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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반복되는 '귀차니즘'…할 일을 미루는 심리는?

2023년 12월 19일 오전 09:00
■ 이혜진 / 상담심리학자

[앵커]
머릿속으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미루는 일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죠. 심리학에서는 미루는 행동을 '꾸물거린다'는 용어로 표현하는데요. 오늘은 할 일을 미루는 이유와 마음이 불편해질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주제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새해 목표로 어떤 목표를 세울 텐데 그것도 미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들 것 같은데요, 일단 우리는 왜 할 일을 미루게 되는 걸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무언가를 미룰 때 미루는 나를 보면서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경험을 많은 분들이 해보셨을 텐데요. 이렇게 합리화하기도 하죠.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할 거야' 그런데 또 어느새 그 내일이 성큼 와 있고, 그럴 땐 또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도 민망해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매일의 할 일뿐만이 아니에요. 살면서 미뤄뒀던 일, 한두 개쯤 갖고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왜 미루고 있었는지? 미루는 습관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아보시면 좋을듯합니다.

[앵커]
이러게 일을 계속 미루면 사실 기분이 좋지 않잖아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미루는 '나'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아요. 게다가 미루는 일이 반복될 경우엔 내가 의지박약인가? 내가 게으른 사람인가? 역시 내가 게으르구나. 이렇게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기개념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볼 때 우리의 마음은 괜찮지 않습니다. 우울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실제로 미뤄둔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상: 주말인데 미뤘던 방 청소나 해볼까? 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가 100만 뷰를 넘기도 하고요. 할 일을 미루는 당신이 꼭 봐야 할 영상도 100만 뷰를 훌쩍 넘깁니다. 게으름을 해결하고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동기부여 영상은 늘 인기가 있지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미뤄둔 일은 있습니다. 당장 모든 걸 할 수도 없을 만큼 우리는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이 참 많으니까요. 예컨대 치과 진료나 베란다 정리나 방 청소부터 미뤘던 여행, 연락하고 싶었던 사람과의 관계까지 우리는 현실적으로 모든 걸 챙길 수 없기에 미뤄둔 일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미뤄둔 일이 있다는 건 너무나도 정상이고, 그것을 다 한다는 것은 극단적 번아웃을 초래한다는 의미니까요.

[앵커]
누구나 미루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해주시니깐 좀 위안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미루다 보면 일이 밀리는 것도 그렇지만 마음이 괴로워지는 게 더 괴로운 것 같거든요, 저만 그런 게 아니겠죠?

[인터뷰]
네. 우리는 미루면서 이런 마음이 들죠. "지금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하기 싫다"
그러면서 마음이 고통스러워지는데요. 심리학에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 싫은 마음으로 일을 미루는 행동에 대해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요. 학술 용어로는 이렇게 할 일을 미루는 행동을 '지연 행동(procrastination)'이라고 하는데요. 심리학에서는 '꾸물거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최근 연세대학교 상담심리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진단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꾸물거림을 시간 관리 실패로 진단하고, 효과적인 시간 관리 전략, 예를 들어 모바일 시간 관리 앱이나 다이어리 등을 자신에게 처방함에도 불구하고 꾸물거림을 해결하진 못했다는 것이지요. 꾸물거림의 원인이 다른 데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앵커]
그럼 그 원인이 어딨을까요?

[인터뷰]
연구자들은 꾸물거림을 게으른 성격 탓으로 진단하고, 게으른 성격을 질타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안합니다. 즉, 꾸물거림이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적 교착 상태'로 인한 행동적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어요.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라, 꾸물거리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지요.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설명입니다. '하긴 할 건데 지금 하기는 싫다'와 같은 상태인 거죠.

[앵커]
감정적 교착상태라는 표현이 정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해야 하는데 하기 싫고 이런 마음이 항상 싸우는 느낌인데요, 꾸물거림의 유형도 다양한가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꾸물거림에 대해선 심리학자들이 많은 연구와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간략하게 내가 왜 '하긴 할 건데 지금 하기는 싫은지?' 그에 대한 이유를 알 때 우리는 나의 꾸물거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꾸물거림' 행동이 나에게 왜 생겨났는지 명확하게 안다면 꾸물거림의 기저에 있는 감정의 교착상태, 즉 하고 싶기도, 하기 싫기도 한 양가감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을 보시면서 나랑 비슷한 점이 있는지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상담심리연구실 저자들이 쓴 '나는 왜 꾸물거릴까?'라는 책에서 제시한 내용 중에 세 가지 특성을 소개해 드릴게요.

우선 꾸물거림의 발단이 되는 세 가지 개인 특성 첫 번째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입니다. 때가 되면 어떻게든 서둘러 일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있으신 분은 여기에 해당 되고 완벽주의 유형은‘뛰어 나게 잘하고 싶다’와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늘 공존합니다. 세 번째는 자극 추구 유형이예요, 희망차게 일을 시작하지만, 흥미를 잃으면 금방 포기해버립니다.

이렇게 세 가지 개인 특성을 소개해 드릴게요. 평소의 나의 패턴과 비슷한 유형이 있으신가요? 한 개만 있을 수도 있고, 세 가지 모두를 경험하신 분도 있을 수 있어요. 나는 어떤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앵커]
여기에서 자기에게 해당하는 유형을 찾은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유형별로 대처법도 있나요?

[인터뷰]
네, 나와 비슷한 유형을 찾으셨다면 한번 이렇게 시도해보세요. 변화를 위한 첫걸음으로써, 간단한 팁으로 바로 활용해보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비현실적 낙관주의 유형이라면, 이런 생각을 주로 합니다. "내일부터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신다면 막연히 낙관하기보다는 이 일의 진행 단계를 프로세스별로 단계적으로 설계해보는 것입니다. 즉, 체계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머리로만 생각할 때는 최종 결과물이 쉽게 나올 거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많은 단계들이 있어요. 이 단계들을 현실적으로 설계를 해보면 일의 규모를 타당하게 평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앵커]
제가 딱 이런 비현실적 낙관주의 유형인데요, '근자감' 이라고 하죠, 뭔가 때가 되면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유형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인터뷰]
완벽주의 유형이라면, "진심으로 했는데 엉망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꾸물거림이 나타나는데요. 완벽주의로 인한 꾸물거림은 다양한 전략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낼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은 초안을 만들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버전 '0'에서 다 건너뛰고 버전 1로 완성 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아예 착수를 안 하게 됩니다. 그것과 다르게, 일단은 버전 0.7을 만들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서 버전 0.8을 만들고, 이것을 다듬어서 버전 0.9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업그레이드해서 1.0으로 가자고 접근하면 완벽주의의 불안감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극 추구 유형은 "재밌으면 나도 안 미뤘지!!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 무슨 일을 할 때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분들이 크게 공감하실 내용이에요. 시작은 재밌는데 유지가 어렵고 마무리가 어렵다면 이 점을 생각해보세요. 하나의 일에는 아무리 내가 끌리고 재미있어도 싫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요.

내가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취하겠다면 세상에 끝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재밌는 일이라면 재미없는 부분을 견뎌내야 전체적으로 완성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재미없는 부분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없다면 그 일 자체가 매력이 없어서 할 가치를 못 느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실은 일 자체가 지속하거나 완결할 만큼 매력이 없다면 꾸물거린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그냥 안 하기로 결정 하세요. 그편이 마음이 더 편안해집니다.

[앵커]
새해 앞두고 저도 슬슬 목표를 세우고 있었는데, 너무 엄격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는 게 좋겠네요. 이혜진 상담심리학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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