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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색깔을 만드는 작가…이브 클랭의 무한한 예술세계

2023년 10월 27일 오전 09:00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다면 어떨까요. 프랑스 태생의 예술가 이브 클랭은 좋아하는 푸른색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로 개발해 특허까지 냈던 작가인데요. 오늘은 장르 상관없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예술의 본질을 탐구했던 작가 '이브 클랭'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자신만의 색깔을 개발했다고 하니까 어떤 이야기일지 참 궁금해지는데, 우선 '이브 클랭'이라는 작가가 아무것도 전시되어있지 않은 텅 비어있는 전시회를 열었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1958년, 프랑스 파리의 이리스 클레르라는 갤러리에서 '공허'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었는데요. 바로 '이브 클랭'의 전시였습니다. 당시 갤러리의 전시 공간 내부는 커다란 캐비닛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는데요. 전시장의 모든 벽을 흰색으로 칠하고, 갤러리 창문과 커튼 등은 모두 파란색으로 연출했습니다.
또 오프닝 날 제공되었던 칵테일의 컬러 또한 파란색이었는데요. 이 전시장에 아무 작품도 설치가 안 되어있어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에 무려 3,000명의 인파가 몰려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브 클랭은 사물의 '무'에 주목했기 때문에, 이런 전위적인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도 사물의 본질이라던가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풀어나갔습니다.

[앵커]
그럼 본격적으로 이브 클랭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이브 클랭은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는데요. 부모가 모두 화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브 클랭은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고요, 20대 초반 유도에 관심이 많아 일본으로 건너가 유단자의 길을 걷습니다. 또, 유도를 통해 불교에 대한 교리를 접하기도 하는데요. 이후에는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장미 십자회'라는 비밀결사 성격의 단체에 정식으로 입회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브 클랭이 굉장히 다양한 관심사가 있던 것 같은데요, 1955년에 파리에 정착하면서 모노크롬, 즉 단색 회화를 선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이때 이브 클랭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순수하고 실존적인 공간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때마다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푹 빠져들었다', 이브 클랭은 눈앞에 실존하는 것을 넘어선 어떤 것에 항상 집중하는 실험적인 예술가였습니다. 이후 평면 작업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설치 미술 등 장르를 넘나들며 특유의 작업 세계를 전개해나갔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 봐도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브 클랭이 자신만의 푸른색을 개발했다고 하던데, 색 자체를 만들어낸 건가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이브 클랭은 특히 푸른색을 좋아했는데요. 이브 클랭이 개발한 색은 'IBK', 즉 'International Klein Blue'라는 울트라 마린 컬러 입니다. 1960년에 자신만의 고유한색으로 특허를 받았고요. 이브 클랭이 푸른색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여러 색 중에서도 푸른색이 가장 순수하고 무한한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앵커]
이브 클랭 하면 정말 푸른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브 클랭의 대표작 중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바로 '허공으로의 도약'이라는 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1960년에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담은 포토몽타주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포토몽타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합쳐 합성한 것을 말하는데요. 사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기법입니다. '허공으로의 도약' 작품 속 뛰어내리고 있는 남성은 바로 이브 클랭 자신인데요. 이 사진이 합성이긴 하지만, 뛰어내리는 장면 자체는 합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유도 유단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이런 퍼포먼스를 스스럼없이 한 것 같고요, 원래 사진의 원본에는 뛰어내리는 이브 클랭의 밑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매트리스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 현장의 원본 사진은 공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앵커]
이 퍼포먼스 작품이 많이 화제가 됐던 거 같은데, 신문에도 실렸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일요일' 이라는 프랑스 신문에 실렸는데요. 재미있는 점은 이 신문이 일요일에만 발행되는 신문이라는 컨셉으로, 실존하는 신문이 아니라 이브 클랭이 당시 직접 만든 4페이지짜리 짧은 신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브 클랭은 이 신문을 파리의 신문 가판대들에 올려두고 딱 하루 동안 판매했는데요. 이 또한 하나의 퍼포먼스였습니다. 신문에 실린 퍼포먼스 사진 밑에는 이런 글이 써 있었는데요. '유도 챔피언이자 4단 검은 띠를 보유한 그는 정기적으로 공중부양 훈련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우주로 가기 위해. 우주를 그리려면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고 비행기나 낙하산, 로켓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공중에 갈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을 그리려면, 그 공간으로 가야 한다.' 굉장히 심오해 보이면서도 엉뚱하기도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앵커]
이브 클랭 하면 색깔도 떠오르지만 이러한 작품들도 많이 떠오르는데, '인체 측정' 시리즈도 유명하다고요?

[인터뷰]
네, 이브 클랭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대표작이죠. 나체의 여성이 몸에 자신이 개발한 푸른색의 페인트를 몸에 바른 채 캔버스에 자국을 남기는 작품인데요. 페인트를 바르는 신체를 '살아있는 붓'으로 칭하기도 합니다. 이 퍼포먼스가 1960년에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라이브로 진행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사람들은 작품에서 보이는 섹슈얼리티를 지적하며 혹평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이 작품이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회사 크리스티 측에서는 '획기적인 예술 작품이다, 20세기 가장 대담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인체 측정 시리즈는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앵커]
지금 뒤쪽에 있는 그림이 바로 아까 전에 말씀해주셨던 '인체 측정' 그림이었군요. 그리고 이브 클랭의 실험적인 행보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 같은데, 이브 클랭처럼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는 예술가가 또 있다고요?

[인터뷰]
말씀하신 것처럼 이브 클랭의 전위적인 시도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데요. 이브 클랭처럼 자신만의 색을 사용하는 예술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아니쉬 카푸어'라는 영국계 인도 예술가인데요. '반타블랙'이라는, 가장 어두운 검은색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반타블랙은 영국의 나노 회사에서 개발한 물질로, 빛의 99.96%를 흡수할 수 있는데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적외선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빛의 반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 반타블랙으로 만든 물체는 굴곡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반타블랙에 대한 독점권을 아니쉬 카푸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반타블랙에 대한 권한 대부분을 완전 독점하는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이 원료를 이미 가지고 있던 기관 등에도 제재를 가하며 자신의 예술 작품에만 사용하겠다고 발표해 여론의 반발이 있기도 했습니다.

[앵커]
저는 그냥 그림 그릴 때 물감을 사서 저희는 쓰잖아요? 그래서 이걸 누가 독점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색을 독점할 수도 있군요. 이후에 어떻게 됐나요?

[인터뷰]
반타블랙의 독점권에 대해서 특히 과학자들과 예술계에서 크게 비난했는데요, 스튜어트 셈플이라는 예술가가 앞장서서 아니쉬 카푸어에게 맞서는 대응책을 냅니다. 바로 똑같이 자신만의 색을 만들고, 아니쉬 카푸어와 그 지인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스튜어트 셈플이 개발한 블랙 2.0은 가시광선 흡수율이 97.5%로, 반타블랙에 비해서는 품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접착력이라던가 그 외의 부분에서 더 나은 점도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값비싼 반타블랙에 비해 아주 저렴한 금액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스튜어트 셈플은 가시광선 99%까지 흡수 가능한 블랙 3.0을 개발하고요, 이 역시 '아니쉬 카푸어'는 사용 금지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아니쉬 카푸어'는 이용 불가라고 공공연하게 기재가 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기도 합니다.

[앵커]
나만의 색을 만들고 그 권리를 주장한다는 개념이 참 신선한데요. 이브 클랭의 이야기부터 색에 얽힌 예술가들의 신경전까지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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