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사이언스ZOO] 수백 미터 댐도 뚝딱…'자연의 목수' 비버

2023년 12월 13일 오후 5:02
■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동물을 만나 볼까요?

[기자]
오늘은 '자연의 목수'라고 불리는 비버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비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지만, 누구나 다 아는 동물이 아닐까 하는데요, 물에 살기 때문에 수달과 같은 동물과 헷갈릴 수 있지만, 비버는 분류상 '쥐목'에 속하는 설치류입니다.

물론 쥐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아주 큰 편인데요, 보통 몸길이가 60~70cm 정도이고 꼬리 길이가 30~40cm 정도입니다. 몸무게는 20~27kg 정도가 평균인데요, 아주 드물게는 40kg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앵커]
쥐라고 하기에는 대형견의 가치를 가진 친구란 생각이 드는데요, 비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거대한 앞니인데 앞니를 잘 사용하는 사는 동물이잖아요?

[기자]
네, 비버는 설치류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데요, 특히 앞니를 주로 사용하는 만큼 위력이 아주 강합니다. 숲이나 하천 근처의 나무를 앞니로 갉아서 넘어뜨릴 수도 있고요, 또 이렇게 잘라낸 나무를 작게 조각내서 사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 비버는 초식동물인데요, 자기가 쓰러뜨린 나무의 껍질이나 나뭇가지, 새싹, 나무뿌리 등을 주로 먹고 산딸기와 같은 과일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앵커]
비버가 쥐의 한 종류라고 하셨는데 비버는 쥐보다 훨씬 더 귀엽다는 생각이드는데요.

[기자]
지금은 비버가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지만, 약 1만 년 전에는 곰만 한 크기의 '자이언트 비버'가 존재했습니다. 자이언트 비버는 보시는 것처럼 몸무게가 100kg이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요, 캐나다 연구팀이 이렇게 팝가수 저스틴 비버를 기준으로 현재의 비버와 자이언트 비버를 나란히 두고 봤는데, 약 150cm 정도에 달하는 몸길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자이언트 비버는 약 260만 년 전에 출현해서 1만 1,700년 전 신생대 시대에 멸종됐는데요, 과학자들은 그 이유가 먹이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금의 비버가 나무를 갉아먹는 것과 달리 자이언트 비버는 수생식물을 먹은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점점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입니다.

특히 자이언트 비버가 나무를 자르거나 먹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는데요, 비버의 조상에게는 지금처럼 나무를 이용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거죠.

[앵커]
150cm의 키의 몸무게가 100kg 정도 되면 반달가슴곰정도 크기니깐 정말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버가 수생식물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주로 물에 사는 동물인가요?

[기자]
비버는 물속과 땅 위를 번갈아가며 생활하는데요, 먹이를 먹거나 잠을 잘 때는 육지에 올라와 있고 이외의 시간에는 물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당연히 헤엄치는 능력도 뛰어난데요, 비버는 설치류지만 뒷발에 물갈퀴가 있어서 물에 가만히 떠 있는 상태로 뒷발을 이용해 움직입니다.

또 꼬리가 아주 넓고 평평하게 생겼는데요, 이 꼬리가 노처럼 헤엄칠 때 균형을 잡아주고 추진력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자세히 보면 몸통과 다르게 꼬리는 털이 아닌 비늘 같은 모양으로 덮여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물의 저항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거죠. 비버는 물속에서 적을 만나면 이 꼬리로 물 표면을 강하게 내리쳐서 상대를 위협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들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요, 특히 겨울에는 꼬리 안에 지방을 저장해서 체온 유지에도 쓴다고 합니다.

[앵커]
말씀 들어보니깐 비버가 물속 생활을 하는 데는 꼬리의 역할이 아주 커 보이네요.

