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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어떤 벽도 작품으로 바꿔내는 예술가 '키스 해링'

2022년 10월 28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네, 삶과 죽음의 존엄성에 관한 영상을 보셨는데요,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인생을 예찬하며 삶의 향기를 남기고 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벽도 예술로 만들어내는 작가, 키스 해링인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그라피티 예술가 키스 해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키스 해링의 작품은 옷에서도 많은 디자인의 작품을 봤었거든요. 그래서 아주 익숙한 작가인데, 키스 해링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전 세계 그 어떤 벽도 이 예술가를 만나면 예술이 되죠. 바로 키스 해링입니다. 키스 해링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는데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TV의 보편화로 디즈니 만화를 즐겨보며 자랐고요.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키스 해링이 자란 작은 마을에서는 국내외 주요 소식을 TV와 잡지 같은 매체로 접할 수 있었는데요. 사춘기 시절에 이런 매체를 통해 대중문화와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을 마주하면서 당시 인종차별이나 에이즈, 마약 등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요. 이 점이 훗날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키스 해링은 1978년에 뉴욕의 비주얼 아트 스쿨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는데요, 이때 뉴욕의 지하철과 거리, 그리고 도심 속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후에 장 미셸 바스키아나 케니 샤프 같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하는 등 교류하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습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뉴욕의 지하철역 광고판 위에 덮인 검은 종이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단순하면서도 재치있고, 율동감이 느껴지는 그림체가 특징입니다.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기 시작하고요, 성공적인 전시 개최와 글로벌 아트 페스티벌에 줄곧 참여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합니다.

[앵커]
방금전에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도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요. 키스 해링의 전문 장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인터뷰]
네, 키스 해링의 전문 장르는 '그라피티 예술' 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방송에서 다뤘던 장 미셸 바스키아도 바로 이 그라피티 예술로 시작했죠. 뱅크시와 더불어 키스 해링 또한 그라피티 예술의 대표적인 작가인데요. 건물의 외벽 등 실내가 아닌 외부의 장소 곳곳에 그림을 그리는 장르로, 말 그대로 거리의 미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길을 걷다가 종종 페인트나 스프레이로 그림이나 텍스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셨을 텐데요, 이 그라피티 예술은 힙합 문화와도 연관이 깊고요. 역사도 긴 하나의 장르입니다.

[앵커]
자유로운 느낌이 닮아서 그라피티 예술과 힙합 문화가 잘 연결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키스 해링의 대표작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인터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미지 중 하나일 텐데요. 바로 '빛나는 아기'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시인인 르네 리카르드가 붙여줬다고 하고요. 작품 이미지를 보시면 굉장히 두껍고도 깔끔한 윤곽선이 간결함을 보여주죠. 단순화된 아기의 형상이 돋보이는데요,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에너지와 순수함을 보여줍니다. 자유롭고 트렌디한 느낌도 나고요.

키스 해링은 작품 속에 아기를 자주 그려 넣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행복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키스 해링은 어린 시절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회상하는데요. 특히 어린이를 작품의 주제로 삼거나 또,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평화와 안정을 주제로 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키스 해링의 작품이 종교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어, 작품 속의 아기가 '아기 예수'의 도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앵커]
키스 해링은 작가의 모습이나 작품도 아이 같은 장난스런 모습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친근한 예술가였군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네, 키스 해링은 1986년에,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도착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에 기념으로 아이들과 협업으로 작업하는데요. 'City Kids'재단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뉴욕시의 약 천 명의 아이들과 함께 자유의 여신상 벽화를 그립니다. 약 27.4m에 달하는 대형 벽화로 당시에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또, 한 공립고등학교의 아이들 약 300여 명과 함께 약 158m의 너비를 자랑하는 작품을 함께 제작하기도 했고요. 1987년에는 파리의 한 소아병원의 벽화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키스 해링은 아이들과 함께, 또 아이들을 위한 작업도 많이 했죠. 키스 해링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작업들은 지금까지도 교육용 교재에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참여했던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빛나는 아기' 이외에 또 유명한 작품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키스 해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죠. 바로 '무제'라는 작품입니다. 특히 작품 중앙에 크게 그려진 붉은 하트가 키스 해링의 상징 도상 중 하나죠. 역시나 굵고 간결한 윤곽선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졌는데요, 두 사람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이미지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 간의 신뢰와 믿음, 사랑, 우정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냈고요. 붉은 하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선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유쾌한 작품입니다.

