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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하는 '용서의 힘'

2022년 08월 09일 오전 09:00
■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우리는 매 순간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또 용서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지만,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용서라는 말도 있는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용서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임지숙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참 심오한 주제인데요, 그리고 한 번쯤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바로 용서를 통해 얻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신다고요?

[인터뷰]
네, 용서한다는 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막상 일상에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를 논한다는 건 그 전에 상대로부터 그만큼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잘못한 행동의 정도가 묻지마 범죄처럼 극단적이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 가해자 용서는 더욱 힘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나 사회적,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타인을 용서하면서 살아가는데요. 용서를 택하는 심리와 용서가 가져다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용서의 많은 부분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 사례가 있습니다.

올해 5월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들이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 사죄하고 유족들은 이들을 용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었죠. 머리를 숙여 사죄하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이들을 피해자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아 주기도 하셨는데요.

한 유족의 어머니는 "그동안 우리 유족 어머니들은 용서해주고 싶어도 용서할 상대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늦게라도 찾아와준 이들에게 고마움도 표하며 당신들도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내려와 고생했는데 우리도 피해자지만 당신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앵커]
이때 이 내용이 좀 기억이 나는 거 같은데 42년 만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또 용서를 하는 것까지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죄하고 포옹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인터뷰]
네, 5.18 민주화운동 계엄군들의 사죄에는 용서의 많은 부분들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용서의 전제 조건으로 일컬어지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루어졌고요. 또한,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그려보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이해를 통한 상황에 대한 용서,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가해자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과 용서한 후에 마음이 풀어지고 친밀한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 고스란히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했겠죠.

[앵커]
그런데 저렇게 좋은 사례도 있는 당장 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는 그런 일도 있잖아요. 용서라는 게 꼭 아름다운 일일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인터뷰]
사실 용서는 인류의 오랜 주제이고 과학적인 연구주제이기보다는 신학적, 철학적, 정서적인 주제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용서를 인격적 성숙의 기준처럼 여기기도 하고, 유교적 규범에 따른 덕목으로 보기도 하죠. 서구에서도 신약성경에 ‘용서하다’는 단어가 145회나 등장하고 주기도문 역시 용서를 기반으로 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는 등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용서에 대한 강조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롯이 피해자 자신이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용서 부추기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용서를 하게 되는 ‘용서자 신드롬’이 발생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나 종교적인 당위에 따라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용서를 하게 되면 용서 이후의 정서적인 정화나 마음의 평화는 누릴 수 없고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상태로 자신을 몰아가게 됩니다.

용서는 남이 한다고 따라 하거나 옳은 일이니까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피해자로서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서하지 않을 권리 또한 가지고 있고 이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영화 ‘밀양’을 기억하시나요?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교회에 다니게 된 주인공이 종교를 통해 용서의 마음을 갖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을 면회하러 가게 되죠. 그런데 범인은 자신은 이미 회개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구원도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미 면죄부를 받은 가해자를 보면서 엄마는 복수를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 엄마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겠죠!

[앵커]
말씀하신 '밀양'을 본 기억이 있는데. 거기서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그를 용서해줬냐" 소리치던 전도연 씨 모습이 기억이 나는 거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쉽게 용서라는 단어를 말해도 되는지 의문이거든요.

[인터뷰]
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용서가 결코 당위는 아니며, 강요나 주변 분위기에 의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앵커]
나를 위해 용서한다는 말이 인상 깊은데요.
용서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부정적인 사고와 정서에 대처하고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전략으로서의 용서를 언급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대인관계의 화해와 조정을 촉진하는 용서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을 지속해왔습니다. 용서는 동정심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주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이로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불교에서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화상을 입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말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용서는 잘못을 잊어버리는 망각이 아니고 타인에게 베푸는 자선의 개념도 아닙니다. 스티븐 체리 신부는 ‘용서라는 고통’에서 용서는 화해와도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방과 다시 예전처럼 지내야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고 용서는 새로운 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용서한다고 해서 화해하고 이전처럼 지내는 것을 꼭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용서를 통해 과거에 매여 현재를 살지 못하는 고리를 끊고 나를 위해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이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용서를 더 잘할 수 있는 성격이나 그런 성향이 가진 분들이 있을 거 같은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계실까요?

[인터뷰]
그간 용서는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기보다는 관념적으로 다뤄져 왔기 때문에 용서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실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호의성이 높은 성격이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 또 가해 상황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반추 정도가 낮은 사람 등이 상대적으로 용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흔히 Type A 성격이라고 불리는 쉽게 흥분하고 성마르며 공격적이고 성취 지향적이어서 참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유형의 경우 용서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용서를 선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드러난 것에 대한 설명일 뿐입니다. 주관적으로 그 사람이 상대방의 가해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잴 수가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용서를 더 잘할 수 있는 성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서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진솔하지 못한 것처럼 여기기도 하는데 우리가 세상에 필요한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정서적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배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 꼭 필요합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용서 프로젝트를 지휘해 온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용서의 기술을 자세히 소개하며 울화에 차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상태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의 대응방법을 검토하고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며 긍정적인 채널에 스위치를 맞출 것을 권하는데요. 용서는 과거의 나쁜 일이 나의 오늘과 미래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자기선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동의가 된다면 반복적으로 용서를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체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앵커]
오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용서라는 게 '자신'을 향하고, 또 자신을 위한 '용서'다 이런 말이 기억에 남았던 거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까지 여기까지 듣겠고요. 명지대학교 임지숙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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