[기자]
네, 또 비버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하나 더 있는데요, 비버의 항문 근처에 기름샘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기름을 수시로 몸에 발라서 방수 기능을 높이고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건데요,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우리가 아는 바닐라 향이 이 기름샘에서 나오는 성분이라는 겁니다. 바닐라에는 '카스토레움'이라는 동물성 향료가 들어가는데요, 이게 바로 비버의 기름샘에서 나오는 물질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이 물질을 천연 향료로 많이 썼기 때문에 비버가 한때는 지나친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이와 비슷한 향의 '바닐린'이란 물질이 침엽수에서 추출된다는 것을 발견했고요, 지금은 대부분 이를 이용한 합성 향료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앵커]
바닐라 향은 아주 익숙한 향기인데 원래는 비버의 기름샘에서 나왔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그런데 사실 비버의 가장 큰 능력이라고 하면 집 짓는 기술이잖아요, 비버의 집 짓는 기술에 대해 알려주시죠.

[기자]
비버는 나무를 쌓아올려서 동그란 움집 모양의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보통 하천이나 늪 주변에 있는 큰 나무를 앞니로 갉아서 넘어뜨린 뒤에 진흙이나 돌을 더해가면서 작은 나무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요, 이렇게 만든 집의 경우는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것도 있다고 합니다.

또 수시로 나무를 쌓아올리는 비버의 습성 때문에 집을 짓는 과정에서 아주 큰 규모의 댐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요, 비버가 만든 댐의 길이는 보통 20~30m 정도이고 수백m에 달하는 댐도 자주 보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비버가 만든 세계에서 가장 긴 댐이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길이가 850m에 달하는 이 댐은 위성사진에도 포착됐습니다. 이 정도면 미국의 후버댐보다 두 배 이상 긴 길이인데요, 아마도 비버 가족들이 수개월에 걸쳐서 수천 그루의 나무를 갉아 모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 비버가 큰 동물이 아니여서 비버가 만든 댐이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굉장한 것 같습니다. 비버가 목수라고도 얘기하잖아요, 왜 그런지 이해가 되네요.

[기자]
네, 이렇게 비버가 만든 댐은 사람이 짓는 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데요, 실제로 이런 댐이 수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콜로라도 중부의 이스트강을 조사하다가 발견한 사실인데요, 연구 장소에 비버가 나타나 우연히 댐을 만들었고요, 이후 강에 설치된 센서로 1년 동안 수위와 물속 오염물질 수준을 모니터한 결과, 비버가 만든 나무 댐이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해서 물이 하류로 유입되기 전에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물속 질소는 조류의 증식을 촉진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질을 악화하는 원인이 되는데요, 비버가 만든 댐은 질소의 제거량을 44% 가까이 늘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서 강에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지만, 비버가 수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앵커]
비버는 단순히 서식지를 위해 집을 지은 것이겠지만 이게 생태계나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거네요. 단순히 서식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자]
네, 또 비버가 만든 서식지는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는데요. 비버가 물길을 막으면서 주변에는 습지가 생기고 유속이 느려지며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습지에는 양서류나 수달 같은 동물들이 찾아와 살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비버는 '생태계의 엔지니어'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또 비버가 사는 곳은 수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워싱턴대 연구팀이 강에 비버를 70마리 가까이 재배치했더니 1년 만에 강 주변 하천과 연못, 습지 지표수 양이 20배까지 증가했고요, 지하에 있는 우물에서도 물이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하천 하류 수온이 2.3도까지 떨어졌는데요, 반대로 비버가 살지 않는 곳은 같은 기간 0.8도 수온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렇게 비버의 개체 수가 많아지는 것이 자연과 생태계에 큰 도움이 되는 거네요?

[기자]
물론 비버가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가져오지만, 이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활동 중인 과학자들은 비버가 기후위기를 가속화 한다고 말했는데요, 50년 전까지만 해도 알래스카 일부 지역에는 비버의 흔적이 전혀 없었지만,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제는 북극까지도 비버가 포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버들이 강과 개울을 막는 습성 때문에 강의 범람이 잦아졌고요, 비버가 만든 물웅덩이가 많아지면서 열을 더 잘 흡수해 주변 지형을 바꾼다는 거죠. 관찰 결과 비버가 극지방에서 강과 개울을 막아 만든 연못은 지난 20년간 2배로 불어났는데요, 이런 비버의 습성이 영구동토층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우려했습니다.

[앵커]
비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는데, 기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용 설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