[앵커]
그런데 궁금한 게 키스 해링 작품을 보면 '빛나는 아기'나 '무제'나 같은 그림체인데 색깔만 다른 그림들을 자주 볼 수가 있거든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키스 해링의 낙서화라는 장르 자체가 좀 간결하고 키스 해링이 특히 그림을 그리는 그림체가 간결하고 유쾌한 또 인상적인 특징이 있는데요. 한두 번 보면 좀 익숙해지기도 하죠. 키스 해링은 특정한 도상을 기본으로 해서 색감이나 살짝 그림체를 변형을 해서 생산하기도 하고요. 또 키스 해랑 같은 경우 아트샵을 운영하기도 했고 콜라보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재생산된 이미지들이라고 봅니다.

[앵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 이외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도 있을까요?

[인터뷰]
네, 또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1986년, 베를린 장벽에 그린 벽화인데요. 노란색을 배경으로 검은색과 붉은색의 선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이 노란색, 검은색, 붉은색은 바로 독일 국기의 색을 본뜬 색이고요. 어린 시절부터 매스컴을 통해 격변하는 사회와 그 안의 여러 문제를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예술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는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에 벽화를 그림으로써 당시 동독과 서독을 하나로 연결하고, 소통의 장을 열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앵커]
키스 해링이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처럼 사회문제를 예술로 접근했던 경험이 많은 거 같은데 이 부분도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키스 해링은 예술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고, 또 미술품은 상류층의 소수만이 즐기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1986년에 뉴욕 소호에 '팝샵'이라는 자신의 '아트굿즈샵'을 열게 되는데요. 키스 해링의 작품 이미지가 새겨진 아트 굿즈를 판매하는 곳이었고요. 이곳에서 판매되는 수익 전액은 모두 아동과 에이즈 관련 자선 단체에 기부되었다고 합니다. 작품 이미지만 보면 굉장히 개구쟁이 같고 천진난만하기만 한 것 같지만, 사실 키스 해링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 전반에 이바지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고요, 유럽 전역에서 사회 활동도 직접 할 만큼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는 예술가였습니다.

[앵커]
키스 해링이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고 하는데, 어떤 예술가들과 영감을 주고받았나요?

[인터뷰]
우선 많이 알려진 예술가로는 앤디 워홀이 있습니다. 앤디 워홀은 키스 해링의 개인전에서 서로 알게 되는데요, 앤디 워홀은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눈이 있죠. 키스 해링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게 되고요. 키스 해링 또한 앤디 워홀을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멘토이자 '절친'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둘은 함께 작업도 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하는데요, 특히 키스 해링이 좋아하는 '미키마우스'와 앤디 워홀의 이미지를 합쳐서 만든 '앤디 마우스'라는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작업들을 함께 진행합니다. 앤디 워홀이 예술의 상업화에 아주 능했는데요, 키스 해링이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받아서 유명한 보드카 브랜드 포스터 등 상업적인 아트 프로젝트를 앤디 워홀로부터 소개를 받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키스 해링의 아트샵인 '팝샵' 또한, 수익 전액 기부이긴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부분이 앤디 워홀의 영향으로도 보입니다.

[앵커]
오늘은 사람과 세상을 한 폭의 프레임에 담은 키스 해링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키스 해링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는데 그의 그림에 담겨진 수 많은 메시지들은 아마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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