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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ZOO] 나무 위의 삶…느림의 미학 '나무늘보'

2023년 12월 06일 오전 09:00
■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동물을 만나 볼까요?

[기자]
먼저 두 분 영화 '주토피아' 보셨나요?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어떤 동물이었나요?

[앵커]
저는 사실 주인공보다 일 처리가 엄청 늦었던 나무늘보 캐릭터가 제일 재밌더라고요.

[기자]
보통 영화 '주토피아'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면, 아마 주인공 메인 캐릭터보다는 나무늘보 캐릭터를 가장 먼저 꼽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주인공 못지않게 인기를 끈 캐릭터가 바로 나무늘보 '플래시' 캐릭터인데, 덕분에 나무늘보에 대한 관심까지 커지면서 사람들이 나무늘보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나무늘보의 모습을 상당히 잘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나무늘보는 포유류 가운데 가장 느린 동물입니다. 평균 시속이 900m 정도로 1분당 15m씩 움직이는데요, 100m 달리기를 하면 결승점까지 6분에서 7분 정도 걸리는 셈입니다. 이마저도 가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더 느려지는데, 만일 포식자가 쫓아와서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고 해도 시속 1.6km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에서는 평소보다 3배 정도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나무늘보는 정말 급할 때는 일부러 물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앵커]
생각보다 더 느린 거 같은데요. 근데 나무늘보는 땅에서보다 나무 사이를 이동하잖아요? 그래서 좀 더 느리게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사실 진짜 땅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기자]
맞습니다. 나무늘보는 일생의 90% 가까이 나무 위에서 보내는데요, 그래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의 나무가 많이 우거진 열대우림에 주로 서식을 하는데요. 우리가 보는 모습의 대부분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인데, 실제로 나무늘보는 이 상태로 18시간 넘게 자고요, 먹이를 먹기도 하고 심지어 출산과 육아까지 모두 나무 위에서 합니다.

나무늘보가 유일하게 땅에 내려오는 때가 볼일을 보러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인데요, 이렇게 배설만은 땅 위에서 하는 독특한 습성 덕분에 나무늘보가 그나마 활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나무늘보에게는 사실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땅에서는 나무늘보의 움직임이 더 느려진다고 하는데요, 천적들이 이때를 노려서 공격한다고 하네요.

[앵커]
다른 생활은 다 나무 위에서 하는데 볼일만 땅 아래로 내려와서 한다는 게 특이한데요. 그렇다면 하루에 몇 번 정도는 내려와야 할 거 같은데, 어떤가요?

[기자]
언뜻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만, 나무늘보는 나무 위에 살도록 적응한 동물인 만큼 자주 내려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움직이는 속도가 느린 만큼 나무늘보의 소화 속도도 아주 느린데요, 보통 한 번 먹이를 먹으면 소화하는데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나무늘보의 위는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어서 나무늘보가 먹은 나뭇잎들을 천천히 분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 속 내용물이 다 사라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대소변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보기 때문에 땅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나무늘보가 먹이를 자주 먹지 않는다는 뜻이 될 텐데요. 나무늘보는 잡식성으로 영양소 보충을 위해 곤충이나 도마뱀 등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주로 나무 위에서 잎이나 가지를 먹습니다. 이렇게 나무늘보는 움직임도 없지만, 신진대사율도 매우 낮다고 합니다. 또 보통 체온이 30~34도 정도로 일반적인 포유동물보다 낮은 편인데,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적어서 먹이를 자주 먹지 않아도 생존에 지장이 없는 거죠.

[앵커]
움직임만 느린 줄 알았는데 소화도 느리고 신진대사 자체가 느린 동물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나무늘보가 색깔이 사실 나무와 굉장히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찾기가 어렵다고요?

[기자]
네, 제가 예전에 만난 나무늘보 사육사분도 같은 얘기를 하셨는데요, 관람객들이 나무늘보를 찾을 수 없다면서 한참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무늘보가 한마디로 보호색을 띠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보통 털은 우리 머리카락처럼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아래로 자라잖아요? 그런데 나무늘보는 항상 배를 위로 향한 채 거꾸로 매달려 있기 때문에 털이 바닥을 향해서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 앞쪽이 아닌 등 쪽 방향으로 털이 자라는 거죠.

심지어 비가 와도 배에 물이 고이지 않고 털을 따라 양옆으로 흘러내린다고 하는데요, 나무늘보의 털은 보기에도 풀과 같은 색을 띠지만 실제로 이끼가 자랄 수 있습니다. 털 가닥마다 움푹 팬 홈이 있어서 조류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 데다 나무늘보가 잘 움직이지 않아서 털 안쪽으로 녹조류가 자라기 쉬운 건데요, 이렇게 한 번 생긴 녹조류는 빠르게 자라서 나무늘보의 털이 녹색으로 보이게 만들고요, 지방 성분이 많아서 때로는 나무늘보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또 나무늘보의 털 안에는 약 900마리의 나방과 벌레들이 살고 있고, 80여 종의 곰팡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나무늘보는 벌레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하면서 가끔 비상식량으로 이용하고요, 곰팡이에서 나오는 항생 물질로 감염병을 예방하기도 하면서 공생하는 거죠.

