요. 시장에서 여러 형태와 쓰임을 가진 병들을 골라서 패키지를 떼어버리고, 겉에 페인트를 칠합니다. 그렇게 각각 병들의 가지고 있던 특징과 개성을 지워 버리는 건데요. 자신의 스튜디오에 단순하게 만든 병들을 나열해서 배치하고, 색감 또한 차분한 톤을 주로 사용해 그리면서 '병'이라는 사물의 진짜 본질에 대해 철저하게 집중한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모란디의 대표 작품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아마 모란디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작품은 익숙하실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작품 소재와 컬러 톤이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라는 작품인데요. 보자마자 뭔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다양한 밝기의 회색 톤과 크림색, 흰색, 베이지색, 연노랑 색, 연보라색 같은 톤을 사용해서 조용한 실내에 자연광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요. 모란디가 사용한 이런 흙빛의 색상들은 볼로냐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최소한의 음영을 사용해서 다소 평면적으로 보이고 건축적인 형태 감도 있습니다.
지금 이 작품은 1946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캔버스 중앙에 큰 꽃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란디는 작업할 때 몇 주 동안 사물의 알맞은 위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뒤섞어 배치했다고 하고요. 작품을 자세히 보면 스케치가 있는데, 밑그림을 수차례 그리고 수정해가며 그린 후 얇게 한 번 칠하고 젖은 상태에서 생동감 있게 붓칠을 한 겁니다.
이 스틸 라이프는 여러 버전이 있는 시리즈고요. 모란디는 한 편지에서 '이 작품의 여러 변형이 있으며, 동일한 대상이 다른 그림에서도 나타난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앵커]
모란디가 병을 작업한 것도 유명하지만 모란디가 에칭 작업도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에칭이란 어떤 건가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에칭은 동판화 기법중 하나인데요. 동판에 '산'이라고 하죠.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기법입니다. 잘 닦여진 동판에 산을 방지하는 내산성 방식제를 입히는데요. 즉 밀랍이나 송진 등이 혼합된 '에칭 그라운드'를 입히는 겁니다. 그리고 금속 바늘로 형태를 새기는데요, 판의 뒷면과 모서리는 내산성 방식제로 처리된 바니쉬를 덮은 후에 희석된 산에 판을 담그는 겁니다. 그러면 판에 바늘로 긁어서 벗겨진 부분만 부식되어서 그 형태가 판에 새겨지는 원리입니다.
모란디는 어린 시절부터 에칭을 독학했고, 한때 볼로냐 미술 아카데미에서 에칭 교수로 근무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에칭 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작품은 라는 작품입니다. 1956년에 제작됐고요. 모란디가 자주 그렸던 병을 소재로 한 에칭 작품입니다. 보시면 수많은 선들이 서로 가로지르며 촘촘하게 그려져 있고, 모든 선이 굉장히 규칙적이고 하나의 잘못된 선 없이 그어져 있습니다. 명암 또한 간결하게 표현 되어있는 작품인데요. 이처럼 모란디는 세잔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소재들을 돋보이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요. 일상적인 사물들을 엄격하게 관찰하면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던 겁니다.
[앵커]
단순히 그린 게 아니라 에칭이라는 기법으로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모란디의 고향 이탈리아에 가면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고요?
[인터뷰]
네, 우선 '뮤제오 모란디'는, 모란디의 고향이었던 이탈리아 볼로냐의 중심부에 위치한 박물관입니다. 모란디의 작품 200점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모란디 스튜디오에 있던 오브제들도 이곳에서 볼 수 있고요. 폰다차 거리에는 모란디가 오랜 기간 살며 스튜디오로 썼던 '까사 모란디'도 있는데요. 'Iosa Ghini'라는 아뜰리에에서 이곳을 모란디가 살았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해 2009년부터 모란디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개방됐습니다. 까사 모란디는 작품에서 보이는 갈색이나 회색 톤의 색감을 사용해서 현대적인 소재로 꾸며놓았고요, 모란디가 정말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라고 하니 볼로냐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앵커]
지금 아뜰리에 모습을 보니깐 병이 굉장히 많던데요, 역시 모란디의 아뜰리에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병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조르조 모란디'에 대해 이야기,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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