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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레드카펫] 누가 괴물을 만드는가? 영화 '괴물'…따돌림을 막으려면 '방관자'를 줄여라

2023년 12월 01일 오후 5:01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괴물'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아닙니다.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인데요. 키워드와 함께 영화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영화의 키워드는 '괴물은 누구게'입니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세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내는데요. 처음에는 사건의 진실을 좇고, 괴물이 누구인지 찾게 되지만 어느 순간 섣부른 추측으로 '진실을 왜곡한 건 나 자신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싱글맘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누가 그래?]
[호리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의 폭언을 확인한 사오리는 학교로 향하지만, 죄송하다는 말뿐, 그저 상황을 얼버무리기만 합니다.

[오해를 부른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오해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미나토가 오히려 친구 요리를 괴롭히고 있다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요.

[난 돼지 뇌를 가졌으니까]
[나는 불쌍하지 않아]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요?

[괴물은 누구게?]

이 영화는 일본 영화계 어벤져스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독 고레이다 히로카즈, 각본에 사카모토 유지 그리고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맡았는데요.

영화 '괴물'로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도 깊은 주제의식을 선보여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편입니다.

사카모토 유지는 세 사람의 시선 변화를 통해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괴물'을 명작으로 만드는 또 다른 조각은 바로 음악입니다. 세계적인 영화음악감독이자 이제는 고인이 된 사카모토 류이치가 대표곡인 아쿠아를 비롯한 기존 음악에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들을 영화 속에 배치했는데요.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음악을 거절당하면 영화의 근본부터 바꿔야 할 정도라고 표현했는데, 다행히 제안을 수락해 편지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영화 음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 '괴물'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는 자신이 쓴 각본으로 연출하는 거로 유명한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본인이 절대 쓸 수 없는 각본이기에 꼭 연출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요. 세 명의 시선으로 얽혀있는 영화의 구조는 어느새 괴물 찾기에 몰입하게 만들지만,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루는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더해져 마지막에 이르러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인터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 감독]
(각본을 처음 보고) 누가 나쁘지를 저도 모르게 찾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나쁜가? 엄마가 나쁜가? 혹은 괴물은 누구지? 라고 저도 모르게 괴물 찾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진실은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글의 후반에서 알 수 있었고 그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앵커]
거장들의 만남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영화 '괴물'을 만나봤는데요.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양훼영 기자와 좀 더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영화가 외면당한 존재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따돌림, 왕따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따돌림, 그러니까 이지메가 오래전부터 있었죠?

[기자]
왕따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생긴 건 1990년대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집단 따돌림이라는 뜻의 이지메라는 단어가 1980년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일본 사회 안에서 이지메 관련된 상황이 오래전부터 지속 됐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그래픽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일본 문무과학성에 따르면 '이지메 방지 대책 추진법'이 201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당시 이지메가 18만 건이었던 초중고 이지메 건수가 2016년 32만, 2019년 61만 건까지 폭증을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출석 일수 많지 않았던 2020년에 51만 건으로 잠시 줄었지만, 2021년에 다시 61만5천 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내 최대 손해보험회사에서는 '이지메 보험'까지 출시해 지난 가을부터 판매 중이라고 합니다.

[앵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집단 따돌림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네요. 이렇게 왕따를 경험한 아이들은 뇌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면서요?

[기자]
2018년 12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진, EU 연구프로젝트 '이매진' 일환으로 진행된 뇌 구조에 왕따가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연구를 해봤습니다. 이때 조사 대상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아일랜드 청소년 682명 대상 뇌 MRI 촬영과 설문조사 진행을 했습니다.

조사 대상 중 왕따, 따돌림 경험을 한 사람은 36명이였는데 이들이 일반 청소년과 비교하니 심한 왕따 경험은 19세쯤 뇌 용적 변화와 불안도 변화에 연관된 사실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운동 조절과 학습에 영향 미치는 '조가비핵', 기억 처리 및 학습에 중요한 '미상핵'의 뇌 영역 용적 감소한다는 걸 확인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왕따와 같은 괴롭힘을 당하면 뇌가 쪼그라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뇌 용적이 줄어드는지 알 수 없지만, 왕따가 뇌 구조까지 변화시킨다는 물리적 증거가 확인된 셈입니다.

[앵커]
그냥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뇌까지 달라진다고 하니깐 심각하게 느껴지는데요.

이렇게 어릴 적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는 결국 성인이 된 뒤 다양한 인격장애로 이어지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원자력의학원 연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생애 초기 스트레스가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줄여 인격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쥐를 생후 2일부터 하루 4시간씩 12일간 어미로부터 분리를 시키는 모성 분리 스트레스를 줘 봤더니 그 결과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의 양이 정상 쥐보다 암컷은 19~27%, 수컷은 7~12% 떨어지는 걸 확인했습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클수록 신경전달물질 손상이 심해졌다는 걸 알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기억 형성 역할을 하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와 감정조절 물질인 세로토닌도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격장애를 일으키는 뇌로 많이 변화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뇌에 손상 여부를 PET 영상으로 실시간으로 확인을 처음으로 한 겁니다.

[앵커]
따돌림 문제 중 하나가 선생님이나 부모 등 어른에게는 따돌림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다는 건데요. 수학으로 왕따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고요?

[기자]
수학 그래프 이론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가능합니다. 학생들의 관계를 점과 선으로 연결해 분석하면 잘 드러나지 않았던 소외 학생을 찾아주는 방식인데요.

이 분석의 기초가 되는 건 우선 설문조사 친구들 사이에서 정서적인 호감, 사회적 평판 등을 조사를 합니다.

정서적 호감이라고 하는 것은 함께 어울리고 연락하고 싶은 아이, 사회적 평판이라면 호감이 없더라도 반장으로 뽑거나 조별 과제를 같이 하고 싶은 아이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받는 아이는 외톨이가 되지 않는 거예요, 조사 결과를 행렬로 만들고 행렬을 바탕으로 그래프를 그리자 소외된 아이들이 나옵니다.

실제로 한 학교 교사들에게 분석 결과를 제시하자, 1/3 정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연구를 바탕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 내서 학습 분위기를 바꾼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앵커]
그냥 분위기를 보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을 찾아 내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결국, 이 괴롭힘이 심화 되지 않으려면 주변의 도움이 정말 절실하죠?

[기자]
학교폭력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는 게 아니죠.

동조자, 조력자와 방관자, 방어자 등이 존재하거든요, 교실 내에서는 방관자가 대다수인데, 나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방관자로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최근 방관자 교육이 이지메를 막는 새로운 방안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조금 오래된 연구결과이긴 하지만 2001년 논문을 보면, 캐나다 토론토 초등학교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괴롭힘 상황에서의 방관자 개입 여부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관찰해봤습니다.

방관자 학생들이 '그만둬', '괴롭힘은 나빠' 등 괴롭힘을 멈출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약 60%의 괴롭힘 상황이 10초 이내에 끝납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색출하고 가해자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는 것도 물론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이는 이미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의 일들이잖아요, 아이들 스스로가 가해자, 조력자, 동조자, 방관자가 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어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과 함께 따돌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따돌림 그 자체도 근절되어야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가 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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