[앵커]
워낙 느리다 보니까 털에서 다른 곤충과 곰팡이가 자랄 정도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나무늘보는 아까 말씀 하신 대로 계속 매달려 있잖아요? 힘이 상당히 강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자]
먼저 영상을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하는데요, 올해 초에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나무늘보가 자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나무늘보가 새끼를 배 위에 올려둔 채 잠이 든 모습인데요, 보시면 어미는 두 발로만 나무를 움켜쥔 채 아주 평평한 자세로 공중에 누워있죠. 심지어 배 위의 새끼도 곤히 자고 있고요, 어미도 이런 자세로 평화롭게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영상을 접한 사람들이 나무늘보의 엄청난 악력, 근력이 놀랍다면서 뜨거운 반응을 보내며 화제가 됐습니다.

화면 속 나무늘보는 발가락이 2개인 두발가락나무늘보인데, 모든 나무늘보가 발가락이 2개인 것은 아닙니다. 나무늘보는 앞 발가락 개수에 따라 크게 세발가락나무늘보 과와 두발가락나무늘보 과로 나누어지는데요. 두발가락나무늘보는 보통 열대우림에서 생활하고 세발가락나무늘보는 주로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산다고 합니다. 사실상 발가락 개수 외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 발가락을 보면 아주 굵고 단단하면서도 날카롭게 구부러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발가락으로 나무에 갈고리를 걸듯이 매달려서 오랫동안 버티기도 하고 나뭇가지 사이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기도 하는 거죠.

[앵커]
저게 되게 힘들게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곤히 자고 있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놀라웠는데요. 이게 단순히 발가락뿐만 아니라 코어도 강해야 하고, 굉장히 힘이 세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얼마나 힘이 센 건가요?

[기자]
그래서 미국 연구팀이 나무늘보의 손아귀 힘을 측정해 봤습니다. 코스타리카 나무늘보 보호구역에 사는 갈색 목 세발가락나무늘보를 대상으로 분석해본 건데, 연구팀은 단면이 반원으로 된 나무 기둥 2개를 준비하고 기둥의 간격을 바꿔가면서 나무늘보의 손힘을 측정했습니다. 물체의 두께에 따라서 나무늘보의 손아귀 힘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본 거죠. 그 결과, 평균 몸무게가 3.8kg 정도인 이 나무늘보의 손아귀 힘은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평균 힘보다 2배 이상 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자기 체중 이상의 무게도 한 손으로도 지탱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매달린 나무늘보를 나무에서 떼려면 다리 하나에 연구원이 한 명씩 매달려야 할 정도로 손힘이 아주 강했다고 합니다. 또 보통 영장류의 경우 앞다리보다 뒷다리에 무게를 더 싣는 편인데, 나무늘보는 매달릴 때 팔다리 네 개에 거의 비슷한 무게를 싣는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특히 이번에 관찰한 나무늘보들은 모두 왼손잡이였는데요, 왼손의 손아귀 힘이 오른손보다 16% 이상 강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 역시도 영장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인 데다 오른쪽 힘이 더 센 것과는 반대의 결과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앵커]
나무늘보와 악수를 할 수가 있다면 사람보다 훨씬 강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나무늘보는 나무 위 생활에 최적화된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이런 것도 모두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죠?

[기자]
네, 맞습니다. 나무늘보의 조상은 고대 남아메리카에 살았던 '메가테리움'으로 알려졌는데요, 크기가 최대 6m에 달하고 몸무게가 4톤까지 나갔다고 합니다. '땅늘보'라고 불리던 이 동물은 하지만 덩치에 비해 온순하고 나무를 탈 수 없어 선 채로 나뭇잎을 뜯어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재규어나 호랑이 등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인간에게 사냥당하면서 이런 거대 나무늘보는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신에 천적을 피해 나무 위로 도망갈 수 있었던 작은 덩치의 나무늘보만 살아남아서 점차 몸집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거죠. 그런데 막상 나무 위로 올라갔더니 영양소가 부족한 나뭇잎밖에 먹을 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신체의 대사 속도를 줄여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요, 변온동물의 특징을 이용해서 체온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였습니다. 포유류지만 체온조절 기능을 버리는 대신 적게 먹고 느리게 움직이면서 나무 위에서 생존하는 편을 택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저희가 '사이언스 ZOO'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물들이 살아가는 방식, 생김새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은 나무늘보도 늘보가 된 건 다 이유가 있었네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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